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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스캔들과 맞거래 제안···푸틴이 쫓는 '특정인'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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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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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열린 미·러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모종의 제안을 했다.

지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협조하는 대가로 ‘특정인’과 관계가 있는 미국 관료들을 조사할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것이었다. 여기엔 마이클 맥폴 전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 등이 포함됐다. 한 나라의 원수가 유력 정치인도, 유명 기업가도 아닌 ‘특정인’에 대한 관련인 조사를 제안하고 나선 건 이례적인 일이다.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특정인’의 이름은 윌리엄 F. 브라우더(54). 이 남성이 푸틴 대통령에게 ‘찍힌’ 이유는 무엇일까.

변호사 친구 사망에 ‘반 푸틴 인사’ 돌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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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러시아 당국의 요청으로 스페인 현지에서 체포됐다 풀려난 윌리엄 브라우더.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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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국 출생인 브라우더는 1990년대 후반 러시아 투자회사인 허미티지 캐피털을 설립해 공룡 헤지펀드로 키웠다. 2005년께 직접 관리하는 펀드액이 40억 달러(4조 5360억원)에 육박할 정도였다. 당시엔 푸틴 정권과의 관계도 좋았다.

푸틴 측과 관계가 꼬이게 된 것은 같은 해 러시아 관료들이 2억 3000만 달러를 횡령한 사실을 발견하고 고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러시아 당국은 “오히려 같은 금액을 (브라우더의) 허미티지 캐피털이 불법으로 환급받았다”며 브라우더 측에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결국 그해 11월 브라우더는 러시아에서 강제 추방됐다. 살해 위협에 시달리던 그의 회사 임원들 역시 제발로 러시아를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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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고문 끝에 사망한 아들 세르게이 마그니츠키치의 영정을 들고 있는 나탈리 매그니츠카야.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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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회사 고문 변호사이자 오랜 친구인 세르게이 마그니츠키는 러시아 당국에 붙잡혀 모스크바 소재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2009년 고문에 시달린 끝에 숨졌다. 동료이자 친구의 죽음에 충격에 빠진 브라우더는 “러시아 당국의 고문이 사인(死因)”이라며 푸틴 정권을 맹렬히 비난했다.

이 때부터 브라우더는 ‘안티 푸틴’으로 돌변했다. 그리고 수 년에 걸친 그의 반(反) 푸틴 활동은 2012년 미 의회의 ‘마그니츠키법’ 입법으로 이어졌다. 이는 마그니츠키 변호사의 구금과 관련된 러시아 관료 51명의 미국 입국 금지, 그리고 이들의 미국 내 자산 동결이 주요 골자다. 푸틴 대통령은 크게 분노했다.

브라우더는 크렘린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러시아 정부가 브라우더에 대한 수배령을 내린 것이다.

지난 2016년엔 푸틴 정권과 긴밀한 나탈리아 베셀니츠카야 변호사가 브라우더 관련 의혹이 담긴 메모를 트럼프 대통령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현 백악관 보좌관)를 비롯한 대선 캠프 핵심 인사들에게 건넸다. 클린턴 후보를 흠집낼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브라우더에 대한 ‘조치’를 요구한 것이다.

“푸틴, 재산 부정 축적”…낯뜨거운 폭로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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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미 상원 청문회에 참석한 빌 브라우더.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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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신변에 대한 위협에도 브라우더는 주눅들지 않았다. 지난해 7월엔 미 상원 법사위원회에 참석해 푸틴 대통령의 숨겨진 재산을 폭로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푸틴 대통령이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산이 2000억 달러(227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푸틴 대통령의 재산은 대부분 서방에 유치돼 있으며, 재산 동결이나 압류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증언했다.

브라우더가 러시아 당국에 넘겨질 뻔 한 적도 있다. 지난 5월 말 스페인을 방문하던 중 현지 인터폴에 붙잡힌 것이었다. 이는 러시아의 수배령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브라우더는 프랑스 리옹 소재 인터폴 사무국에 “(스페인 경찰이) 러시아 요청을 따르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한 끝에 석방될 수 있었다. 그는 트위터에서 이 사실을 전하며 “러시아가 나를 체포하려는 목적으로 여섯 번이나 인터폴을 이용했다”고 비난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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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수감 중 풀려난 윌리엄 브라우더.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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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계기로 “일부 독재국들이 타국의 법 집행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인터폴을 악용한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인터폴은 “회원국(스페인)에 공식 수배령을 통보한 적이 없다”고 공개 부인했다. 그동안 인터폴은 러시아의 브라우더 체포 시도를 정치적인 것으로 간주해 “브라우더에 수배령을 내려달라”는 러시아 측 요구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푸틴 정권을 향한 브라우더의 고발은 계속됐다. 올해 3월엔 푸틴 정권에 대한 폭로를 적나라하게 담은 『적색수배령』을 발간하며 푸틴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이 책에서 그는 푸틴 정권을 ‘범죄 기업’으로 묘사하며 “나의 추방과 마그니츠키의 죽음의 배후엔 푸틴 대통령이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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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브라우더가 펴낸 『적색수배령』. [글항아리]



물론, 이처럼 낯뜨거운 폭로 및 의혹 제기에 푸틴 대통령이 달가워 할리 없다. 결국, 미·러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그의 이름(브라우더)을 공개 언급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트럼프, 푸틴에 브라우더 관련인 넘길까


지난 미·러 정상회담 당시 푸틴 대통령은 “(브라우더가) 러시아 영토 내에서 불법 행동을 한 혐의가 있다”며 “그의 사업체가 러시아에서 15억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이중 4억 달러 이상을 클린턴 캠프에 전달했다”며 브라우더 관련인들에 대한 조사 근거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내놨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대단한 제안”이라고 답했다고 NYT는 전했다.

앞으로 관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이 제안한대로 ‘브라우더 관련인’들을 찾아 그에게 넘길지 여부다. 회담 이틀 뒤인 18일 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측근들과 대화를 나눌 것이다. 곧 이에 대한 발표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소재지 불명’으로 알려진 브라우더는 NYT 인터뷰에서 “푸틴은 제정신이 아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기이하며 감정적이다”며 ‘힐러리 4억 달러 제공설’을 극구 부인했다. 이어 그는 “푸틴의 ‘비난’은 마그니츠키법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며 “미국은 법치 국가다. 법치가 날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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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맥폴 전 모스크바 미국 대사.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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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브라우더 관련인’, 즉 조사 대상으로 지목된 마이클 맥폴 전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2012~2014년)는 최근 외교전문지인 포린어페스(FA)에 실은 기고문에서 “푸틴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브라우더와 공모자들에 대한 거짓말을 늘어놓은 것으로 보인다”며 “두 정상의 거래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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