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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취재파일] 제주에 쏟아진 예멘인 500여 명…세간의 우려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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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예멘인이 진짜 난민인지 언론기관에서 할 수 있는 차원에서 검증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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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이템을 맡게 됐을 땐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법무부 심사로도 거르기 어려운 '가짜 난민'을 가려 보자니요. 제주에 상륙한 예멘인의 난민 인정 반대 청원 찬성 수가 60만 건을 넘기던 때였습니다. 서울에서까지 반대 집회가 열릴 만큼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예멘인들에게 각을 세우는 이유들이 과연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 언론기관으로서 예멘인 틈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얘기를 가감 없이 들어보고 판단해 볼 필요가 절실했습니다.

출장은 첫 단추부터 난항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언론에 노출될수록 여론이 안 좋아지는 데다 한 아랍계 방송이 모자이크를 약속하고 인터뷰를 한 뒤 얼굴을 그대로 내보내 고국의 가족이 위협을 받는 일까지 있어 예멘인들은 극도로 위축되어 있었던 겁니다. 출장 전 여러 곳에 전화를 돌렸지만 취재에 응하겠다는 예멘인이 있다는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현지에서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예멘인 상당수가 머무는 제주 시내의 한 호텔 로비에서 예멘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리포트에 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옮겨보자면 이렇습니다.

● "예멘 내전을 모르는 한국인이 많아 놀랍다. 그곳에는 삶이 없다."

제가 만난 다수 예멘인들은 예멘 내전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토로했습니다. 도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수도인 사나 등 큰 도시를 중심으로 3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공습이 벌어지고 있어 공항과 학교, 병원 등 시설이 모두 파괴되고 일상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겁니다. 장갑차와 무장 반군이 거리를 활보하고 총을 들 수 있는 나이의 젊은 남성은 수시로 검문을 당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습니다. 한 영어 교사 출신 예멘인은 사촌 형이 총에 맞아 죽는 걸 눈앞에서 봤다고 했습니다. 동네에서 횡포를 부리는 반군에게 항의를 했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총살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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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인 주장만 있는 건 아닙니다. 다수의 국제기구 보고서들도 이런 예멘의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국제엠네스티 2017년 보고서에는 예멘이 후티족과 반후티족 무장단체, 반군 등의 분쟁으로 지속적으로 민간인 마을에 공습이 일어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자료에 따르면 내전으로 현재 1만 3천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2천 100만 명이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 700만 명이 기아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2017년 영국 내무부 문서도 예멘에서 250만 명의 실향민이 발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접근한 브로커 있었지만…예멘인들 "브로커 필요 없었다"

제주 취재 결과, 브로커를 통한 '기획 입국' 아니냐는 세간의 주장은 절반만 근거가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다수 예멘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에 미리 들어온 아랍인 중 브로커를 자처하며 돈을 요구한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라는군요. 다만 요구한 금액이 컸고, 통상 비자가 필요한 국가에서 '어둠의 경로'로 비자를 구하기 위해 브로커를 접촉하는 데 반해 제주 입국은 비자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브로커를 통해 들어올 필요성이 없었다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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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예멘인 561명이 한꺼번에 쏟아진 배경에는 한 유튜버의 힘이 컸습니다. 이들이 제게 보여준 유튜브에는 한 아랍인 유튜버가 한국을 '평화롭고 발전된 나라'로 소개하며,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로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이 영상이 예멘인 커뮤니티에 삽시간에 퍼진데다 때마침 지난해 말 말레이시아에서 제주까지 처음으로 저가항공이 취항하면서 에멘인들의 대거 제주 입국이 이뤄졌다는 설명입니다.

● "남자들 많아 무섭다" 여성들의 우려…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예멘인 가운데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건 사실입니다. 전체 예멘인 가운데 91%(504명)가 남성이지요. 성평등 감수성인 '젠더 감수성'이 뒤떨어지는 것도 반박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취재 도중 영어를 할 줄 아는 여성 예멘인에게 인터뷰를 타진한 적이 있습니다. 본인도 인터뷰 의사가 있었는데 오빠와 남편이 반대해 성사되지 못했지요. "여자가 나서면 안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가족 중 유일하게 영어가 가능해 취직을 한 여성이 남편과 오빠를 부양하고 있었는데도 일거수일투족을 '허락' 받아야 하는 처지였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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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슬람권 난민을 받으면 성범죄가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논리의 비약일 뿐입니다. 사실 성평등 의식이 뒤떨어지는 건 특정 종교가 원인이 아니라 경제 저발전국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합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적이던 때가 있었죠. 유교 문화와 미국 드라마 '로스트'에서 한국인 부부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게다가 이슬람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득권 종교는 성평등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슬람인은 성평등 의식이 떨어지니 성범죄를 더 많이 저지를 것이라는 주장은 논리의 비약일 뿐 아니라 특정 종교와 문화권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작용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 '난민의 정치화' 시대…난민 협약 탈퇴할 것 아니라면 사회적 합의 모아야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시점은 따로 있습니다. 전쟁을 피해 우리나라로 들어온 이들이 경제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시점입니다. 우리나라를 당장 떠날 처지가 못 되는 예멘인들은, 우리가 국제 난민 협약을 당장 탈퇴할 것이 아니라면 장기간 포용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전쟁 상황이 인정되면 이들 중 다수는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고 우리나라에 머물게 될 겁니다. 최빈곤층, 사회적 차별 대상으로 고립된 이들의 2세대 중 일부가 실제 사회 위험 세력이 된 유럽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또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을 넘어 난민을 받음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득과 실에 대해 정치 지도자가 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사회적 합의를 모아 나가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난민 문제가 정치적 선택의 한 변수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야흐로, 먼 나라의 일인 줄만 알았던 '난민의 정치화' 시대가 왔습니다. 리더십이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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