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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단독] “이스라엘, 월드컵 타이밍 맞춰 팔레스타인 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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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겨냥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폭격을 가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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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스라엘은 특수 관계다. 미국 정·재계에 포진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토대로 미국의 국가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이들의 모국(母國)인 이스라엘은 인명 피해를 낼 수 있는 군사 작전에 앞서 미국 여론을 예민하게 살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한 이스라엘이 미국의 ‘대형 이벤트’ 타이밍에 맞춰 팔레스타인 일대를 폭격한다는 사실이 ‘팩트’로 검증됐다. 이같은 연구 결과는 유력 경제학 저널인 ‘저널오브폴리티컬이코노미(JPE)’ 최신호에 실렸다. 논문명은 ‘세계가 눈을 돌리면 폭격할까? 미국 뉴스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사례를 중심으로(Attack When the World Is Not Watching? US News and the Israeli-Palestinian Conflic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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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카테리나 주라브카야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교수와 루벤 단테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시앙스포(Sciences Po) 경제학과 교수.




루벤 단테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시앙스포(Sciences Po) 경제학과 교수와 예카테리나 주라브카야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교수의 공동 연구다.

본지가 확보한 논문에 따르면 두 교수는 ‘뉴스 압력(news pressure)’이란 변수를 통해 이스라엘의 폭격 시점과 CNN·NBC 헤드라인 뉴스의 보도 추이를 연계 분석했다. 분석 기간은 12년(2000~2011년)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미국 내 대형 뉴스가 터지기(t+1) 전날 팔레스타인에 폭격(t)을 감행할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주로 대통령 취임식, 월드컵 등 굵직한 뉴스가 나오기 ‘전 날(a day before)’ 폭격을 벌인다는 분석이다.

두 교수는 논문에서 “미국 대중의 감정과 심리를 흔들 수 있는 내러티브 기사는 제작에 한나절이 걸린다. 그래서 폭격 다음날(t+1) 보도될 수 밖에 없으며, 이스라엘은 이런 사실을 간파하고 있다”며 “이런 맥락에서 이스라엘은 미국에서 대형 뉴스가 예정된 ‘전 날’ 폭격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폭격 뉴스가 다음날(t+1) 내러티브로 다뤄질 경우 미국 내 ‘대형 뉴스’에 의해 밀려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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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뉴스 압력' 변수는 이스라엘의 공격 시점 다음날 높게 나타났다. 이스라엘의 폭격 다음날(T+1) 미국의 대형 뉴스가 터진다는 뜻인데, 거꾸로 말하면 대형 뉴스 발생 전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집중 폭격을 가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추정치(그래픽 왼쪽)는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공격(오른쪽 )과 비교했을 때 유의미하게 높았으며, 상단의 뉴스 압력은 보도 당일 전체 뉴스 꼭지에 대한 비율을 계산한 것이며, 하단(uncorrected)은 당일 뉴스 헤드라인 3꼭지만을 추려내 별도 분석한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쌍방 공격 추이는 비슷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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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연구진은 “이는 결국 이스라엘의 폭격 뉴스에 대한 구축(驅逐)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반대로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폭격에선 이같은 패턴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수치로 살펴봐도 이스라엘의 ‘전략적 공격설’은 상당히 신빙성이 높았다. 연구진은 “미국 내 대형 뉴스가 발생했을 때 이스라엘의 폭격 비중은 전체 폭격의 53.16%에 달했는데, 이는 대형 뉴스가 없을 때(38.67%)에 비해 15%포인트 가량 높았다”며 반면 “팔레스타인의 경우 두 조건에서의 이스라엘 폭격 비중은 전체 약 7%로 비슷했다. 폭격 시 (미국 내) 대형 뉴스 발생 여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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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형 뉴스가 발생했을 때 이스라엘이 폭격을 감행할 비중은 전체 비중의 53.16%로, 대형 뉴스 비발생시(38.67%)에 비해 15%포인트 가량 높았다. 팔레스타인은 두 경우 모두 약 7%로 비슷했다.




연구진은 이스라엘 언론이 이같은 ‘전략적 공격’을 부추겼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이들은 논문에서 “중국 천안문 사태가 터졌던 지난 1989년 (이스라엘 유력 신문인) 예루살렘 포스트는 당시 베냐민 네타야후 외무장관을 겨냥해 ‘세계의 관심이 천안문 사태에 쏠린 상황을 정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랍인들을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축출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고 짚었다.

이 시점(1989년)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전략적 공격’을 체계화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미국 여론을 의식한 이스라엘 군 수뇌부의 고민 역시 논문에 상세히 담겼다. 연구진은 “모셰 얄론 전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과거 참모총장 시절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전(全) 지휘 계층에서 (작전 개시에 앞서) 미국 여론의 반응을 살펴야 한다’고 공개 주문한 바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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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벤자민 네탄야후 총리와 함께 한 모셰 얄론 전 국방장관(오른쪽). 참모총장 시절 그는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전 지휘 계층에서 작전 개시에 앞서 미국 여론의 반응을 살펴야 한다"고 공개 주문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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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분석했나=연구진은 CNN·NBC 등 미국 유력 언론사의 12년치 보도에서 총 755꼭지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관련 뉴스를 추려냈다. 분석 결과 이중 428 꼭지가 미국의 대형 뉴스가 터질 때 쯤 보도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이 제시한 이론을 근거로 추정한다면, 이스라엘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2000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2009년·첫 임기)의 취임식, 그리고 세 차례의 월드컵(한일월드컵(2002년)·독일월드컵(2006년)·남아공월드컵(2010년) 당시 팔레스타인을 폭격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행사들이 모두 분석 기간(2000~2011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문 저자인 단테 시앙스포 교수는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특정 대통령의 취임식, 혹은 월드컵 경기에 이스라엘이 대규모 폭격을 감행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면서도 “(이런 행사들을 비롯한) 대형 이벤트에 이스라엘이 군사 공격을 감행했을 확률이 높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정확하다”고 설명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정치인의 여론 악용 가능성 감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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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 단테 프랑스 그랑제꼴 시앙스포대 경제학과 교수. [단테 교수 홈페이지]




논문 공동 저자인 루벤 단테 프랑스 그랑제꼴 시앙스포 경제학과 교수는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해당 연구를 통해) 정부기관 혹은 권력이 정치·군사적 행위에 앞서 여론을 의식한다는 점을 증명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군사 공격의 결과로) 민간인 살상 등 참사가 벌어진다면 해당 국가는 세계적인 비난에 직면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여론을 사전에 피하려는 인센티브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사례를 연구한 배경과 관련해 그는 “연구 분석을 위한 자료와 기간이 충분히 주어졌기 때문”이라며 “이스라엘을 콕 집어 비판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이 연구를 통한 함의는 사실상 모든 국가에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이 연구를 계기로 대중이 유력 정치인 혹은 권력이 언제든 여론을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감시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계인 단테 교수는 지난 2010년 프랑스 최고 고등교육 연구기관인 그랑제꼴 시앙스포 경제학과 조교수로 부임했다. 지난 2016년부터는 스페인 폼페우파브라대 교수를 겸임했다. 조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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