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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프로펠러 통째 날아간 헬기, 추락사고 전날 날개 부품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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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날개·구동축 사이에 끼는 댐퍼

한국항공우주산업 정비진이 교체

날개 잡아주는 슬리브 불량일 수도

중간이 칼로 잘린 듯 부러진 채 발견

지난 17일 추락사고로 5명의 목숨을 앗아간 해병대의 상륙기동헬기인 마린온은 사고 전날 진동 문제 때문에 부품을 교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국방부와 방산업계에 따르면 사고 기체는 지난해 12월 해병대가 제조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으로부터 인수한 뒤 비행시간이 140여 시간에 불과한 신품이었다. 그러나 지난 5월부터 진동이 심해져 격납고에서 정비를 받았다. 정비는 KAI의 정비인력 16명이 담당했다. 해병대는 2023년까지 KAI에 마린온의 정비와 수리 부속을 맡기는 내용의 성과기반군수지원(PBL) 계약을 맺었다.

정부 소식통은 “사고 전날 점검 결과 기체의 메인 로터 블레이드(회전날개)에서 댐퍼가 많이 닳은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정비진이 새것으로 바꾼 뒤 진동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시험비행에 나서다 사고를 당했다”고 말했다. 댐퍼는 회전날개와 구동축(날개를 돌리는 축·로터 마스트) 사이에 끼는 부품으로 충격을 완화해 진동을 줄여 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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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추락한 해병대 마린온 회전날개에서 떨어진 날개는 구동축과 연결되는 슬리브(동그라미)가 칼로 잘린 듯 부러져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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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온의 원형인 수리온은 개발 단계에서부터 진동 문제를 겪었다. 2012년 6월엔 떨림 현상을 추후에 고치는 조건으로 전투적합판정을 받았다. 수리온과 마린온은 실전배치 이후에도 간혹 진동이 너무 심해 조종이 힘들다는 조종사의 보고도 있었다.

해병대와 육·해·공군으로 이뤄진 마린온 추락사고 조사위원회(조사위)는 이날 사고 기체 잔해에서 수거한 블랙박스의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조사위는 댐퍼 교체와 추락사고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조사위가 파악한 추락 원인은 헬기의 회전날개 1개가 떨어져 나간 뒤 회전력이 한 곳에 쏠려 구동축까지 부러진 것이다. 조사위는 회전날개를 잡고 있는 슬리브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다. 슬리브도 구동축과 회전날개를 연결하는 부품이다. 슬리브는 사고 현장에서 마치 칼로 자른 듯 중간이 똑 부러진 상태로 발견됐다. 이 때문에 사고 기체의 슬리브가 이미 균열이 생긴 불량품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슬리브는 큰 충격에도 견디도록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부품이라 어지간해선 금이 가기 힘들다”면서도 “만약 정비 과정에서 금을 사전에 발견하지 못했다면 정비를 허술하게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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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 본체에서 떨어져 나간 회전날개.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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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위는 가급적 빨리 사고 원인을 파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선 헬기 사고가 일어나면 보통 1년이 넘게 조사한 뒤 원인을 확인한다”며 “현장에서 수거한 파편을 전자현미경으로 정밀 분석하고 사고 상황을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하는 과정을 거치려면 최소 3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심승섭 신임 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진급·보직 신고를 받으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고 원인을 제대로, 그리고 신속하게 규명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수리온 성능 최고” 김의겸 발언 논란=야당은 김 대변인의 전날 논평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지난 18일 “수리온이 결함이 있던 헬기라고 해서 마치 수리온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칠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 감사원이 지적했던 결빙 문제는 완벽하게 개량됐다”며 “현재 우리 수리온의 성능과 기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19일 “청와대 대변인 논평을 보니 마린온 헬기 사고 원인(에 대해) 청와대는 이미 기체 결함은 없는 걸로 결론내 놓은 것 같다”며 “조사위가 조사도 하기 전에 결론을 미리 내준 청와대 대변인에 대해 엄중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린온 추락사고 유족들도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장례식을 치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철재·이근평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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