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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ESC] 아이돌은 ‘뮤지션’이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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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커버스토리

작사·작곡할 줄 모른다는 편견은 옛말

방탄소년단 활동으로 대중 인식 전환

박경·방용국·수빈·엠버 등

작곡 나서는 아이돌 많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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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 가지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인기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을 설명할 수 있는 열쇳말은 무엇일까? 이 팀의 팬이라거나, 한국 아이돌 산업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도 대부분 ‘빌보드'나 ‘케이팝'을 떠올리는 데 그칠 것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이라는 팀의 탄생부터 성공 서사에 이르기까지,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열쇳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작업’이다. 올해 방탄소년단이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를 통해 공개한 다큐멘터리 <번 더 스테이지>에서는 바쁜 스케줄 중에도 호텔과 비행기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음악 작업에 몰두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이 치열한 노력의 결과가 방탄소년단의 음반이나, 종종 발표하는 믹스테이프로 공개된다.

국내 음악인들 모두 통틀어도 방탄소년단만큼 바쁜 팀도 드물고, 방탄소년단만큼 쉴 틈 없이 많은 결과물을 내놓는 팀도 드물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음악은 한국을 넘어서, 전 세계 음악 시장에서 주목을 받는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헷갈릴 수도 있다. 방탄소년단은 아이돌 그룹이 맞는가.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편견에 시달리던 아이돌들이 어느새 음악을 만들고, 앨범에 담긴 의미에 관해 세세하게 설명한다. 얼마 전 블락비 멤버인 박경은 신곡 ‘인스턴트’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올해 자신이 겪은 심정 변화가 음악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털어놨다. 빅스의 멤버인 라비는 세 번째 믹스테이프를 공개하기 전에 팬들과 라이브 영상 채팅을 통해 미리 곡을 들려주면서 왜 이런 곡을 만들게 됐는지, 어떤 동료들이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지 등 작업과 관련된 일화를 공개했다. 과거에는 소위 ‘뮤지션’이어야만 할 수 있다고 여겨지던 일을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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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는 일련의 과정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회사는 어떤 그룹을 만들 것인지 기획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멤버들을 캐스팅한 뒤에 콘셉트에 적합한 교육을 하고 무대에 세운다. 이 원칙은 거의 그대로다. 하지만 2000년대 초중반부터 힙합이 큰 인기를 끌자 덩달아 한국의 힙합 음악가였던 에픽하이, 다이나믹 듀오 등에 영향을 받은 세대가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힙합이라는 장르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뛰어난 랩 실력과 작곡 및 작사 경험을 지닌 청소년들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다. 이제 감이 잡히지 않는가? 지금 직접 음악을 만들면서 무대에 서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바로 그 세대다. 블락비의 지코나 박경, 방탄소년단 알엠과 슈가, 이엑스아이디 엘리, 비에이피 방용국, 위너 송민호 등은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경력에 힘입어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 캐스팅됐다. 이미 음악가로서의 자질을 키워온 이들이 연습생이 된 셈이다. 덩달아 회사에 들어온 뒤부터 작사와 작곡을 배우는 연습생들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B1A4 진영이나 방탄소년단 제이홉, 빅스 라비, 세븐틴 우지, 펜타곤 후이 등 이제는 너무 많아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다.

아이돌 그룹은 멤버 숫자가 많기 때문에 각자의 장점을 정확하게 파악해 어울리는 파트에 배치해야 한다. 따라서 팀의 음악을 회사와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멤버들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무기다. 그만큼 그룹의 정체성을 잘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앨범 작업을 총괄하는 총 프로듀서뿐만 아니라, 회사 내에서 주로 음악 공수를 담당하는 에이앤알(A&R?Artist and Repertoire) 팀원들과도 긴밀하게 소통하며 한 장의 음반을 완성해나간다. 트레이닝 시스템이 체계화되고 콘텐츠 제작 노하우가 쌓였다고 해서 그들의 결과물을 무조건 공장 시스템에 빗댈 수 없는 이유다. 직접 작사, 작곡을 하고, 음악에 자신의 진심을 담아야만 뮤지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청춘의 고민을 담아 가사를 쓰는 아이돌을 뮤지션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만큼 경계는 흐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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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모든 아이돌 그룹 멤버가 음악을 만들 필요는 없다. 꼭 작사, 작곡을 하지 않더라도 음반 콘셉트와 안무, 의상, 무대 연출에까지 직접 관여하는 멤버들도 많다. 회사가 큰 틀을 잡아주되, 연차가 쌓일수록 자신의 장점을 늘려가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모습은 나이가 들수록 전문성을 갖춰가는 여느 젊은 직업인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대중 앞에서 져야 할 책임도 늘어난다. 위너의 송민호는 <엠넷>의 <쇼 미 더 머니>에 출연해서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의 가사를 쓰고 불렀다는 이유로 큰 비판을 받았다. 이처럼 여성, 소수자 문제에 대한 성찰을 거치지 않은 가사로 문제가 되거나 표절 시비가 붙는 경우, 해당 음악을 만든 아이돌 멤버가 회사 뒤에 숨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만든 사람이 직접 무대에 서기 때문에 콘텐츠의 질과 성과에 관해서도 오히려 총괄 제작자인 회사보다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할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이는 남성 아이돌 멤버들에게 한정된 얘기다. 엘리나 (여자)아이들의 소연, 달샤벳 수빈, 에프엑스 엠버 등 작사, 작곡, 프로듀싱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여성 아이돌은 손에 꼽는다. 칭찬이나 비판 이전에 관심을 받을만한 숫자에도 이르지 못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남성 아이돌인 경우에는 ‘셀프 프로듀싱’, ‘전곡 작사 참여’ 등 보도자료에서부터 화려한 수식어가 붙지만, 여성 아이돌 그룹 멤버가 작곡이나 작사에 참여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에 대해 한 중견 걸그룹 소속사 관계자는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홍보에 이용하는 것보다 이번 콘셉트에서 살이 얼마나 빠졌고, 머리 스타일을 어떻게 바꿨는지 강조하는 게 훨씬 대중의 관심을 끌기 좋다”고 말한다. 최근 진행된 걸그룹 구구단 세미나(세정·미나·나영)의 쇼케이스에서도 멤버들이 노래와 작사 실력에 관해 얘기하던 도중, 남성 진행자가 갑작스레 다이어트와 몸매 관리에 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처럼 여성 아이돌들의 음악적 능력보다 외적인 부분에 주목하는 경향은 궁극적으로 기회의 평등에 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앞으로 한국 음악 산업에서 얼마나 더 깊이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와 연관된다는 점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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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을 불문하고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하는 기간은 10년 안팎에 그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많은 멤버들이 좀 더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연기자나 예능인을 꿈꿀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음악 활동을 그만두지 않고도 무사히 인생의 2막을 꾸려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아이돌 활동 이후를 내다보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박경은 보이그룹 더 보이즈의 스페셜 싱글을 작업하고, 라비는 걸그룹 엘리스의 곡을 만들었다. 엘리는 후배 걸그룹을 위한 곡을 써보고 싶다고 말한다. 10년 가까이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각자 성과를 거둔 이들이 후배 아이돌 그룹에게 곡을 주면서 그들의 지지자가 된다. 동시에 자기 자신은 독립된 프로듀서이자 음악가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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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성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돌은 젊을 때 바짝 버는 직업’이라는 세간의 편견은 머지않아 깨질 것 같다. 아이돌들 스스로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이다.

박희아(<아이돌의 작업실> 저자)

아이돌 노래와 춤을 특기로 하는 하이틴 그룹. 10대 청소년이나 청년들이 주요 팬층이다. 연예기획사 오디션을 보고 연습생으로 들어가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한다. 지망생은 100만명 남짓이지만, 그 중 데뷔할 확률은 1%, 성공할 확률은 0.01% 정도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케이팝(KPOP) 열풍을 이끄는 주역이며, 최근 방탄소년단이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음반 차트 1위를 하면서 화제가 됐다. ‘아이돌(idol)’이라는 영어는 원래 ‘신화적인 우상’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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