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손님 발길 뚝, 뚝… 모란시장 '씁쓸한 복날'

댓글 4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성남시, 작년부터 개 도축업체 건강원 등으로 업종전환 유도

초복(初伏)인 지난 17일 수도권 최대 개고기 유통단지인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 거리는 한산했다. 복날에 쓸 개고기를 사려고 수도권 보신탕 식당 주인들이 몰려들던 풍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때 50여 곳에 달했던 식용견 도축(屠畜)업체 가운데 현재 영업하는 곳은 단 한 곳뿐이다.

도축업체들은 지난해부터 식당이나 건강원으로 업종을 바꿨다. 식용견 도축을 반대하는 동물보호단체의 민원이 끊이지 않자 성남시는 2016년 12월 모란가축시장상인회와 협약을 맺었다. 상인들이 도축업을 포기하면 시(市)가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도록 돕겠다고 했다.

조선일보

초복을 하루 앞둔 지난 16일 경기 성남시 중원구 모란시장 가축 골목이 오가는 사람 없이 한산하다. 상인들은“1~2년 전만 해도 복날이 다가오면 개고기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했다. /성형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시 영업 중이던 도축업체 22곳 가운데 현재까지 21곳이 간판을 내렸다. 15곳은 염소·토끼를 재료로 한 보양식을 파는 건강원으로 전업(轉業)했다. 6곳은 식당을 차렸다. 시는 비 가림막을 설치해 주고 가게 앞 인도에서 영업을 허가해줬다.

30년간 식용견 도축을 했던 이강춘(62)씨는 지난 3월 닭개장집을 열었다. 하지만 하루 매출이 15만원에 불과해 적자에 시달리다 이달 초 '보신탕'을 메뉴에 추가했다. 이씨는 "나도 집에서 개를 키운다"며 "반려견과 식용견은 구분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도축업을 정리하고 이달 초부터 낙지음식점을 시작한 상인회장 김용북(62)씨는 "시에서 '이젠 모란시장에서 개 도축 안 한다'고 광고하니 시장을 찾는 손님 수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신승철(53)씨는 모란시장에 마지막 남은 식용견 도축업자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스물한 살 때 도축일을 시작해 8년 전 모란시장에 터를 잡았다. 신씨는 "많이 배우진 못했지만 이 일로 전남 벌교에 계신 어머니께 집을 사드리고, 큰아들을 서울대에 보내 국제변호사 만든 걸 보람 삼아 살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한 동물보호단체는 그를 '도살 특수(特需)를 누리는 파렴치범'이라고 부른다. 다른 도축업체가 문을 닫았는데 홀로 남아 특수를 누린다는 것이다. 신씨는 "업종 변경을 거부하니 시청과 구청 공무원들이 무시로 가게로 찾아왔다"며 "지금껏 단속 안 하다가 업종 전환을 거부한 가게만 집중적으로 단속하니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구청은 "신씨가 가게 앞에 임시 천막을 치고 철제 우리 등을 놓아 건축법을 위반했다"며 5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물건을 압류했다. 신씨는 법원에 '행정처분 효력 정지 신청'을 낸 상태다.

신씨는 "작년 초복과 비교하면 매출이 60% 줄었다"며 "평생 한 일을 법적 근거도 없이 관둘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다. 현행 축산물위생관리법에 개는 '가축'에 포함되지 않는다. 도축·유통·판매를 규제할 법적 근거는 없다. 성남시는 "앞으로도 자발적 업종 전환을 돕겠다"는 입장이다.

[성남=김승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