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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개는 소·닭과는 차원 다른 존재…인간과 유독 친밀한 과학적 이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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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초복을 시작으로 전국이 본격적으로 삼복더위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 불볕 더위만큼 뜨거워 지고 있는 것이 있다. 개의 식용과 도축에 반대하는 ‘개식용 종식 촉구집회’ 얘기다. 전날 낮 최고기온이 34도에 육박하는 가운데서도 서울 광화문광장과 시청광장ㆍ청와대 앞에서는 "정부는 개식용을 방관말고 개도살을 금지하라"고 외치는 동물보호단체들의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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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단체 LCA(Last Chance for Animals)는 초복 날인 17일, LA 코리아타운 윌셔 한국 총영사관 앞에서 'Stop Dog Meat' 구호가 쓰인 검은 유니폼을 입고 잡혀 있는 개 사진과 구호가 든 배너와 피켓을 들고 시위를 열었다. 또한 죽어있는 개들을 안고 늘어서서 "한국은 1년에 100만 마리, 하루 2740마리에 달하는 개를 도살한다"며 "반려동물들을 살해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시위는 12시까지 이어졌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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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도 거리로 나왔다. 15일 서울 동화면세점 앞에서는 대한육견협회 관계자들이 나와 "개고기를 전통 보양식으로 인정ㆍ존중해달라" 며 목소리를 높였다. 육견협회는 식용견을 사육하는 사람들의 협회다.

개는 인간의 가장 친밀한 '반려동물'이라는 의견과 개는 소나 돼지와 같은 가축이라는 의견이 충돌하는 가운데, 인간에 대한 개의 친밀성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연구들이 주목되고 있다. 개는 어떻게 인간사회에 이렇게 깊이 자리하게 됐을까.

가장 오래된 가축 개, 인간에게 ‘먼저’ 손 내민 늑대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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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2일, 제35회 영국의 시베리안 허스키 클럽을 앞두고 스코틀랜드에서 훈련 중인 시베리안 허스키. 시베리안 허스키는 동시베리아 에서 유래된 중형견으로 촘촘하게 덮인 모피를 지닌 썰매견이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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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조상은 늑대다. 늑대는 소·돼지·닭 등 다른 가축에 비해 훨씬 먼저 가축화가 이뤄졌다. 정확한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1만5000년 전 유럽에서 최초로 길들였다는 설과 1만2500년 전 아시아에서 길들여졌다는 설 등 여러 학설이 존재하는 상황. 그러나 다른 가축보다 사육 시기가 앞선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현재도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로 무리 생활을 하는 늑대를 인간은 어떻게 먼저 길들일 수 있었을까.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사회생물학) 교수는 “인간이 늑대를 길들여 개가 된 것이 아니라, 늑대가 먼저 인간을 찾아와 개가 됐을 수 있다”고 말한다. 소ㆍ돼지ㆍ닭 등 인간이 식용으로 하기 용이해 용도가 뚜렷한 동물에 비해, 늑대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고기를 먹는 쪽으로 풍습이 된 나라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개는 집을 지키고 반려동물로서 기능해왔다” 며 “식용이라는 뚜렷한 용도가 없는 데도 개가 먼저 가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을 덜 경계하는 ‘특별한 개체’의 늑대가 먼저 인간에게 찾아왔을 가능성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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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행동학자 최재천 교수는 늑대가 인간을 먼저 찾아와 가축이 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인간을 덜 두려워하는 개성을 가진 개체가 가축이 됐고, 이것이 이어져 와 오늘의 개가 됐다는 설명이다.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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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햄프셔대 생물학과의 레이먼드 코핀저 명예교수도 비슷한 가설을 제시한다. 그는 늑대가 개가 된 가장 중요한 이유로 ‘도주 거리’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도주거리란 무엇인가가 접근해 올 때 동물이 도피행동을 일으키는 거리로, 도주거리가 짧다는 것은 인간이 가까이 있어도 도주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코핀저 교수는 “사회성이 높고 인간을 덜 두려워해 도주거리가 짧은 늑대들이 인간의 생활영역 근처에서 서식했고, 이 특성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면서 점점 인간에게 가깝게 됐다”고 주장한다.

사람에 친밀하게 유전자 변형돼 와...선천적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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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해변에서 개와 놀고 있는 아이. 개는 흔히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친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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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개의 친밀성을 유전적으로 분석한 연구도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진화생물학 연구진은 최근 “인간의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WBS)’과 유사한 유전자 변화가 개에게도 일어났고 그 결과 개들이 외향적인 성격을 갖게 된 토대가 됐다”고 밝혔다.

WBS는 낯선 사람도 잘 믿고 상냥한 등 사회성이 지나칠 정도로 좋지만, 지능이 떨어지면서 건강과 외모에 장애가 나타나는 발달장애의 하나다. 이 질환은 7번 염색체 손상으로 발생하는데, 연구진은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개의 6번 염색체에서도 유사한 변형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개의 6번 염색체가 외향적 성격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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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사추세츠 주 월폴에 사는 '콜먼 월시(10)'는 발달장애의 일종인 '윌리엄스 증후군'을 앓고 있다. 이 질환은 7번 염색체 손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낯선 사람도 잘 믿는 등 사회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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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주도한 브리짓 본홀트 프린스턴대 교수는 "유전자 변형이 상대적으로 없는 개가 냉담하고 늑대 같은 행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듀크대의 진화 인류학자 브라이언 헤어 교수는 "고대에 사람을 두려워하는 늑대가 친근감을 지닌 늑대로 대체됐고 사람의 새로운 동반자(개)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최재천 교수는 “개체나 종의 개성에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이고 상호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며 “개의 사회성 역시 다양한 요인에 의해 진화ㆍ발생되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개나 소나 닭과 다를 게 뭐기에 개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느냐고 누군가 말을 건다면 나는 '개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 심지어는 영장류보다 더 인간의 마음을 읽어내고 교감하는 능력이 더 뛰어난 존재라고 대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 여우도 가축화가 될까
여우 가축화를 짧은 시간 내에 성공해낸 학자가 있다. 옛 소련 유전학자 드리트리 벨라예프와 류드밀라 트루트다. 이들은 1959년부터 수십 년 동안 은여우를 육종(식물이나 동물을 인간이 원하는 형태로 진화 또는 변형시키는 과정)해 가축화의 과정을 재현했다. 개처럼 꼬리가 말려 올라가고 귀가 누워 있으며 사람을 반기는 여우가 불과 20세대 만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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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러시아의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여우 농장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 은여우들. 1959년에 시작된 은여우 길들이기 연구로 사람을 반기는 여우가 탄생할 수 있다는 가설이 입증됐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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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실험을 시작할 때부터 온순한 성격을 가진 30마리의 수컷과 100마리의 암컷을 선별하여 1점에서 4점까지 점수를 매겼다. 공격성이 낮을 수록 점수가 높았다. 매년 가을 이렇게 여우를 선별해 다음해 1월 이들을 교배시키는 작업을 반복했다. 벨라예프는 이렇게 태어난 여우들의 행동과 형태를 면밀히 관찰했다.

1963년, 트루트는 4세대 은여우 새끼 중 수컷 한 마리가 꼬리를 격렬하게 흔드는 것을 관찰했다. 사람을 보고 꼬리를 흔드는 동물은 당시까지 개가 유일했다. 1966년 7세대 새끼들에서는 여러 마리가 꼬리를 흔들게 됐으며 이러한 형질이 유전된다는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개처럼 꼬리가 위로 말리고, 귀가 펄럭거리는 새끼들도 탄생하기 시작했다.

1973년 태어난 암컷 새끼는 반려동물로 사람들과 살아갈 수 있게 됐으며 이름은 '푸신카'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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