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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국민연금 높은 수익률 감사합니다”...자화자찬 친목모임 수준 기금운용위, 대수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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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국민연금<하>

CIO공백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회의록 분석

엄중 상황에서도 자화자찬에 덕담 넘쳐...“수익률 감사,치하”

7.28% 수익률 기록했지만 “시장에 묻어간 것” 지적

미국 11.2%, 노르웨이 13.2% 비해 미진

최고의결기구지만 비전문가가 대부분

평균 1시간46분 회의, 참석률 59% 불과

“합리적 결정 가능하게 전문성 높여야”

“국민연금 가입자 한 사람으로서 올해 10월까지 7.4%의 수익률을 달성한 데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A위원)

“시장 상황이 좋아서 좋은 목표를 달성해서 굉장히 잘하신 것 치하 드린다.”(B위원)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소공로 더 플라자 호텔 4층. 2018년 국민연금 목표 수익률을 설정하고, 지난해 수익률에 대해 평가하는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기금운용위는 국민연금 기금 운용을 결정하는 최고 의결기구다. 이 자리에서는 수익률이 높다는 덕담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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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청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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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년간 국민연금 최종 운용 수익률은 7.28%였다. 지난해 10월까지의 수익률이 7%를 돌파했다는 사실을 두고 위원들의 이른 축하가 이어졌다. 과연 이렇게 ‘치하’할 일이었을까.

지난해는 코스피 지수가 21.8% 상승했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금융시장이 호황이었다. 국민연금과 성격이 비슷한 다른 해외 연기금인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은 11.2%(2016년 하반기~2017년 상반기 회계연도 기준) 수익을 올렸고,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CPIB) 역시 지난해 11.8% 수익률을 기록했다. 노르웨이 정부연기금(GPFG) 수익률은 13.7%에 달했다.

국민연금의 실적과 비견되는 건 지난해 수익률이 6.9%였던 일본 공적연금(GPIF)이다. 하지만 일본 공적연금은 수익률이 낮다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아베노믹스’ 입김으로 무리한 투자를 이어가면서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했다는 게 비판의 요지였다.

산유국에다 로열더치셀 같이 석유 생산 기업의 경제 비중이 큰 네덜란드는 오랜 저유가로 인해 경기 부진을 겪었지만, 네덜란드 공적연금(ABP)도 한국보다 높은 7.6%의 수익을 올렸다.

요약하면 지난해 국민연금 수익률이 결코 기금운용위원들끼리 자화자찬할 수준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민간 업체에 재직 중인 국민연금 출신 인사는 “지난해 7% 정도의 수익률을 기록한 건 국민연금이 잘해서가 아니다. 시장에 묻어간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기금운용위의 역할은 평소보다 더 중요하다. 지난해 7월 강면욱 전 기금운용본부장 사퇴 이후 국민연금 최고운영책임자(CIO) 자리가 지금도 공석이라서다. 하지만 회의록을 통해 공개된 모습에서 위기감이나 책임감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국민연금 CIO 자리가 빈 상태에서 열린 기금운용위 회의는 총 7차례. 이 중 회의록이 공개된 5차례 회의를 분석해보니 ‘질’은 둘째치고 ‘양’부터 문제였다. 회의 시간은 평균 1시간 46분에 그쳤다. 식사 시간이 포함된 회의였는데도 2시간을 채 채우지 못했다. 참석률은 더 심각하다. 평균적으로 위원 정원 20명 중 절반을 간신히 넘긴 11.8명이 참석해 참석률이 59%에 그쳤다.

그렇다고 ‘짧고 굵은’ 회의도 되지 못했다. “보고 안건에 대한 질문 사항이나 의문 사항이 있으면 서면으로 하고 그다음 회의에서 답변으로 처리하면 좋겠다”(C위원)는 발언도 회의 중에 등장한다. 중요한 수익ㆍ운용 사항도 보고서로 대체하고 의원들에 질문도 형식적 질문에 그치는 사례도 많았다. 깊이 있는 토론보다는 속전속결식으로 회의가 진행되는 경우가 잦았다.

기금운용위 내부에서조차 “기금운용위가 투자 전문가들의 모임이라는 느낌은 안 든다”(D위원)는 지적이 회의 중간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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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 면면을 두고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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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회의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CIO가 공석이 되기 전인 지난해 1~6월 열린 5차례 기금운용위원회 회의 시간은 평균 1시간 43분, 참석률은 65%에 그쳤다.

현재 갖춰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구조를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기금운용위 위원 구성은 국민연금법 제103조에 따른다.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을 포함해 정부 장ㆍ차관 5명, 국민연금 이사장 등 6명이 당연직 위원을 맡는다. 나머지 국민연금 가입자 쪽 위원도 한국경영자총협회ㆍ대한상공회의소ㆍ중소기업중앙회ㆍ한국노동조합총연맹ㆍ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ㆍ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ㆍ한국외식업중앙회ㆍ소비자시민모임ㆍ참여연대 등 경제ㆍ시민단체 측 인사로 채워졌다. 관계 전문가로 분류되는 위원은 단 2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정부 입김에서 벗어나지 않은 국책연구원 원장 몫이다.

기금 운용 전문가는 사실상 전무하다. 정부부처장과 경제ㆍ사회단체 인사가 대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 기금운용위 구조로는 국민연금 운용 수익 제고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8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는 위원장조차 ‘투자 문외한’이었다.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장이었던 정진엽 당시 복지부 장관은 의사 출신이다.

기금운용위 외에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 성과평가보상전문위원회 등 산하 전문 위원회들도 위원 구성과 운영 실태가 기금운용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전문성 부족’, ‘거수기’란 비판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금운용위 등의 구성을 전문가 중심으로 시급히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비전문가 중심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다가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게 이유다.

실제 선진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자금 이탈’, 미ㆍ중 무역 전쟁 등으로 인해 전 세계 금융시장은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처럼 증시 활황으로 가만히 있어도 수익이 나는 상황은 기대하기 힘들다. 손실을 피하기 위한 전문적이면서도 능동적인 투자가 중요한 시기가 왔지만, 국민연금은 CIO마저도 제대로 임명하기 힘든 ‘리더십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여기에 스튜어드십 코드까지 시행되면 국민연금이 국내 경제와 산업에 미칠 영향력은 한층 커질 전망이다.

급선무는 국민연금 운용에서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동시에 높이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금운용위원회는 ‘관리 수탁자’가 아니라 ‘운용 수탁자’”라며 “기금운용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위원회가 심의하는 안건은 상당한 수준의 전문가적 식견이 없으면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운용 위원을 전문가 집단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 연구위원은 이어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해 전문가 집단으로의 재편이 어렵다면 위원들을 전문가로 만들어야 한다”며 “미국 CalPERS처럼 일반인 위원들을 전문가 수준으로 교육을 하거나, 아니면 전문 지식을 갖춘 스텝을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기금운용위원의 전문성을 보완하고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개편이 필요하다”며 “지금처럼 단체 대표만 기금운용위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단체가 추천하는 금융 전문가가 1명 더 추가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와 함께 기금운용위 산하에 준법 감시·성과 평가·안건 생산 등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상설기구를 만드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현재 상정되는 안건은 보건복지부가 마음대로 정하고 있는데 이 상설기구를 통해 기금운용위 자체에서 안건을 생산하고, 합리적 판단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현숙ㆍ이현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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