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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관광지의 비명…여수 밤바다도 한국 나폴리도 ‘교통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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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버투어리즘, 관광지의 비명

① 해양도시 여수·통영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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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시와 경남 통영시 두 도시는 한려수도의 시종점이다. 두 도시는 모두 케이블카를 설치하면서 ‘관광 대박’을 쳤다. 지난해 여수를 찾은 관광객은 1500만명, 통영을 다녀간 사람은 734만8500명이다. 국내 최고의 관광지인 제주의 방문객이 1년에 1500만명, ‘과잉관광’(오버투어리즘)의 대표적 도시인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1년에 2천만명임을 고려하면 여수와 통영의 관광 흥행은 다른 지방도시들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 하지만 막다른 항구에 세워진 오래된 길을 가진 두 도시는 그 대가로 심각한 교통 혼잡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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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 14일 밤 9시 여수시 종화동 해양공원. 원도심인 중앙광장에서 하멜등대까지 1㎞ 남짓한 해변은 더위를 식히러 찾아온 이들로 북적였다. 버스킹 공연장엔 200여명씩이 몰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를 합창하는 소리, 터지는 박수와 함성으로 주말 저녁 해변은 잠들 줄 몰랐다.

2012년 해양박람회는 여수를 바꿔놓았다. 고속철도와 자동차도로가 뚫리고, 1.5㎞의 해상 케이블카가 개통됐다. 주민 30만명의 50배에 이르는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제일 먼저 도로가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특히 볼거리와 먹거리가 몰려 있는 원도심 일대가 심각하다. 중앙광장~해양공원~수정동~거북선대교~돌산공원~돌산대교~여객선터미널~중앙광장을 잇는 8㎞ 구간은 주말마다 지체와 서행 상태다. 왕복 2차로인 돌산대교 부근 1.07㎞와 낭만포차가 있는 해양공원 일대 1.72㎞는 사실상 주차장으로 바뀌어 도로 기능이 마비된다.

30만 여수에 연 1500만명 찾아
낭만포차 일대 도로 8㎞ 몸살
주민들 교통체증·주차난에 고통
“도심 진입 막고 순환버스 어떤가”


여수 교통난의 근본적인 이유는 케이블카, 돌산도, 향일암 리조트 등 주요 관광시설로 가는 길들이 원도심의 좁은 길을 거쳐 가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입구가 좁은 항아리처럼 밀려드는 차들은 많은데 나갈 곳이 없다. 여수시에서 만든 낭만포차가 여수 밤바다를 장악하는 등 여수의 좋은 풍광을 관광시설에 모두 내준 막개발도 문제로 지적된다.

여수에선 이미 3년 전부터 주민들이 교통 체증을 견디다 못해 들고일어났다. 돌산 지역 이장단·청년회·부녀회 등 단체 5곳은 케이블카 개통에 따른 교통난을 해결하라고 수많은 펼침막을 내걸었다. 여수시민협은 포장마차의 갓길 주차와 보행권 침해 등을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했다. 주민 이병석(65)씨는 “마을 아래 도로를 이용하거나 주차하는 걸 포기한 지 오래됐다”고 하소연했다. 이웃 이동일(76)씨는 “시장 볼 때 병원 갈 때 차라리 자전거로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여수 도심의 지난주 교통량은 평일 2만5천대, 주말 3만대였다. 아직은 일부 구간 지체지만 휴가철이 본격화하면 지체·정체가 훨씬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여수 주민들은 ‘차량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곽재철 여수시민포럼 조직국장은 “최고의 공원을 외지인들의 술판으로 빼앗겼다는 상실감이 있다. 그럼에도 관광객과 공존해야 한다면 관광객 차량을 제한해야 한다. 도심 외곽의 공영 주차장에 대도록 하고 무료 순환버스를 이용해 도심에 진입하게 해야 한다. 도심 쪽엔 주민만 차를 갖고 들어오고 주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여수에서 겪고 있는 문제는 전형적인 ‘과잉관광’이다. 한 지역에 너무 많은 수의 방문객이 찾아와 지역 주민의 삶의 질과 관광객의 만족도가 모두 떨어지는 현상이다. 이렇게 ‘과잉관광’이 계속되면 관광지의 환경과 주민의 삶이 모두 파괴된다. 실제로 한 해 1500만명이 찾아오는 여수는 이미 ‘관광 수용력’을 초과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강성일 관광학 박사는 “관광객이 늘어나 관광과 직접 관련이 없는 주민들의 삶까지 팍팍해지면 수용력의 한계에 이르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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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해양도시 통영시도 여수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통영은 2008년 케이블카, 지난해 루지(바퀴 달린 썰매)가 개통하면서 역시 ‘관광도시’로 대박이 터졌다. 통영시는 ‘하늘엔 케이블카, 땅엔 루지’라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케이블카의 경제효과는 연간 1300억~1500억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케이블카와 루지가 있는 통영시 산양읍 미륵도 관광특구 주변 도로는 주말에 주차장이 돼버렸다. 4차로인 통영대교와 2차로인 충무교 등 다리 2곳을 이용해 10~20분이면 미륵도로 건너갈 수 있는데, 휴가철엔 보통 1시간30분 이상 걸린다. 통영도 여수처럼 다리 2곳을 거쳐 커다란 관광특구로 갈 수 있도록 만들면서 교통지옥은 예상된 것이었다.

‘관광특구 통영’ 미륵도도 신음
케이블카 이어 루지 개통뒤
10~20분 걸리던 다리 1시간반이나
“외부 차량에 진입로 받자” 의견도

과잉관광땐 여행객 유입 조절
주민삶과 조화로운 관광정책 필요


통영 미륵도 주민들도 지난 2월 놀이공원인 통영어드벤처타워 건설사업 폐기 요구에 나섰다. 주민들은 “케이블카·루지가 지역경제에 도움을 준다고 해서 여러 불편을 참았다. 그런데 이득은 몇몇에만 돌아갈 뿐이고, 대다수 주민이 겪는 고통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더 이상의 놀이시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통영시에선 관광지 진입 차량에 ‘요금’을 부과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정광호 통영시의원은 “외부 차량에 ‘도심 진입 요금’을 부과하는 방법으로 관광객 수를 조절하자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송도자 ‘통영항 지키기 시민연대’ 공동대표도 “진입 차량에 요금을 부과하는 등 제한을 둬야 진정으로 ‘통영다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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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관광산업의 경제적 효과를 더 중시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통영시의 한 관계자는 “통영 시민들이 관광객들 때문에 겪는 불편이 경주 등 유명 관광도시보다 더 크다고 말할 수 없다. 관광은 통영의 주력산업이다. 특히 올해는 인근 사천시나 양산시가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면서 통영의 관광객이 다시 600만명대로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선 관광객과 주민들의 삶을 조화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수, 통영과 비슷한 문제를 겪는 제주에서 제주관광공사가 지난해 발표한 ‘제주 관광 수용력 연구’를 보면, ‘제주 관광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고 제주 거주민이 관광에 대해 호감을 가지는 범위 내에서’ 관광 산업이 이뤄져야 함을 강조했다. 관광 덕분에 주민들의 삶이 개선되는 측면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오버투어리즘에 시달리는 세계적인 도시들은 관광객 인원수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남 신안군 흑산면 영산도 주민들은 환경보전을 위해 하루 50명으로 관광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과잉관광’ 조짐이 보이면 관광객 유입을 조절하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시설 규모와 자원 분포에 따라 하루 적정 인원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박주영 연구위원은 “과잉관광의 기준을 일률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단 주민이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과잉관광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주민, 관광객과 함께 과잉관광을 완화할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수 통영 제주/안관옥 최상원 허호준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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