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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4 (금)

[잠못드는 파출소-②서울역파출소] 여름밤 노숙인 즐비, 악취에 위협까지…“안맞아본 경찰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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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서울역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이 순찰 도중 노숙인를 발견하고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파출소 바로 옆 노숙인 쉼터로 인계된다. [이민경 수습기자/coldshould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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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파출소 한 달 업무량, 여기서는 하루치 불과”

-노숙인 밤마다 주취난동ㆍ노상방뇨 등 긴장의 연속

-“위생 장갑 끼고 순찰…가족 걱정할까 말도 못 해요”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ㆍ이민경 수습기자] “여, 신고하러 왔수다.”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 도착하는 기차가 점차 뜸해지기 시작하는 오후 8시55분께 반바지 차림의 50대 남성이 서울역파출소를 찾았다. 산발과 어눌한 말투를 확인한 경찰은 ‘노숙인쉼터에 문제가 생겼구나’하고 직감했다.

남성은 쉼터 직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하고 싶다고 말했다. 곧장 경찰관 3명이 파출소에서 30m 정도 떨어진 노숙인쉼터로 향했다. 출동한 현장에는 오히려 폭행을 당한 쉼터 직원이 있었다. 노숙인이 시비 끝에 직원을 폭행하고 경찰에 거짓 신고를 한 것이다. 쉼터 직원은 “흔히 있는 일”이라며 경찰에 가해자를 처벌하지 말아 달라 부탁했고, 직원 덕에 풀려난 남성은 쉼터를 나와 서울역 인근에서 다시 노숙을 시작했다.

주말을 앞둔 지난 13일 저녁, 서울역파출소는 이날도 몰려드는 노숙인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곳은 서울 안에서도 노숙인을 가장 많이 상대하는 파출소로 분류된다. 경찰이 파악하고 있는 상주 노숙인만 250여명. 그나마 야외 노숙이 가능한 여름이라 줄어든 숫자다. 추위가 심한 겨울에는 밤마다 서울역으로 몰려드는 노숙인 탓에 업무가 힘들 정도다.

손덕호 서울역파출소장은 “다른 파출소가 한 달 동안 처리할 사건을 여기서는 하루 동안 처리한다”며 “서울역 앞에서 자주 진행되는 집회에 노숙인 문제가 겹쳐 사건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른 파출소와 달리 이곳에는 정수기가 없다. 노숙인들이 몰래 들어와 정수기를 고장내는 일이 잦아지자 정수기를 치우고 대신 물병을 갖다 놨다. 파출소 바로 앞은 노숙인들의 노상방뇨가 반복되며 역한 냄새까지 난다. 이날도 서울역 광장 한편에서는 노숙인들의 술판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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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지하통로에 노숙인들이 자리를 깔고 누워있다. 경찰이 파악한 서울역 상주 노숙인는 250명에 달한다. [이민경 수습기자/coldshoulder@heraldcorp.com]


날이 어두워지면 야간순찰이 시작된다. 경찰관들은 두터운 안전장비와 함께 파란 위생장갑을 챙긴다. 순찰 지역의 위생상태가 워낙 나쁘기 때문이다. 순찰 도중 만진 오물과 쓰레기 탓에 병에 걸리는 경찰관까지 생겨 위생장갑은 야간순찰의 필수품이 됐다.

갑작스레 달려드는 노숙인들도 경찰관들에게는 큰 위협이다. 이날 순찰에 나선 A 경관은 이미 눈 주변이 검게 멍들었다. 얼마 전 술에 취한 노숙인이 달려들어 폭행을 당했다. A 경관은 “아내에게는 길가다 넘어졌다고 둘러댔다”며 “노숙인한테 경찰이 맞았다고 하면 가족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걱정될 뿐”이라고 한숨을 지었다.

이날도 순찰 도중 위험한 상황이 반복됐다. 순찰 도중 속옷만 입은 채로 난동을 부리는 노숙인이 나타났다. 경찰관들이 옷을 입히려 해도 노숙인은 욕설을 하며 저항했다. 결국 경찰관 네 명이 붙어 간신히 노숙인에게 바지를 입힐 수 있었다. 난동을 부린 남성에게는 결국 수갑이 채워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해 사건을 해결해도 경찰관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서울역파출소 소속 B 경위는 지난 4월 신고를 받고 절도를 하던 50대 여성을 체포했다가 경위서를 쓰는 처지에 놓였다. 서울역 상점에서 신발을 훔치던 여성을 검거했는데, 체포된 피의자가 오히려 강압체포를 당했다며 B 경위를 신고한 것이다. 피의자는 이후 재판에 넘겨지고 혐의가 인정돼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B 경위 역시 해명을 위해 이날 밤늦게까지 경위서를 작성해야 했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역파출소에서 노숙인에게 맞아보지 않은 경찰관은 없을 것”이라며 “매일 노숙인들의 폭력에 대처해야하기 때문에 어느 파출소보다 조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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