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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자유한국당 혁신, 세 가지 교훈과 한 가지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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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18

2000·2004·2011년 성공의 세 가지 교훈

① 희생 필요 ② 싹싹 빌어야 ③ 과감히 개혁해야

어떤 경우든 ‘유력 차기 대선주자’ 있어야

인적 쇄신은 2019년 겨울에야 시작할 것

전당대회 홍준표 재출마 당선 여부 촉각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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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혁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 고비를 넘고 있습니다. 안상수 준비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선출을 위한 여론조사를 중지하고 김성태 대표권한대행에게 의원총회 등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 후보자 한 사람을 선정해 달라고 건의하기로 했습니다.

16일 의원총회를 열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일단은 김성태 권한대행이 김병준 김성원 박찬종 이용구 전희경 다섯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을 선정하면 큰 가닥은 잡힐 것 같습니다.

당내 소식통들은 초재선 의원들의 지지를 받는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가 비대위원장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합니다. 비대위원장은 다음 전당대회 전까지 자유한국당 혁신 작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럼 이제 자유한국당은 혁신되는 것일까요? 혁신은 무엇일까요? 한자의 의미를 그대로 풀이하면 가죽을 새로 바꾸는 것입니다.

왜 하는 것일까요? 정당의 목적은 집권입니다. 선거에서 이겨야 합니다.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혁신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지지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국민이 지지할까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정당도 자신의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 좋습니다. 살아 있는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는 세 차례 혁신 성공 사례가 있었습니다. 세 차례 성공에서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희생이 필요합니다. 정치는 고대 원형경기장에서 벌이던 검투사들의 대결과 닮은 측면이 있습니다. 관객은 영웅이 피를 뿌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환호합니다.

1997년 12월 대선 패배로 정권을 넘겨준 한나라당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위기에 처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을 만들어 원내 과반 의석을 노렸습니다. 이회창 총재는 윤여준 총선기획단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당시 한나라당 양대산맥의 보스였던 김윤환 이기택 씨를 공천에서 탈락시켰습니다. 당시 신문의 제목이 ‘금요 대학살’이었습니다. 혁신 공천 덕분에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원내 1당을 유지하는 성공을 거뒀습니다.

둘째, 싹싹 빌어야 합니다. ‘싹싹’이라는 부사를 제가 붙인 것은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는 관존민비의 유교적 전통이 있습니다. 관료나 정치인은 높은 사람입니다. 높은 사람은 잘못했다고 빌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빌면 국민은 용서할 가능성이 큽니다.

2004년 3월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소추를 의결했습니다. 국민은 자신이 직접 뽑은 대통령을 국회의원들이 탄핵하는 것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탄핵 역풍이 강하게 불었습니다. 한나라당은 300석 가운데 50석 미만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다급해진 한나라당은 박근혜 의원을 불러냈습니다. 박근혜 의원은 당 대표에 당선된 뒤 한나라당 간판을 떼어내 여의도 천막당사로 옮기고 총선을 치렀습니다. 한나라당 총선 광고는 국민이 회초리로 박근혜 대표의 종아리를 때리는 장면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자 야당 대표가 싹싹 비는 모습을 보고 유권자들의 마음이 풀렸습니다. 한나라당은 121석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 출신이었는데도 부산에서 열린우리당 당선자는 조경태 후보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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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과감하게 개혁해야 합니다. 보수는 지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혁하지 않으면 썩게 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보수의 과감한 개혁에 국민은 박수를 칠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습니다.

2011년 10월 26일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서울시장을 민주당에 내줬습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서울시장이 야당에 넘어갔다는 것은 한나라당에 그 자체로 공포였습니다. 선관위 디도스 사건까지 터졌습니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를 다시 불러내 비대위원장을 맡겼습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김종인 전 의원, 이상돈 교수, 이준석씨 등으로 파격적인 비대위를 꾸리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습니다. 색깔을 빨간색으로 바꿨습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약속했습니다.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했고 2012년 대선도 이겼습니다.

한나라당의 세 차례 혁신 성공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처럼 자명합니다. 그러나 세 가지 교훈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국민이 차기 대통령감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인물의 존재입니다. 2000년 혁신은 이회창 총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2004년과 2011년의 혁신도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이 진정성을 받아들였습니다.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의 존재는 세 가지 교훈보다 훨씬 더 중요한 혁신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 가지 교훈과 한가지 법칙을 기준으로 지금 자유한국당을 평가해 보겠습니다.

자유한국당에는 지금 희생도 없고, 싹싹 비는 사람도 없고, 과감한 개혁도 없습니다. 더더구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지방선거 직후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했지만 그건 이벤트에 불과했습니다. 친박 의원들은 홍준표 전 대표와 복당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의원총회가 열릴 때마다 “김무성 나가라” “김성태 나가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비박은 친박 때문에 선거에서 졌으니 입을 닥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어떤 사람이 지금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심리를 이렇게 3단계로 분석했습니다.



“첫째, 문재인 정부는 민생 경제를 살릴 능력이 없다. 실패할 것이다. 2020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은 패배하지 않는다. 둘째, 문재인 정부가 실패하지 않으면 총공격을 퍼부어 정치적으로 실패하도록 만들면 된다.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은 패배하지 않는다. 셋째, 문재인 정부가 실패하지 않고 자유한국당이 총선에서 패배하더라도 어쨌든 나는 당선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나는 국회의원을 계속할 수 있다.”



참 편리하지요?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의 디제이피 전략에 대응해 신한국당 당직자가 전개했던 ‘3단 논법’이 생각납니다.



“첫째, 디제이와 제이피는 욕심이 많다. 따라서 디제이피 연합은 안 될 것이다. 대선은 우리가 승리한다. 둘째, 혹시 디제이피 연합이 될 것 같으면 우리가 깨버리면 그만이다. 따라서 대선은 우리가 승리한다. 셋째, 디제이피 연합이 되더라도 우리가 이길 수 있다. 따라서 대선은 우리가 승리한다. 결국 어떤 경우에도 대선은 우리가 승리한다.”



한나라당은 1997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했고 10년 동안 야당을 했습니다. 그리고 절치부심 끝에 다시 정권을 잡아 10년 여당을 했습니다. 지금은 자신들이 세웠던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 있고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했습니다. 그런데도 반성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습니다. 2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의 모습에 진저리를 치는 사람들이 “차라리 해산하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해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정당법 45조(자진해산) 1항은 “정당은 그 대의기관의 결의로써 해산할 수 있다”, 2항은 “정당이 해산한 때에는 그 대표자는 지체 없이 그 뜻을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48조(해산된 경우 등의 잔여재산 처분)는 “자진해산한 때에는 그 잔여재산은 당헌이 정하는 바에 따라 처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해산을 결정할 수 있는 대의기관은 전당대회입니다. 자유한국당 당헌은 14조 전당대회의 기능에 “당의 해산과 합당에 관한 사항”을 명시해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당대회를 열어 해산을 결의해야 해산할 수 있습니다.

청산위원회 규정이라는 당규도 있습니다. “당이 해산 또는 기타 사유로 소멸된 때에는 잔여재산처분 등 청산에 필요한 사항을 처리하기 위하여 위원회를 둔다”, “위원회는 소멸 당시의 상임전국위원회가 설치한 수임기구로 구성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청산위원회는 잔여재산의 처리, 채권의 추심 및 채무의 변제, 현존 사무의 종결, 기타 청산절차 등 청산 전반에 걸친 사항을 처리합니다.

그렇지만 자유한국당은 청산 가치보다 존속 가치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바로 최대의 기득권자들입니다. 정당이 해산하면 지역구 의원들은 무소속이 되고 비례대표 의원들은 의원직을 잃습니다. 따라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자유한국당 해산에 찬성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전례도 없습니다.

자유한국당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 가운데 “차라리 갈라서라”는 주문도 있습니다. 친박과 비박으로 갈등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분당하라는 요구입니다. 분당은 의원들의 집단탈당을 의미합니다. 집단탈당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집단탈당은 대선주자가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친박 인사들이 탈당해서 친박연대라는 정당을 만들었습니다. ‘친박 무소속 연대’와 손잡고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박근혜라는 중심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탄핵을 명분으로 집단 탈당했던 진짜 이유는 반기문이라는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정계개편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선을 포기하고 주저앉자 바른정당 의원들은 차례차례 자유한국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 자유한국당 안팎에는 아무리 둘러봐도 의원들의 집단탈당을 촉발하고 탈당한 의원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대선주자급 정치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갈라설 동력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유한국당은 이대로 끝나는 것일까요? 언제쯤 혁신이 가능한 것일까요? 이렇게 될 것입니다. 우여곡절을 거치겠지만 혁신 비상대책위원회는 출범할 것입니다. 그러나 비대위는 당분간 별로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보수의 혁신’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여는 수준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혁신을 추진할 비대위가 문제가 아니라 혁신을 받아들여야 하는 의원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죽음이 눈앞에 닥쳐야 불사의 묘약을 찾아 나서는 것이 인간입니다. 한나라당의 세 차례 혁신이 가능했던 것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의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야 ‘일부의 죽음’에 반발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2019년 겨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절반을 지나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성적표와 2020년 총선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때쯤이면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설 자유한국당의 유력 주자들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이 진짜로 혁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하지 못할 것인지는 그때 가서야 결정될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국민이 인정할 수 있는 차기 유력 대선주자의 존재입니다. 그럴듯한 대선주자가 있어야 희생양을 찾아서 목을 치든, 싹싹 빌든, 과감하게 개혁을 하든 모든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변수는 홍준표 전 대표입니다. 홍준표 전 대표는 2017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서 2위를 차지한 정치인입니다. 대선주자급 정치인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지만 쉽게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미국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 떠나면 언제 돌아오나?

“추석 전에 올 것이다. 추석에 와서 제사도 지내야 한다. 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공직에 들어선 뒤, 36년간 숨 가쁘게 살아왔기 때문에 한두 달쯤 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국에 가는 것이다.”

-이런 위기가 심각해지면 다시 정치권에 ‘홍준표’가 들어올 공간이 생길까?

“그건 알 수 없다. (중간 생략) 대통령이라는 것은 하늘의 뜻이 있어야 한다. 천시가 맞아야 되고, 자기 운이 맞아야 된다.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자리가 아니다.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려고, 정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 나라에서 참 혜택을 많이 받은 복 된 인생을 산 사람이다. 내 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세계 강국이 되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아서 활동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그래서 정치를 은퇴하느냐 안 하느냐 그런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만약, 돌아온다면 당으로 오나? 혹시 당 대표에 다시 도전할 수도 있나?

“당원이니까 당으로 와야겠지. 당 대표? 그건 아직 할 이야기가 아니다.”



다음 전당대회에 대표로 다시 나설 수 있다는 얘깁니다. 차기 대통령 선거에도 나서고 싶다는 뜻입니다.

좀처럼 믿어지지 않아서 자유한국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홍준표 대표는 다음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 답변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선될 것이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저에게 그 인사는 “지금 자유한국당 위원장 분포가 그렇게 되어 있고 분위기도 그렇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선거운동 중이었던 6월 7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홍준표가 굴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굴복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자신의 표현처럼 변방 비주류 출신으로 주류에 진입한 정치인의 오기 같은 것이 느껴지는 발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오기와 고집이 홍준표 전 대표 자신과 자유한국당 전체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홍준표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하고 출마하면 당선될 것 같다는 얘기를 어느 민주당 의원에게 했습니다. 그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은 뒤 웃으며 딱 한마디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로서야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요.”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탄핵, 대선 패배, 지방선거 참패로 지금 쪽박을 찼습니다.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정치 전체 차원에서 참 불행한 일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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