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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세상읽기]회사 안에서는 사라지는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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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인도 국빈방문에서 쌍용차 최대 주주인 마힌드라 회장을 만나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문제가 노사 합의로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 관심 가져주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이 소식에 쌍용차 주가가 급등했다.

경향신문

또 문 대통령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함께 뉴델리 인근 삼성전자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도 만났다. 문 대통령은 신공장 준공을 축하하면서도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삼성전자 등 주가가 일제히 올랐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주가가 춤을 추니, 과연 정치와 경제는 하나다. 물론, 부정부패한 ‘정경 유착’과는 다른 의미로.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라는 말이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시장 등을 시민이 뽑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되어도, 회사 안에 가면 그 민주주의가 없다. 노동자의 일상인 일터엔 오히려 독재가 넘친다. “회장님한테 밤새 직접 접은 종이꽃 드리고, 노래도 부르고, 팔짱도 끼고, 또 개중에는 무용 전공한 어떤 동기는 부채춤도 추고….” 어느 항공사 승무원이 증언한 경영 독재의 단면이다.

사실, 삼성 재벌에서 나온 6000여건의 노조 대책 문건이나 대한항공 및 아시아나항공에서의 다양한 ‘직장 갑질’ 사례들은 “도대체 이게 회사냐?”라고 묻게 한다. 삼성의 노조 대책 문건은 ‘참여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 보좌를 했던 노무사가 삼성 재벌로 들어가 노조 파괴 자문을 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다. 정치·경제를 넘나들며 민주주의의 반대 방향으로 가다니.

한편, 청년 등 고용상황이 최악으로 달리는 가운데, 청년들은 여전히 공직 아니면 대기업·공기업을 선호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2018 대학생이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을 물었더니, CJ·네이버·삼성전자·한국전력·인천공항공사·아모레퍼시픽·LG·신세계·한국공항공사·아시아나항공 등 10개 기업이 꼽혔다. 순서보다 중요한 건 선택의 근거다. 우수한 복리후생 및 일하기 좋은 이미지, 고용안정, 관심업종, 업무뿐 아니라 삶의 가치를 존중하는 분위기, 만족스러운 급여와 투명하고 공평한 보상, 임직원의 참여와 소통을 기반으로 한 기업문화 등이다. 물론, 이 근거가 피상적 이미지인지 실상인지 잘 따져야 한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최고 재벌답게 급여와 보상이 푸짐한 대신 회사 비판이나 노조 활동을 철저히 막는다. 2013년에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를 만든 염호석씨가 회사에 수개월간 시달리다가 2014년 자살로 항거했다. 더 놀랍게도, 염씨 유언에 따라 노조장으로 장례를 치르려 했는데 갑자기 그 ‘아버지’가 가족장으로 돌렸다. 이제 드러난바, 삼성 측이 6억원으로 회유한 결과다. 노조 탄압으로 죽은 것도 억울한데, 죽음 앞에 돈으로 장난치는 자들을 어떻게 봐야 하나? 가슴이 먹먹하다.

“공장 안에도 민주주의가 꽃핀다”는 말이 상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7월14일의 대한항공 및 아시아나항공 직원연대처럼, 두려움과 냉소주의를 넘어서 ‘함께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공감의 연대가 답이다. “침묵하지 말자” “스킨십 그만해” “마음에도 없는 말, 이젠 하기 싫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다음으로, 헌법·노동법에 보장된 노조 결성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 (산재와 관련해 2007년 영국의 ‘기업살인법’이 벌금에 상한선을 두지 않듯) 매우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 특히, 실무책임자나 사업주 개인의 처벌과 함께, 전체 시스템의 실패라 규정하고 ‘인간존중’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강제해야 한다.

끝으로,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를 쓴 김상봉 교수의 제안처럼 일정 규모 이상 주식회사의 사장과 임원을 노동자들이 선출하면 좋겠다. 주가나 배당금만 생각하는 주주들보다 평생 일하는 노동자들이 존경하는 사람을 대표로 뽑는 게 바람직한 민주주의다. 일례로 청주의 (주)우진교통은 14년째 그렇게 한다. 회사도, 노동자도 좋다.

최근 정부 정책을 두고 우클릭·좌클릭 논란이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사회보다 경제를 우선시하면 우클릭, 그 반대는 좌클릭이다. 사회(살림살이)란 교육·여성·노동·복지를, 경제(돈벌이)란 산업·기업·금융·수출을 뜻한다. 둘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나, ‘무엇’을 위한 균형인지가 더 중요하다.

진짜 민생경제라면 민주주의와 삶의 질을 위한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와 경제는 분리될 수 없다. 우리가 바로 정치다. 우리 안의 힘을 ‘직원연대’처럼 함께 드러내고 손을 맞잡으면 공장 안에도 민주주의가 천천히 꽃필 것이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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