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1 (화)

박인영 부산시 새 의장 “노무현에 반해 정치 시작했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전국 최연소 광역의장, 부산의 첫 여성·민주당 의장

“의회에 초선 많지만, 다양한 경험 있어 잘할 것”

시의원 처음이지만 이미 금정구 의원 3선 지내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국 최연소 광역 의장. 부산시 역대 최연소 의장. 부산시 첫 여성 의장.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이 아닌 첫 부산시 의장. 지난 10일 취임한 박인영(41) 부산시의회 의장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8대 부산시의회 전반기 첫 번째 임시회 본회의 이틀째인 지난 11일 부산시의회 의장실에서 박 의장을 만났다. 그는 부산의 정치권에선 사실상 무명에 가깝다. 그가 10일 본회의에서 부산시의회 의장에 선출된 것을 지역정가가 이변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저는 이른바 딴따라였어요.” 대학 시절 북 치고 장구 치는 것을 좋아한 것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딴따라’가 어떻게 부산시의회 의장이 됐을까? 그는 부산 금정구에 있는 구서여중과 동래여고를 졸업했다. 부산대 풍물패에서 3년 동안 활동했지만 학생회 간부를 맡은 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운동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도 취업이 잘 안 되는 이 시대 청년들의 궤적을 따라갔다. 3학년을 마치고 1년 동안 휴학했다가 졸업하는 이른바 5학년을 마치고 부산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국민 경선에서 선두로 올라서서 1위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서 반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이 됐고 온라인에서 열렬한 지지 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그의 남편도 노사모에서 만났다. 평생의 반려자도 노 전 대통령이 만나게 한 것이다. 그의 남편은 노무현재단 봉하운영본부장을 맡으며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지키고 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조직을 하고 결과까지 다이내믹하게 바꾸는 것을 보면서 정치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는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멤버가 됐고 2004년 4월 총선 열린우리당 부산시당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에 발탁됐다. 당시 26살이다.

2년 뒤인 2006년 금정구의회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되면서 현실정치에 발을 디뎠고 금정구의회 지역구 선거에서 두 차례 당선되며 3선 구의원이 됐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 부산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았다.

그는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금정구청장이 되려고 민주당 부산시당 공천심의위원회에 서류를 냈다. 부산공심위는 그를 중앙당에 추천했다. 그런데 중앙당에서 일부 후보의 심의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정구 3선 의원에 부의장을 지낸 그가 재심의를 해도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돌았지만 그는 제일 먼저 후보를 사퇴했다. 대신 금정구 부산시의원 공천 신청을 했다.

왜 금정구청장 후보 사퇴를 했는지 궁금했다. 그는 “외압은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공천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부산공심위에 부담을 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당원이고 당직을 맡았던 내가 빨리 정리해야 부산 공심위가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본선 승리로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승부사적 기질이 엿보였다.

부산 민주당은 6·13 지방선거에서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다수당이 됐다. 부산시장 선거에선 오거돈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부산시의회는 47명의 시의원 가운데 41명, 기초단체장은 16명 가운데 13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그는 6·13 지방선거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구의원 선거 때는 시민들이 약자에 대해 응원을 했다면 주인이 이번엔 꼭 바꾸라고 요구하는 느낌이었다. 완전 다른 경험이었다. 정치인으로서 많이 감사하면서도 두려움을 느꼈다. 언젠가 나도 (물갈이) 대상이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낮은 자세로 의정활동에 전념하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여성 의장이 되는 과정도 드라마틱했다. 다수당인 민주당 시의원들이 의장단을 내정하기 위해 선거를 했는데 박 의장은 의장 후보 6명 가운데 2명이 겨루는 결선에 올랐다. 결선투표에선 박 의장과 재선 남성 시의원의 지지표가 같았다. 결국 2차 결선투표에서 박 의장이 재선 남성 의원을 1표차로 따돌리고 민주당 의장 후보가 됐다. 10일 본회의에서 그는 전체 부산시의원 47명 가운데 43명의 지지를 받아 8대 부산시의회 전반기 의장이 됐다.

40대 초선 여성 의원인 그는 왜 의장 선거에 나섰을까? 그는 “부산시의회가 비전을 세우고 혁신을 논의하기를 바랐다. 그런 논의에 불을 지피고 싶어서 당내 의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덜컥 당선됐다. 적극적인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고 출마 선언문만 동료 의원에게 카톡으로 보냈다”고 웃었다.

그는 “의원들이 나에게 투표할 때 내가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 친구가 말하는 말이 맞고 부산시민들에게 새롭게 변한 시의회를 보여주고 싶은데 저런 얼굴이 좋겠다는 한 표들이 모여서 부족한 내가 당선된 것 같다”고 해석했다.

부산시의원 47명 가운데 41명이 초선이다. 박 의장은 “초선의원들이 더 열정이 있으니 믿고 지켜봐 달라”고 당차게 말했다. 근거를 묻자 그는 “시민단체와 언론의 7대 의회 평가 결과를 보면 조례 발의와 시정질문 등에서 초선의원들이 월등히 많았다. 민주당만 보면 청와대 행정관, 국회의원 보좌관, 시민단체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분들도 있고 절반 이상이 기초의회 경험이 있다. 시스템만 익히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회 수장으로서 정치적 색깔이 다양한 시의회를 이끌어 나갈 것인지를 물었다. 그는 “47명 가운데 43명이 저를 찬성했다. 자유한국당 일부도 찬성한 것이다. 부산시의회가 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모였다고 생각한다. 급격한 변화를 걱정하는 분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 너무 앞서 나가는 것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부산시장과 부산시의회를 장악하면서 과거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처럼 집행부 견제가 실종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그는 “오거돈 부산시장과 저는 공정, 정의, 평화, 번영이라는 민주당의 가치를 실현하고, 그것을 토대로 부산발전, 시민행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운명공동체적 성격이 강하다. 선명성을 위해 불필요한 각을 세울 생각은 없다. 하지만 시민들이 저희(시의회)에게 기대하는 가치와 목표에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가차없는 비판과 견제의 칼날을 보게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앞으로 부산시의회가 부산시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가 주목된다. 부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