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기고]통신비 원가 공개의 문제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니투데이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머니투데이

올해는 남북정상회담 덕에 다소 일찍 성수기를 맞았지만 냉면은 역시 여름의 대표 음식이다. 그런데 냉면집이 북적거리는 시기가 오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사가 있다. 바로 냉면 원가에 대한 논쟁이다. 기껏해야 사리에 육수 말아서 주는 냉면 한 그릇을 1만원 넘게 받는 것은 폭리가 아니냐는 것이다. 수십 년 넘게 자기 건물에서 장사를 해서 임대료 부담도 없는 노포조차 비싼 가격을 받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런 기사들은 좋은 보충교재 거리가 된다. 냉면에 드는 비용 중 육수와 사리 등 재료비는 일부일 뿐이며 자가 소유 건물에서 영업을 한다는 사실은 주인의 금전적 여유를 나타낼지는 몰라도 경제학적으로는 비용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사정이 그런데도 부질없는 원가 논쟁이 끈질기게 재생산되는 것은 치솟는 물가에 대한 불평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고 생각해 왔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말이다.

지난 4월 대법원은 정부가 보유한 2·3G(2·3세대) 이동통신 원가자료를 공개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한 시민단체가 2011년에 처음 이 소송을 제기할 때만 하더라도 필자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가 통신 원가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망으로 연결된 사업자들 간의 상호접속료나 설비제공대가, 보편적역무보전금 산정 등을 위한 것이지 시민단체가 밝힌 목적처럼 ‘범국민적 이동통신요금 인하요구’를 압박하기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각급심의 판결문을 읽어보면 정부도 처음에는 정보공개법이 이런 식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원가자료공개 판결의 법적인 정당성을 논하는 것은 필자의 전문성을 넘어서는 일이다. 대법원이 이미 판결을 내렸으니 존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분명한 것은 이동통신 요금인하의 압박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정부가 수집한 통신 원가자료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점이다.

첫째는 기본방향의 문제다. 원가를 기준으로 이동통신 요금을 결정하는 것은 그동안 통신산업에서 어렵게 쌓아 온 시장경쟁 체제를 무위로 돌리는 일이다. 냉면 가격이 육수와 사리 비용을 기준으로 결정되지 않는 이유는 냉면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장에서 거래되는 보통 재화이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간 통신 서비스는 정부의 배급품으로부터 출발, 시장재화로 변모해 왔고 그것이 바로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여전히 독과점적 구조에 규제가 만연한 시장이기는 하지만 변화의 방향 자체를 되돌릴 만한 근거는 없다.

둘째는 현실성의 문제다. 냉면처럼 비교적 단순한 상품조차 원가를 정확히 측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기업들이 장부에 적는 비용은 정해진 회계기준을 따른 것일 뿐 진정한 비용과는 거리가 있다. 하물며 통신산업은 대규모의 매몰고정투자가 필요하고 사업자와 서비스들이 서로 망으로 얽혀 있어 공통비용의 비중이 매우 크다는 특수성을 지닌다.

규제경제학의 대가인 알프레드 칸(Alfred Kahn) 교수는 통신 서비스의 원가를 측정하는 일이 “불이 다 꺼진 방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아내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고양이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원가를 제대로 측정하는 일이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정부는 통신 원가를 계산하는가? 이미 말한 것처럼 상호접속 등 필수적인 규제를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크다. 하지만 이런 자료를 이용해 통신요금까지 결정하기에 이른다면 심각한 왜곡을 피하기는 어렵다.

모든 논쟁의 원인은 국민들이 이동통신에 지출하는 비용부담이 워낙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이동통신이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재가 됐다는 시민단체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필수재임을 인정하면 무리한 규제를 하더라도 괜찮은 것일까? 역사적으로 가격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언제나 생필품이라는 명분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그러한 통제가 성공적이었던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과도한 개입이 시장을 파괴하는 재앙적인 결과로 이어진 사례는 차고 넘친다.

원하는 결과가 있다고 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한 모든 방법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 평범한 진리가 통신 원가공개 논쟁에 있어서도 적용되기를 바란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