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못 맞춘다” 불복 선언
현실과 동떨어진 인상 속도에
영세 업주들 범법자로 몰릴 판
소상공인연합회는 어제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앞으로 소상공인 모라토리엄 운동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또 “내년도 최저임금과 관계없이 소상공인 사업장 사용주와 근로자 간에 (최저임금액을) 자율합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에 따르지 않겠다는 ‘불복 선언’이다.
편의점주들의 모임인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역시 이날 오전 같은 장소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최저임금을 더 올리면 점주들은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오를 금액만큼 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들은 “나를 잡아가라”고 외치기도 했다.
소상공인은 제조업의 경우 직원 10명 이하, 서비스업 5명 이하인 업체의 사업주다. 영세 자영업자가 많다. 이런 영세업체 상당수가 최저임금 기준을 지키지 못하리라는 건 예견됐던 일이다. 올해 들어 최저임금을 시간당 7530원으로 16.4%나 올릴 때부터 그랬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최저임금만큼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266만1000명이다. 올 상반기에 최저임금 기준을 어겼다가 근로감독에서 적발된 업체는 928곳으로, 전년(646곳)보다 43.7% 늘었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올해보다 43.3% 오른 1만790원을 들고 나왔다. 이대로라면 법을 지키지 못할 영세 사업장이 산사태처럼 쏟아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최저임금 기준을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범법자가 된다. 현실에 맞지 않는 기준을 만들고, 그래서 범법자를 양산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606만 명이 일하는 소상공업체들이 일자리를 줄이는 것 또한 걱정거리다. 최저임금 기준을 어겨 범법자가 되기 싫다면 직원을 내보낼 수밖에 없다. 실제 최저임금이 대폭 오른 올해 고용은 직격탄을 맞았다. 최저임금의 영향이 큰 임시·일용직 근로자는 최근 1년 새 24만7000명이 줄었다.
그럼에도 그간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에 대해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다행히 그런 인식이 조금 바뀐 듯하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제 경제현안 간담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일부 업종과 일부 연령층의 (고용 부진에) 관련된 것을 감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젠 이런 인식 변화를 바탕으로 현실에 맞춰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최저임금도 못 줄 한계기업은 망해도 싸다”며 저주를 퍼부을 때가 아니다. 최저임금 적용 대상인 근로자들만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수많은 소상공인 또한 마찬가지다. 일자리의 5분의 1 이상을 책임지는 경제 주역이기도 하다. 이들을 범법자로 몰고, 멀쩡한 일자리마저 걷어차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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