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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 (수)

방학 반나절 돌봄교실에…맞벌이자녀 `학원 뺑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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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경기도 광주시에 거주하는 워킹맘 배 모씨(38)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첫 여름방학을 앞두고 애를 태우고 있다. 학교가 7월 중순부터 약 한 달 동안 방학에 들어가면서 그동안 방과 후 아이를 맡아주던 돌봄교실이 오전까지만 운영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배씨는 "친정이나 시집 어른들이 모두 아이를 봐줄 수 없는 상황이라 막막하기만 하다"며 "오후에 영어와 수학학원을 돌리는 방안을 생각 중이지만 비용이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여름방학이 다가오면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맞벌이 부모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상당수 초등학교가 예산부족 등을 이유로 방학 중 돌봄교실을 오전에만 운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초등돌봄교실은 방과 후부터 맞벌이 부모의 귀가 시까지 자녀 돌봄 및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으로 2004년 도입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돌봄교실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지만 정작 돌봄공백이 커지는 방학기간에는 이를 오전에만 운영하는 학교가 많아 '반쪽짜리'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교육계에 따르면 대전의 A초등학교는 최근 학부모들에게 학기 중에는 오후 7시까지였던 돌봄교실 운영시간을 방학 동안 오후 2시까지로 단축한다고 통보했다. 경기 평택시의 B초등학교도 최근 배포한 가정통신문에서 방학 중 돌봄교실을 오후 1시 30분까지만 운영한다고 밝혔다. 일부 학교는 교내 공사로 인한 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방학 동안에는 돌봄교실을 운영하지 않는다. 학기 중 돌봄교실 학생들에게 제공되던 급식도 여름철 식중독 발생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없애고 도시락을 싸오도록 하는 학교도 있다.

맞벌이 부모들은 학교에서 돌봄교실 운영시간을 줄이겠다고 통보해 올 경우 별다른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른다. 조부모나 외조부모의 도움을 얻지 못하는 경우 대부분의 선택은 결국 '학원 뺑뺑이'다. 오후 1시부터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은 영어나 수학학원, 미술·태권도학원 등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과 4학년 형제를 둔 안 모씨(44·서울 동작구)는 "방학이 되면 초등돌봄교실이 오후 1시에 끝나 아이들이 일찍 돌아오기 때문에 50만원을 들여 점심을 제공하는 영어캠프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상당수 맞벌이 부모들은 "방학기간에는 학교가 돌봄교실을 종일반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방학기간 돌봄교실 운영시간을 늘려달라는 청원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자녀를 둔 한 청원인은 "아이가 점심도 먹지 못하고 1시 이후로는 사설학원이나 다른 기관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각자의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 온 엄마들이 눈물을 머금고 사직서를 내고 있다"며 "아이들이 방학기간에 학원을 전전하면서 겪어야 할 심리적인 스트레스와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범죄, 여러 가지 안전사고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무겁다"고 호소했다. 돌봄공백에 처한 맞벌이 부모들은 고액의 사교육비를 써가며 어린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리거나 맞벌이를 포기하고 경제적으로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셈이다.

학교들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남교육청에 따르면 방학에 채용되는 돌봄전담 교사는 5시간을 넘어가는 근무시간에 대해서는 인건비가 지원되지 않는다. 경남 김해의 한 초등학교도 방학기간에 채용하는 돌봄전담 교사 1명이 초단시간 돌봄전담사라는 이유로 주 15시간 이상 근무가 어려워 오전반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방학기간 중 오후 돌봄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미리 조사해 학부모의 수요와 학교의 여건에 맞춰 충실하게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면서도 "일부 학교에서는 수요가 적을 경우 예산상 이유로 방학 중 돌봄교실 운영을 중단하거나 축소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문제가 된 학교들의 관할 교육지원청을 통해 학교들이 관련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방학 중 돌봄교실 종일반 운영에 어려움이 없도록 할 예정이다.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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