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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전후질서 '뒤흔드는' 트럼프…나토 때리고 러시아 껴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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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정상회의 목전 "안보무임승차·빚 갚아라" 동맹 타박

"나토근간 집단방위 벌써 약화"…푸틴과 정상회담에 동맹들 초조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마이웨이'식 외교행보를 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 수호의 첨병 역할을 해온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본격적으로 흔들어대는 양상이다.

이미 수차례에 걸쳐 나토 회원국의 방위비 분담에 불만을 표시해온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이번에는 69년의 안보동맹인 나토에 실제로 '균열'을 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대두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1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데 이어 12∼15일 영국을 거쳐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동맹인 나토와 '잠재적 적국'인 러시아를 연달아 방문하는 '독특한' 동선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통적 집단안보체제인 나토를 흔들고, 나토의 '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와의 밀월 관계를 맺으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서방진영에서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나토 정상회의를 앞둔 유럽 지도자들이 초조하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고 10일(현지시간) 전했다.

각자 국방비를 끌어올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는 설명할 만한 내용을 준비해둔 상태이지만, 진짜 걱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나토 훈련 참가를 취소한다거나 병력·장비 배치를 지연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토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옛소련에 맞서 미국, 캐나다와 서유럽 국가가 1949년 출범, 지금은 유럽 대부분 국가가 참여하는 안보동맹이다. 유럽에 대한 안보 우산으로 인식돼 왔으며, 현재 회원국은 29개국에 달한다.

동맹을 지탱하는 핵심은 집단안보 원칙을 담고 있는 나토 조약 5조다. 개별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즉각 대응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2001년 9·11 사태 이후 처음으로 유럽을 벗어나 아프가니스탄에까지 병력을 파견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나토를 '한물간 동맹'이라고 부르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오래전 만들어진 낡은 유럽 동맹들이 미국에 빚을 지고 있다며 '안보 무임승차론'을 반복했다.

지난해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조약 5조 준수 입장을 천명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이번에도 유럽 땅을 밟자마자 나토의 많은 나라가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며 "미지급 비용도 수년간 연체된 상태"라고 날을 세웠다.

나토 회원국 29개국 중 GDP 대비 국방비 지출 비용이 2%를 넘는 곳은 미국을 비롯해 그리스, 영국, 에스토니아, 루마니아, 폴란드뿐이다. 프랑스는 1.79%, 독일은 1.22%, 이탈리아 1.13%, 스페인 0.92% 수준이다.

연합뉴스


유럽연합(EU)과 무역분쟁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나토까지 흔들리면서 안보동맹 약화 가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는 미국 무역적자 해소를 앞세워 다른 회원국과 갈등을 빚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에서도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는 양상이다.

주로 경제현안을 협의하는 G7에서 나온 잡음과 비교하면 안보동맹에서 터져나오는 파열음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에 찬 언사 때문에 이미 나토 동맹이 실질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해설했다.

집단방위 의지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점 때문에 러시아를 비롯한 적국이 억지되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에 대한 비판 탓에 이런 구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나토의 가장 큰 적국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단독 정상회담과 맞물려 주목된다.

WP에 따르면 유럽 정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동맹을 맺는 게 아니냐는 냉소적인 농담까지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G7 정상회의에서도 크림반도 병합 이후 주요 8개국(G8) 회의체에서 쫓겨난 러시아를 복귀시켜야 한다고 요구해 논란을 일으켰다.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이 미국의 국익과 세계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나토의 안보를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병합 사태와 시리아 내전을 비롯해 최근 영국에 있는 이중스파이 암살 시도 등으로 유럽과 충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순방길에 오르기 전에도 푸틴 대통령에 대해 "적인지 친구인지는 지금 당장 말할 수는 없지만, 그는 경쟁자"라고 묘한 발언을 했다.

그는 "(순방에서 만나는 사람 중) 솔직히 푸틴 대통령이 가장 쉬운 상대"라며 "러시아와 잘 지내고, 중국과 잘 지내고, 다른 국가들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거듭 내비쳤던 유럽 동맹국에 대한 싸늘한 시선과 대비되는 발언이다.

미국의 유럽 동맹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2014년 크림반도 병합을 용인하는 사태가 빚어질까 고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과거 핵무기를 포기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영토보전을 약속받은 바 있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크림반도 병합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도덕적 권위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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