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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콘서트오페라가 지루해?···유쾌한 풍자의 향연 `피가로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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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131] 3막 피가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마르첼리나와 바르톨로는 피가로와 수산나를 얼사안는다. 이 순간 바르톨로가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다. '찰칵' 가족 상봉의 기쁨을 사진으로 남기자 객석에서 폭소를 터진다.

솔직히 '콘서트 오페라'는 관람하기가 꺼려진다. 화려한 무대 없는 오페라라니, '팥소 없는 찐빵' 아닌가. 하지만 르네 야콥스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7일 선보인 콘서트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무대는 이런 편견을 깨부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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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출연진이 모두 드레스 차림으로 보면대를 놓고 악보를 넘기며 서서 노래하는 지루한 형식이 아니었다. 무대 장치는 소파 하나와 의자 몇 개가 전부였지만 가수들이 객석 통로는 물론 연주자석과 지휘대 사이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며 연기를 펼친다. 종횡무진하는 배우들 덕분에 객석은 지루할 틈이 없다.

18세기 스페인 알마비바 백작의 저택에서 이발사이자 하인인 피가로의 결혼식을 둘러싸고 하루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이 오페라는 발랄하면서도 신랄하다. 르네 야콥스는 본지와 인터뷰하면서 "콘서트 오페라의 매력은 가사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귀를 열고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감상해보라"고 했다. 그 말대로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가사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연출가가 따로 없기에 가수들도 각자 연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 보탰단다. 이에 가수들의 텍스트 분석이 농밀해지자 대본작가 다 폰테가 보여주려던 유머의 섬세한 디테일이 살았다. 노래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 그리고 이 연기를 객석에 전달해주는 유머감각 넘치는 자막 덕분에 관객들은 쉬지 않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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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여자는 다 그래'의 데스피나 역으로 호연을 펼쳤던 임선혜가 이번에는 하나 수잔나 역으로 당차게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 새침한 표정과 깜찍한 몸동작으로 극의 분위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또 르네 야콥스는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등장인물로 무대 위에 초대했다. 극 중 단원들은 가수들이 말을 걸면 표정연기로 답하는 등 연주와 연기를 겸업했다. 또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사랑을 노래할 때 오케스트라는 이를 조롱하고 비웃는 연주를 통해 작품의 풍자정신을 음악에 실어 날았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성악가들이 긴밀한 호흡으로 지휘자를 보지 않고 자유자재로 노래와 연기를 펼쳤다"며 소위 '야콥스 사단'이라 불리는 이들의 손발이 척척 맞는 무대를 호평했다.

이번 '피가로의 결혼'은 롯데콘서트홀이 야콥스와 손잡고 선보이는 콘서트 오페라 3부작 '다 폰테 시리즈' 중 두 번째 공연. '고음악의 거장' 가운데 한 명으로 불리는 야콥스가 독일 최고 고음악 전문 연주단체인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시대의 원전연주를 선보였다. 그의 연주는 학구적이고 고전적인 다른 원전 연주와 달리 경쾌하면서 시트콤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이번 무대에서도 음악에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는 쾌활한 음악이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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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연주라 해서 '전통적'이기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작년 4월 시리즈의 첫 회작 '코지 판 투테'에서 하녀 데스피나 역으로 출연했던 소프라노 임선혜는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오르는 파격을 선보였다. 야콥스는 "이번에는 배역들의 옷을 배우들이 각자 원하는 옷으로 직접 골라 입고 무대에 오르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무대에서는 케루비노가 신은 나이키 운동화가 유독 눈에 띄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워낙 길이가 긴지라 종종 몇 개 곡을 빼고 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야콥스는 이날 한 곡도 빼놓지 않고 전곡 연주를 선보였다. 3시간25분이란 긴 시간을 음악으로 완벽하게 채웠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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