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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스마트폰으로 오디션 보고 데뷔까지…연예계 풍경 바꾼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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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대중문화계도 ‘플랫폼 시대’

배우·가수·곡 채택·스태프 모집 등

앱·인터넷 플랫폼 잇따라 등장

연기·노래·동영상으로 오디션 보고

가수들 발표 뒤 공모전도 열려

인맥 없이 실력으로 인정받을 토대

임시·비정규직 많은 관련 종사자들

서로 경력 인증·재능 평가 주고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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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우 주병하는 중국에서 활동했다. 중국 소속사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이후 불거진 중국 내 한한령(한류제한령) 탓에 활동을 접어야 했다.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소속사 없이 나홀로 움직였다. 몇몇 단편영화와 독립영화에 출연하는 한편, 출연 영상을 편집해 캐스팅 디렉터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장편 상업영화나 드라마의 정식 오디션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게 있는데 한번 도전해보는 게 어때요?” 알고 지내던 사람이 뭔가를 내밀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셀프테이프? 이게 뭐죠?” 국내 최초 오디션 동영상 애플리케이션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모바일 콘텐츠 회사 딩고는 이 애플리케이션으로 웹드라마 <연애는 무슨 연애>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었다. 자신의 연기 영상을 촬영해 올렸다. 얼마 뒤 연락이 왔다. 2차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했다. 결국 최종 캐스팅됐다. 얼마 전 촬영을 마쳤고, 이달 말께 회당 8분짜리 8부작 드라마로 인터넷에 공개될 예정이다. 주병하는 “단편영화 오디션은 많이 봤지만, 웹드라마 오디션은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 애플리케이션 덕에 좋은 기회를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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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영빈은 14년차 대중음악 작곡가다. 동료와 둘이서 ‘누보 시티’라는 작곡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커피프린스 1호점> 등 여러 드라마 오에스티(OST) 작업에 참여했고, 이케아, 롯데마트 같은 매장 음악도 만들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만든 노래가 가수 음반에 수록된 적은 없었다. 여러 기획사와 음악 퍼블리싱 회사에 곡을 보내고 주변 지인들을 통해서도 여러 군데 제안했지만, 이렇다 할 답변이 오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지난해 여름 인터넷에서 공모전 소식을 발견했다. 음악 콘텐츠 플랫폼 셀바이뮤직이 로엔엔터테인먼트(현재는 카카오엠·크래커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 멜로디데이가 발표할 노래를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누보 시티 이름으로 만든 노래를 올렸다. 1등으로 뽑혔다. 멜로디데이는 지난달 29일 디지털 싱글 앨범 <잠은 안 오고>를 발표했다. 수록된 두 곡 중 하나가 ’토닥토닥’이다. 누보 시티가 작사·작곡·편곡한 노래다. “작곡가의 곡이 기획사에 채택되려면 곡의 좋고 나쁨보다 인맥이 더 중요할 때가 많거든요. 새로운 플랫폼 덕에 도전할 기회가 많아진 것 같아 좋습니다.” 김영빈 작곡가의 말이다.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온라인으로 일자리와 재능을 주고받는 플랫폼이 뜨고 있다. 과거 알음알음으로 추천하고 소개받는 식으로 이뤄지던 캐스팅, 앨범 수록곡 채택, 스태프 모집 등이 새롭게 등장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해당 분야에 인맥이 없어도 실력만 있으면 인정받을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셈이다.

셀프테이프는 지난 5월7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씨제이이앤엠 등에서 캐스팅디렉터로 일해온 양성민 ATR 컴퍼니 대표가 2년 전부터 준비해온 프로젝트다. 그가 현장에서 일할 때 신인배우들로부터 많이 들은 얘기는 “어떻게 하면 오디션을 볼 수 있나요?”였다. 한편 콘텐츠를 만드는 쪽은 “어떻게 하면 괜찮은 신인을 발굴할 수 있나요?”를 물었다. 둘을 연결시켜주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마음먹은 건 그래서다.

셀프테이프에는 벌써 4300여명의 신인배우 또는 배우지망생이 가입했다. 3분 이내의 연기 동영상을 올리면 회원들끼리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댓글을 단다.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 맨 앞에 노출된다. 자유연기를 올려도 되고, 셀프테이프에서 부여하는 미션에 맞는 연기를 올려도 된다. 셀프테이프는 영화나 드라마의 어떤 장면을 지정하거나 ‘흙수저vs 금수저’ 같은 콘셉트를 정해 연기 미션을 내린다. 반응에 따라 주 장원을 선정하고, 그들을 모아 월 장원 오디션을 치른다. 월 장원으로 뽑히면 프로필 촬영 지원 등을 받는다.

웹드라마 <연애는 무슨 연애>와 정우성·전도연이 주연을 맡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셀프테이프를 통해 오디션을 진행했다. 제작사가 연기 콘셉트를 지정하면 지원자들이 영상을 올리고, 이 중 일부를 추려 2차 오프라인 오디션을 보는 식이다. 셀프테이프의 강민정 실장은 “1차 지원자 500명의 실제 오디션을 다 보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셀프테이프로 20명을 추려 2차 오디션을 보면 훨씬 더 효과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연애는 무슨 연애>를 제작하는 딩고의 유일한 웹드라마 총괄은 “앱으로 오디션을 진행하기에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고, 새롭고 신선한 캐스팅의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FNC엔터테인먼트와 밤부네트워크가 만드는 웹드라마 <쿡쿡 로맨스>가 셀프테이프로 오디션을 진행하기로 확정했고, 티브이엔 드라마 <톱스타 유백이>, 오시엔 드라마 <신의 퀴즈> 리부트 등도 오디션 진행을 논의중이다. 강 실장은 “제작사가 기존 영상에 달린 해시태그(#)를 검색해 원하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캐스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중국 등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보인다. 이용에 장벽이 없기 때문에 국내 배우의 해외 진출 발판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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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바이뮤직은 지난해 5월 출범했다. 런칭 기념으로 가수 에일리와 변진섭 앨범에 수록할 노래를 공모하는 이벤트를 했다. 지난 5월 프로야구단 엘지트윈스 응원가 공모전 우승자는 수상과 함께 야구장 시구의 영예를 안았다. 엘지트윈스는 이때 선정한 5곡을 2018년 응원가로 쓰고 있다. 지난해 방영을 시작한 애니메이션 <유희왕 브레인즈>의 한국판 주제가는 곡과 보컬을 모두 셀바이뮤직 공모전을 통해 구한 경우다.

셀바이뮤직은 최근 연예기획사 20곳과 함께 합동 공모전을 진행했다. 큐브엔터테인먼트,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주요 기획사는 물론, 중국·베트남 등 외국 기획사도 참여했다. 작곡가들이 출품한 곡은 모두 800여곡. 각 기획사들은 이를 들어보고 개별적으로 논의를 진행중이다. 공모전에 참여한 YMC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기대보다 높은 완성도에 놀랐다. 회사 내부에서도 이번 공모전을 통해 역량 있는 작곡가의 곡들을 발굴하게 되어 평가가 좋다”고 전했다.

셀바이뮤직은 요즘 ‘이 노래의 가수를 찾습니다’ 오디션을 진행중이다. 미리 정해둔 곡에 맞는 맞춤형 보컬을 찾는 방식이다. 우승자는 곧바로 프로젝트 곡 ‘받아들이기’ 디지털 싱글 발매로 가수 데뷔를 하게 된다. 이 노래 또한 작곡가 공모전에서 뽑힌 곡이다. 셀바이뮤직에선 작곡가들이 자신의 곡을 직접 올려 판매하기도 한다. 가수나 기획사가 들어보고 마음에 들면 작곡가와 협의하면 된다. 앞으로 작곡가뿐 아니라 보컬, 연주자 등도 이 플랫폼을 통해 섭외가 이뤄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 5월1일 서비스를 시작한 어라운드어스는 재능·인재 검색 플랫폼이다. 우선 영화, 방송, 뮤지컬, 음악, 공연 등 대중문화 업계 종사자들의 구인구직을 연결해주는 쪽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들 분야에선 정규직보다 임시직·비정규직이 많다. 작품이나 프로젝트별로 스태프가 모였다 흩어지기 때문이다. 구직자들이 보유 재능과 기술, 참여 작품 등 경력을 텍스트뿐 아니라 동영상, 사진 등 다양한 프로필 형식으로 올리면 구인자들이 쉽게 검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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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품이나 프로젝트별로도 검색할 수 있다. 재직증명서 등으로 경력을 증빙하는 게 어려운 비정규직의 현실을 감안해 작품이나 프로젝트를 함께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경력을 인증하는 기술을 도입했다. 구인 공고의 경우 구직자들이 구인 주체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한 것도 특징이다. 김성진 어라운드어스 대표는 “갑질, 부당대우 등이 만연한 비정규직 환경을 개선하려면 구인구직 환경부터 투명하게 바꾸고 실력을 기반으로 채용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설립 취지를 밝혔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연결된 이들은 단순히 구인구직을 넘어 각자의 재능과 고민을 공유함으로써 힘과 용기를 얻기도 한다. 어라운드어스에서 작품이나 프로젝트를 함께한 비정규직들이 도움을 주고받는 게 대표적 사례다. 셀프테이프의 경우 연기자들이 서로의 연기를 보고 댓글로 의견을 주고받는 게 큰 힘이 된다고 한다. 배우 이하음은 “거울 앞에서 혼자서만 연기하다가 다른 이들에게서 장단점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니 연기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6월 월 장원으로 뽑힌 배우 서동복은 “다른 배우들 연기를 보면 자극제가 된다. 많은 분들이 동참해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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