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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과학TALK] 청와대 보좌관이 놓친 154초...한국형발사체 시험, 비행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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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한 대로, 정상적으로 결과가 나온 시험이었습니다.”
5일 저녁 6시경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위치한 나로우주센터. 오승협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 발사체추진기관개발단장이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는 10월 시험발사 예정인 ‘한국형발사체 시험발사체 인증모델(QM, Qualification Model)’의 최종 지상 종합연소시험을 마친 후 현장을 지켜본 기자들과 만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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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한국형발사체 시험발사체 QM 모델 지상 최종 종합연소시험이 이뤄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는 안개가 자욱했다./김민수기자



이날은 태풍 ‘쁘라삐룬’이 빠져나간 뒤 이어진 장마전선으로 하루종일 안개와 구름, 가랑비가 나로우주센터를 덮었다. 한국형발사체(KSLV-2) 시험발사체 QM의 지상 최종 종합연소시험은 오후 3시에 이뤄질 예정이었다.

오후 2시가 채 되기 전 나로우주센터에 도착, 10월 실제로 비행하게 될 시험발사체 ‘비행모델FM(Flight Model)’ 조립 현장을 먼저 찾았다. FM은 QM과 똑같은 75톤급 액체엔진 1기를 탑재하고 무게나 크기, 연료탱크, 설계구조 등도 QM과 동일한 스펙으로 제작된다.

FM 조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을 때 조립동 복도 쪽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FM 조립에 관여하는 항우연 엔지니어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기술진이 아니었다.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과 수행원들이 QM 지상 최종 종합연소시험을 지켜보기 위해 직접 나로우주센터를 방문한 것이다.

◇ 2시간여 지체된 테스트...시험 30분 전 자리 뜬 보좌관

3시 예정이었던 종합연소시험은 여러 차례 연기됐다.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을 넘겼다. 취소되는 것 아니냐는 묘한 긴장감도 흘렀다. 더군다나 청와대 보좌관까지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항우연 연구진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들과 테스트 중에 오늘 이뤄지는 테스트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1시간 30분이 지난 4시 30분경 문미옥 과기보좌관은 결국 나로우주센터를 떠났다. 시험이 이뤄질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아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약 30분 뒤인 5시경 최종적으로 자동 시퀀스를 곧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이 관제실로부터 전달됐고 5시 15분경 한국형발사체 시험발사체 QM은 154초 동안 굉음을 내며 화염을 지상에 쏟아냈다.

보통 로켓 발사는 발사 약 10분 전 소프트웨어에 의해 자동으로 이뤄진다. 이를 ‘자동 시퀀스’라 부른다. 자동 시퀀스가 시작되기 전 발사체에 탑재된 컴퓨터와 지상 관제실 컴퓨터가 발사 자동 시퀀스에 돌입할 준비가 됐는지 확인하는 신호들을 주고받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예정된 스케줄을 따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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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발사체 QM모델의 종합연소시험 모습./과기정통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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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협 단장은 “전날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했는데, 이 때문에 자동 시퀀스에 들어가기 전 ‘온보드 전자장비 센서’에 수신이 되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있어서 이를 분석하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시험이 늦춰졌다”고 밝혔다. 오 단장은 “충분히 예상 범위 내의 문제였고 발사체 QM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도 이번 시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제는 일상적으로 발사체 ‘팰컨9’을 쏘아올리는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도 기술적인 문제로 발사 예정일에서 몇일 늦추기도 한다. 발사 당일에도 최소 1~2시간 가량 지연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30분 정도만 더 기다렸다면 청와대 보좌관이 헛걸음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 연료·산화제 소진해 154초 연소...하늘 나르는 일만 남은 시험발사

5일 이뤄진 QM 종합연소시험은 산화제인 액체산소와 연료인 ‘케로신’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연소했다. 산화제와 연료를 합친 무게는 전체 시험발사체 무게 52톤의 절반을 넘는 약 36톤에 달한다.

이번 테스트는 실제 비행모델(FM)과 똑같은 QM이 엔진을 점화하는 연소 성능과 비행했을 경우를 가정해 발사체의 방향을 제어하는 추력벡터제어장치 등 연계 성능도 종합적으로 시험·검증하는 테스트였다. 비행을 하지 않고 지상에 붙든 상태에서 테스트한 점만 다른 셈이다.

10월 실제로 발사하게 되는 한국형발사체 시험발사체 FM은 조립 막바지 단계다. 이날 항우연이 공개한 발사체종합조립동에서는 시험발사체 FM 본체 가장 윗부분에 조립되는 ‘중량 시뮬레이터’ 조립 테스트가 이뤄지고 있었다. 약 10.5톤에 달하는 중량 시뮬레이터는 지상에서 올라갈 때 비행체의 무게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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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발사체 시험발사체 FM모델 조립 현장./김민수기자



FM 조립이 완료되면 나로호가 발사됐던 발사대를 개조한 발사대에 맞춘 테스트를 진행한다. FM이 발사대에 체결됐을 때 전기나 유공압·연료·산화제 등이 제대로 자동 공급되는지, 자동체결·이탈 등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시험발사체는 한국형발사체에 사용될 75톤급 액체엔진 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별도로 개발된 모델이다. 2021년 발사될 한국형발사체는 1단에 75톤 엔진 4기, 2단에 75톤엔진 1기, 3단에 7톤 엔진 1기 등이 들어가는 3단형이지만 시험발사체는 75톤 엔진 하나만 들어가는 1단형으로 이뤄졌다. 한국형발사체와 구조나 설계, 스펙 등이 전혀 다른 모델인 것이다.

시험발사체의 비행 목표는 고도 약 195km, 지상거리 약 400km다. 성공이냐 실패냐 여부보다는 우리 기술로 만든 75톤급 액체엔진이 실제로 비행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절차다.

고정환 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세계 각국 발사체의 첫 발사 성공률이 50%도 안되는 상당히 낮은 성공률과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하고 복잡한 발사체 시스템을 고려해 한국형발사체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며 “최종목표인 2021년 한국형발사체 본발사 성공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고흥=김민수 기자(rebor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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