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5 (일)

라미의 ‘안방 침공’을 막아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토요판] 박현철의 아직 안 키우냥

21. 방묘문·방묘창 보강공사


한겨레

라미와 보들이의 생활공간은 여름과 겨울이 다르다. 봄·가을과 겨울엔 마루에서만 지낸다. 두개의 방과 화장실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그러다 여름이 되면 화장실이 개방된다. 화장실은 여름을 나는 두 냥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다. 시원한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은, 에어컨을 틀기엔 이른 초여름엔 더욱 유용하다.

화장실엔 작은 창문이 하나 있다. 새 공기가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라 여름엔 주로 열어둔다. 깨발랄 라미는 화장실에 들어오면 바닥에서 좌변기, 좌변기에서 세면대, 세면대에서 이 창틀로 뛰어오르는 과정을 의식처럼 치른다. 이중창이라 창틀 폭이 넓고 바깥쪽에 방충망이 있으니 그리 위험할 것도 없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 같으면 창틀에 올라 (밖이 아닌) 화장실과 마루 쪽을 쳐다보고 있어야 할 라미가 창 바깥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한참을 있었다. ‘뭐 볼 게 있어 저러나’ 싶어 가보니, 세상에! 방충망이 열려 있었다. 한발 내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라미네는 4층이다)인 곳에서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는 까딱거리고 있었다. 사실 라미가 천길 낭떠러지에 발을 내딛을 만큼 멍청하진 않지만 집사에겐 혹시 모를 사고도 방지할 책임이 있다. 뒷베란다를 뒤져 남아있는 네트망을 방충망과 유리창문 사이에 끼워 ‘방묘창’을 만들었다.

라미와 보들이집엔 방묘문이 2개, 방묘창이 (화장실 포함해) 3개 설치돼 있다. 방묘문(방묘창)은 말 그대로 고양이가 드나들지 못하게 해 안전을 보장하지만, 바람은 통하는 문이다. 현관문 앞 방묘문은 현관문을 열면 총알같이 밖으로 뛰어나가는 라미 때문에 설치했고, 거실 창문 방묘창은 벌레 사냥에 몰두하다 방충망을 찢어먹은 보들이 때문에 설치했다.

거실과 안방 사이 방묘문은 여름에만 쓰인다. 문을 열어놓고 자야 하는, ‘각방’을 쓰는 집사와 냥이들의 공간을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묘문은 ‘문짝 자석’으로 고정된 문을 여닫는 식이었다. 설치 초반엔 완벽한 성능을 자랑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힘과 요령을 터득한 라미가 너무나도 태연스럽게 그 문을 열고 닫기 시작했다. 청소하느라 방문을 열고 방묘문만 닫아놓으면 눈 깜짝할 새 그 문을 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라미가 열어놓으면 보들이도 따라 들어갔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시 여름이 왔고, 다시 더워졌고, 문을 열고 자야했다. 묘책을 찾아 ‘다이x’을 헤매다 ‘아오리정’이라 불리는 추억의 걸쇠를 발견했다.(아오리정의 어원은 모르겠으나 그렇게들 부른다) 심지어 ‘반자동’이었다. 전세 팔자라 방문틀에 못을 박을 순 없어 철사로 둘둘 감아 허접하게 걸쇠를 방묘문에 고정했다.

역시나 처음 본 물건에 냥이들은 당황했다. 더군다나 라미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 걸쇠가 달려있어 감히 이를 연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 됐다. 잠글 때만 약간의 힘이 필요했고 열 땐 레버만 누르면 툭 하고 걸쇠가 튀어나오는, 반자동은 역시 좋은 것이었다.

단돈 1500원에 여름 준비를 끝냈다며 기뻐하는 찰나, 라미와 보들이가 없던 시절엔 어떻게 살았나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라미와 보들이가 오기 전, 방묘문과 방묘창이 필요조차 없던 시절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방묘문이고 방묘창이고 간에 혼자 살 때가 좋았다’고 생각할 뻔한데, 그것들의 신묘한 기능에 그저 감탄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신기했다. 고양이와의 동거와, 그로 인한 불편이 이젠 당연한 일이 되었다.

서대문 박집사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