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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기자의 현장+] 치킨이 그리운 계절..하지만 '반려견은 죽음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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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특수 치킨 매출이 평소보다 2배 이상 / 한강공원은 배달 치킨 ‘강세’ / 거리응원이 늘면서 야외 배달 주문 폭주 / 공원 풀숲이나 그늘진 곳마다 먹다 버린 치킨 또는 맥주 캔 널브러져 / 산책 도중 반려견이 치킨을 먹어 / 사소한 부주의에 목숨 잃기도 / 닭 뼈 위장관 폐쇄, 천공 일으킬 수도 / 기름기 음식에 의해 췌장염 원인 / 양념 통닭에 있는 양파나 마늘 등 빈혈 유발

세계일보

공원 곳곳마다 분리되지 않은 일회용 플라스틱 컵, 치킨 종이상자, 각종 술병, 치킨 등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다. 각종 음식물 쓰레기가 뒤섞여 역한 냄새를 풍겼다(왼쪽). 산책 나온 한 반려견이 주인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고 있다(오른쪽).


“일하다 보니 밤에만 산책합니다. 몽이(반려견)와 함께 산책할 때마다 걱정이 됩니다. 몽이가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눈을 뗄 수 없어요. 잠깐 한눈판 사이에 이상한 것을 먹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 모여 있던 자리는 피해요. 몽이가 잘못될까 봐”

불볕더위가 벌써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오면서 반려견과 함께 늦은 밤 산책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반려견을 키우면서 고민되는 부분이 산책. 사람들이 붐비는 공원에 산책하려고 해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외출하기가 힘든 반려견이 유일하게 바깥 공기를 쐬며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산책할 뿐. 대부분이 인근 공원을 찾는다. 공원마다 많은 시민으로 북적거려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견주들은 늘 불안하기만 하다.

◆ ‘월드컵 분위기’ 산책 할까 말까 속앓이

농협경제연구소 조사결과에 따르면 애견 인구는 약 1000만 명에 남았다고 한다. 애견 전문가들에 따르면 반려견은 약 400만 마리 정도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작년까지 등록된 반려견은 약 107만 1,000마리 정도다.

국민 5명 중 1명은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고 수치에서도 설명하듯 ‘펫(Pet) 선진국’ 수준이다. 반려견 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정확한 숫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반려견을 키우는 가정이 늘다 보니 곳곳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엔 약 80만 마리의 개와 인간이 함께 살고 있지만, 지자체가 운영하는 반려견 놀이 공간은 네 곳이 전부. 편하게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시설이다. 그러다 보니 반려견과 산책은 대부분 가까운 공원을 이용한다. 공원은 개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모두가 이용하는 공간이 됐다. 공원 이용하는 시민들과 크고 작은 마찰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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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반포한강공원에는 시민들이 치킨이나 준비해온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직장 동료와 함께 여의도 한강공원을 찾은 김(39)모씨는 “어린 시절 개에 물린 기억이 있어 작은 개든, 큰 개든 보는 것도 불안하다. 개들의 공원 출입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개념 없는 견주들이 많다”며 “민감해서 그런지 몰라도 나무 밑이나 잔디에 배설물이 눈에 띄면 기분이 좋지 않다” 라며 혀를 찾다.

지난해 한 연예인 키우던 프렌치 불도그가 한 유명 음식점 대표를 물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반려견 혐오로 번지기 시작했다. 커뮤니티마다 ‘혹시나 물릴까 봐 작은 개도 싫다’는 게시글 이어졌다. 개에 물리면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강경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반려견에 물려 사망 사건이 이슈가 되면서 견주들은 산책할 때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눈치를 보고 있다.

◆ 산책 시 사소한 부주의에 목숨 잃기도

지난 18일부터 23일까지 서울 한강공원을 다녀보았다. 스웨덴전이 있던 날 한강공원은 그야말로 치킨 파티가 벌어졌다. 23일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국가대표팀은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줬으나 국가대표팀의 보다 더 인기 얻은 것은 바로 치킨이었다. 진정한 승자는 치킨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치킨은 매출이 평소보다 2배 이상으로 늘어나 치킨 업계는 국가대표팀의 선전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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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과 풀숲에는 먹다 남은 치킨 조각부터 컵라면, 각종 술병, 맥주 캔, 피자 등 각종 음식물 쓰레기가 뒤섞여 역한 냄새를 풍겼다.


치킨뿐만 아닐 편의점에서 이용금액은 일주일 전에 비해 28.9%가 늘었다. 경기 당일 저녁 편의점에서 팔린 맥주 매출 역시 평소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거리응원이 펼쳐진 광화문 일대 편의점의 경우 맥주 매출이 무려 30배나 오른 곳도 있다.

배달비 유료화 논란에 소비자 반감을 샀음에도 여전히 ‘국민 간식’임을 입증했다. 한 치킨 프랜차이즈는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축구 경기가 열린 지난 18일 매출이 전주 대비 60% 상승했다. 치킨 업계는 월드컵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날 반포공원과 마찬가지로 시민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삼삼오오 모여 치킨이나 준비해온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머물던 자리에는 쓰레기가 쌓여갔다. 자리를 뜬 시민들은 쓰레기를 그대로 두거나 분리되지 않은 채 쓰레기 던지고 떠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밤이 깊어 질수록 쓰레기가 쌓여 언덕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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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반포한강공원에는 분리되지 않은 각종 쓰레기가 쌓여가고 있다. 시민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풍기는 비릿한 악취에 코를 막고 뛰거나 지나고 있다.


먹다 남은 치킨 조각부터 각종 음식물 쓰레기가 뒤섞여 역한 냄새가 곳곳에서 풍겼다. 여의도공원을 조금만 걸어도 심한 악취가 풍겼다. 일부 시민이 먹다 버린 치킨과 각종 음식물 쓰레기에서 흘러내린 침출수가 코를 찔렸다. 막걸리와 맥주 그리고 각종 음료수가 뒤섞여 음식물 쓰레기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던 곳마다 먹던 치킨 조각과 먹다 버린 피자 같은 음식물을 쌓아두곤 사라졌다. 풀숲이나 잔디밭에는 작은 치킨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늦은 밤 반려견과 반포공원을 찾은 이(26·여)모씨는 “풀숲이나 잔디밭은 잘 가지 않아요. 어둡기도 하고 잘 보이지 않아 무엇을 먹는지 알 수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함께 찾은 김(32·남)모씨는 “씹는 소리만 들려도 입을 본다”며 “밝은 보행로만 다닌다”고 말했다.

슈나우저, 코커 스패니얼, 비글을 3대 악마견이라 불린다. 지칠 줄 모르는 활동력 때문에 견주들은 산책 할 때 힘들어한다. 사냥견 출신답게 힘도 세고 지구력도 뛰어나다. 후각에 더 민감한 사냥견종 이다 보니 식탐이 심한 경우가 많아 견주가 손쓸 틈도 없이 닭 뼈를 씹어 먹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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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한 시민이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고 있다.


반려견이 버려진 양념 치킨에 먹을 경우 위험하다. 양파나 파, 마늘에는 티오황산염이 반려견의 적혈구를 파괴하는 독성작용을 한다. 빈혈이나 중독증상을 일으키고 설사, 구토, 무기력증, 호흡곤란을 겪을 수 있다. 소량으로도 생명을 잃을 수 있다.

김지헌 수의사는 “프라이드치킨의 경우 기름기 많은 음식에 의해 췌장염이 발생할 수 있다. 양념 통닭에 있는 양파나 마늘 등 빈혈을 유발할 수 있어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닭 뼈 같은 끝이 날카롭기 때문에 식도나 내장에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작은 뼈라도 소화기관에 상처를 내면 염증이나 혈변, 심한 경우에는 수술로 제거해야 할 경우도 생긴다.

전문가의 따르면 “여름철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었다가 동물병원을 찾는 반려견이 늘어나고 있다”며 “닭 뼈 같은 날카로운 것을 삼키면 목에 걸리거나 위장 벽을 관통 할 수 있어 이런 음식을 가까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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