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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뒤집어진 부산 “적폐청산부터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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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의원 후보 구하기도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디비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관계자의 말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지나면서 부산의 정치지형은 완전히 뒤집혔다. 오거돈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의 당선은 예상했다 해도 구청장과 시의원, 구의원들의 대거 당선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부산에는 16개 구·군이 있다. 그 중 15곳이 새누리당 소속 단체장이었다. 1곳은 무소속이었다. 20년 넘도록 민주당 계열의 구청장이 당선된 역사가 없다. 이 관계자는 “많으면 6곳 정도 예상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민주당은 13개 구청에 깃발을 꽂았다. 시의원도 마찬가지다. 47명 시의원 중에 45명이 새누리당 소속이었는데, 이번에는 민주당이 41석을 차지했다.

기장군 제2선거구의 구경민 시의원 당선인은 여전히 당선이 실감나지 않는다. 구 당선인 지역구에는 4개 읍·면이 있다. 구 당선인은 “한 곳을 제외하고는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시고 보수 색채가 짙은 곳이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선거 기간 동안 별말 없던 주민들은 선거가 끝나자 구 당선인의 손을 잡고 “나 니 찍었다잉”이라고 말했다.

“점령군 이야기 안 들으려면 무조건 고개 숙여라”

예상치 못한 결과에 민주당은 바쁘게 돌아갔다.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인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박재호 민주당 국회의원(부산 남구을)은 당선인들과의 간담회를 줄줄이 잡았다. 규모가 크기도 하거니와 대부분 초선이라 조언과 ‘단도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9일, 박 의원은 동래구청장과 구의원 당선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수차례 ‘겸손’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에 우리가 너무 많이 당선돼서 시민들 기대가 크다. 겸손해야 한다. 우리가 점령군이라는 이야기를 안 들으려면 무조건 고개를 숙여라”라며 “이번에 시의회 의장이 누가 되는가로 싸움하는 거 보이면 정말 큰일난다. 항상 말 조심하고 언론플레이할 생각 하지 말고…”라고 당부했다.

무엇이 ‘이변’을 만들어냈을까. 박 의원은 “민주당에 대한 지지라고 봐서는 안 된다”며 “이번에는 자유한국당이 정신 차리게 해야 한다는 정서가 밑바닥에 있다”고 평가했다. 시민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놨다. 연제구에 거주하는 한모씨(66)는 20년 동안 자유한국당에 표를 던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당이 미워서 후보 이름도 안 보고 민주당을 찍었다.”

남구에 거주하는 이영주씨(43)는 “‘너거 이제 한 번 당해봐라. 어짜는가 한 번 보자’는 마음으로 민주당을 찍은 사람이 많다”며 “이번 선거를 두고 정당만 보고 뽑았다고 비판하는데 그건 이전이 더 심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선거기간에도 한국당은 ‘잘하겠다’는 말은 없고 ‘심판’만 말했다. 이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국당의 이런 ‘안일함’이 부산지역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박 의원은 “한국당은 자신들이 당연히 된다고 생각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일을 제대로 안 했다”며 “주민들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토박이인 강경만씨(38)는 “지난 20년 동안 부산 경제가 나아진 게 없다”며 “그런 부분이 선거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1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부산의 실업률은 4.2%로 16개 시·도 중 가장 높았다. 반면 고용률은 55.6%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같은 기간 전국 실업률은 3.3%, 고용률은 60.2%였다. 청년층의 실업률과 고용률 역시 비슷한 동향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인구는 계속 감소했다. 한때 420만에 달했던 부산시 인구는 현재 350만이다.

‘안일함’은 서병수 전 부산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 전 시장은 2017년 한국갤럽이 실시한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에서 상반기에는 뒤에서 2등, 하반기에는 꼴찌를 차지했다. 시민들이 체감하는 좋지 않은 정책은 ‘버스 전용차선’이었다. 이영주씨는 “해운대에 버스 전용차선을 만들었는데 교통이 더 엉망이 됐다”고 지적했다.

해당 정책에 가장 큰 불만을 가진 직업군은 택시운전사다. 18년간 택시를 운전한 강모씨(64)는 “서울처럼 왕복 8차선에 곧은 길이면 모르겠는데 왕복 6차선 꼬불꼬불한 길에 버스 전용차선을 만들면 어쩌자는 거냐. 해운대만 가면 차가 움직이지를 않는다”며 “현장에 안 가본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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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팀’ 전략, 부산에서만 성공했다

42년 경력의 황모씨(67)도 “오전 12시부터 오전 5시까지는 버스가 다니지도 않는데 택시는 전용차선에 들어가지 못하게 단속한다”며 “서 전 시장이 버스회사 사장 출신이라 그런지 버스 위주로만 정책을 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일반인들도 다 아는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보수정당의 독식 ▲발전이 보이지 않는 부산 ▲보수정당과 인물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 민주당 입장에서는 한국당과 겨뤄볼 만한 토양이 갖춰진 셈이다. 그리고 민주당 부산시장 선거캠프는 이 토양을 잘 활용했다. ‘원팀’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주도로 꾸려졌고, 민주당 부산시장 예비후보들이 모두 합류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경선과정에서 같은 당 사람들끼리 마음이 상하는 일이 많다”며 “원팀은 애초부터 누가 후보로 되든지간에 떨어진 사람들이 후보에게 결합하고 지원하기로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원팀 내에는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나 이호철 전 수석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었으나, 후보가 정해진 이후에는 결과에 승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이번에 ‘정권을 바꾸자’는 목표를 두고 이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오거돈 당선인 측근들에게도 모두 원팀의 말을 들으라고 했다”며 “이번 전략은 집토끼보다는 산토끼를 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보수정당에 실망한 일부 세력이 선거캠프로 흡수됐다”고 설명했다. 기존보다 외연이 확장된 것이다.

외연이 확장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오거돈’이라는 인물이다. 오 당선인 자체가 부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기 때문에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두루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심지어 한국당 지지층 중에는 오 당선인이 보수 쪽인데 당만 민주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부산지역의 이 같은 변화는 민주당에 큰 의미가 있다. 부산 시민들 입장에서 달라지는 건 뭘까. 박 의원은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과거의 잘못된 관행들을 청산해야 한다”며 “지금 부산은 공무원 조직은 물론이고 전문가 그룹도 상당히 편향돼 있고 경직돼 있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당 부산시당 관계자는 “일당이 20년 이상 독식해 왔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그 쪽에 잘 보이기만 하면 승진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일부는 그렇지 않겠지만 일부는 일보다는 그런 쪽에 치중한 게 사실이다”라며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부서에 사람을 보내는 조직개편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주민들이 체감하기 어렵다.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당장 내놓아야 한다. 박 의원은 “3개월 이내에 하나라도 변화를 주지 않으면 주민들은 바뀐 게 없다고 느낀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원래 지지하던 한국당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래서 박 의원은 지금도 주민들에게 자신의 직통 전화번호를 건넨다. 작은 것부터 차별화를 하려는 시도다.

당선인들도 이런 고민을 안고 있다. 김우룡 동래구청장 당선인은 구청장의 첫 행보로 여겨지는 취임식부터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할 생각이다. 김 당선인은 “취임식을 아예 안 하기로 했다”며 “취임사를 직접 써서 동영상으로 중계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구청장 첫 오찬은 청소노동자들과 잡았다.

초선이라서 불안하다고요? 현장 출신 대거 진출

하지만 행사의 간소화나 소탈한 이미지 등으로 어필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구경민 시의원 당선자는 10년 이상 간호인력으로 일한 보건전문가이면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다. 구 당선인의 목표는 한부모가정, 특히 비혼모·비혼부에 대한 제도와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다.

구 당선인은 “전국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이 가장 낮은 도시가 부산이다. 증설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의지가 없으니 정체돼 있다”며 “한부모가정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일과 보육이 양립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시스템의 구축은 한부모가정뿐 아니라 모든 부모들에게 좋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구 당선인은 시의회에 들어가자마자 국·공립 어린이집 문제부터 눈여겨볼 예정이다.

민주당 비례 1번으로 당선된 김혜린 시의원 당선자(35)는 청년문제와 문화사업에 관심이 많다. 당선자 본인이 10년 이상 부산에서 문화활동을 해온 청년 활동가다. 그는 “부산이 살기 좋은 도시인데 일자리가 없으니 청년들이 거제나 울산으로 빠져나간다”며 “청년위원회 등을 정비해서 제대로 된 청년 일자리 대안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여전히 우려되는 부분은 있다. 먼저 이들 대부분이 초선이다. 이에 대해 인수위 관계자는 “초선의 장·단점이 있다. 초선 당선인들이 의욕이 넘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할 것이다”라면서 “구의원을 했던 당선인들이 몇 명 있으니 이들을 통해서 배우는 등의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당당한 건 오히려 당선인들이었다. 이들은 초선이지만 ‘현장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구 당선인은 “의회의 관행이나 용어에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런 부분은 빠르게 배울 수 있다”며 “관행을 몰라서 일 못하는 거 아니다. 실무를 몰라서 못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당선인도 “활동하면서 공무원들이나 시의원들이 현장을 모르는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답답했다”며 “저는 초선이지만 최소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운대구의 김광모 시의원 당선인은 교육청 감사 출신이고, 기장군 제1선거구의 김민정 시의원 당선인은 ‘기장해수담수반대대책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냈다. 둘 다 해당분야에 주력할 예정이다.

시의회가 여당 일색이다 보니 시정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을지도 우려되는 점이다. 시정에 대한 관리·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시장과 ‘한통속 의회’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지난 20년 동안 쌓인 적폐를 청산하려면 시정과 시의회가 힘을 합쳐야 할 때도 있다”며 “대통령은 의지가 있는데 국회가 안 따라줘서 못하는 것보다 같이 잘해보는 게 낫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의 결과는 견제세력을 키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김태만 해양대학교 교수는 “일당이 장기집권을 하게 되면 지역이 발전할 수 없다. 반전의 경험이 있어야 정치인들도 긴장하고 노력하고 경쟁하게 된다”며 “민주당은 이제 부산에서 견제세력으로 갓 발을 뗐다. 2년 뒤 총선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으려면 지금 단도리를 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산|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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