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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점점 줄어드는 진보정당 파이,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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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은 광역의원 비례대표 선거의 경우 8.97%를 득표했다. 득표율만 봤을 때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을 제치고 제3당이 된 것이다. 광역비례에서 정의당에 투표한 사람은 총 226만여명으로, 지난 대선 때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얻은 201만표보다 20여만표가 늘었다. 지방의회 당선자 수도 37명(광역 11명, 기초 26명)으로, 4년 전 기초의원만 11명 당선한 것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스스로 “제3당의 지위를 분명히 하고 전국적으로 10% 가까운 지지율을 획득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정의당을 포함한 모든 진보정당(정의당, 민중당, 노동당, 녹색당)으로 시선을 넓히면, 진보정당의 전체 파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10년 5회 지방선거의 경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총 164명(광역 27명, 기초 137명)을 당선시켰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은 총 55명(광역 4명, 기초 51명)을 당선시켰다. 반면 이번 선거에서는 정의당 당선자에 민중당 기초의원 당선자 11명을 합쳐도 48명이다. 진보정치세력이 외연을 넓혔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수치다.

진보정치세력이 지방선거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선거제도에 있다. 정의당의 광역비례 득표율은 9%에 달했으나 당선자 수는 전체 광역의원 824명 중 11명에 그쳤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숫자가 전체 의석의 1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초의회 선거에서 4인 선거구제가 도입되지 않은 것도 악재였다. 하지만 선거제도만 탓한다고 변하는 건 없다. 6월 20일 정의당이 주최한 지방선거 평가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선거제도 개혁도 중요하지만 지역구에서 후보를 어떻게 당선시킬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정의당 정당 득표율이 높았지만 기초·광역의원 지역구에서는 실망스러운 결과였다”며 “후보의 인물 경쟁력이 필요하다. 법조인이나 학계 인사 외에 청년·여성 등 소수정당이 인물을 발굴할 다양한 경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선거제도 개혁은 원내에서 할 노력이고, 현장에서 당선자가 돌파하는 것이 80% 정도 비중으로 중요하다. 2020년 총선까지 시간이 없기 때문에 후보를 바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보들의 인물 경쟁력 높여야

소수세력인 진보정치세력이 풀뿌리 선거에서라도 당선자를 내기 위해서는 후보자가 자신의 지역구에 꾸준히 도전하는 것 외에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서 오랫동안 정책 단위에서 활동해온 윤현식 노동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을 지낸 진보 정치인들 중 선거에 계속 나오는 분들이 거의 없고 늘 후보가 바뀐다. 지역에서 어렵게 선거를 뛰었다가 사라져 버리면 그냥 선거 때 힘들었을 뿐 성과는 남지 않고 없어져 버린다”고 지적했다.

이기중 정의당 서울 관악구의원 당선인은 세 번의 출마 끝에 이번 지방선거에서 25% 득표율에 2위로 구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 당선인은 “민주당 태풍이 불어 많은 지역에서 정당투표는 정의당을 했더라도 지역구 후보는 민주당을 찍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저처럼 여러 번 선거에 출마하고 지역에서 활동해온 사람들은 지지율 하락이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저처럼 두세 번 출마를 하고 역량을 부어넣어야, 중선거구에서 겨우 당선이 되고 1명만 뽑는 선거구에서는 거의 당선이 되지 않는 상황을 타파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당장 뾰족한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의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구호로 이슈를 모았던 녹색당에서도 지역구 돌파가 고민인 건 마찬가지였다. 이번 지선에서 녹색당은 전국 지지율 0.7%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신 후보는 2016년 총선에서 녹색당 비례대표 5번으로 출마한 바 있다. 하지만 신 후보를 제외하고 황윤 영화감독, 이계삼 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 사무국장 등 녹색당 총선 후보로 나섰던 이들은 이번 선거에 나오지 않았다. 4년 전에 이어 올해 지방선거에 다시 출마한 사람도 정영희 충남 홍성군의원 후보뿐이다.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정의당 당선자들을 보면 계속 낙선하면서도 출마한 분들이 있다. 녹색당은 지방선거 경험이 두 번째다. 30~40년간 준비해 지방의회는 물론 중앙의회에도 당선자를 낸 영국 녹색당 등 해외 녹색당의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며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은 강남역 시위와 미투 운동 등 기존 정치권에서 받지 못한 문제를 제기했다. 정당에서 선거가 매우 중요한 활동이기는 하나, 당 활동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동자 정치의 ‘영남 진보벨트’ 무너져

한편, 진보정치세력에 이번 선거는 ‘영남 진보벨트’가 무너진 현실을 보여준 선거였다. 윤현식 연구원은 “노동자 정치의 종지부를 찍은 선거”라고 평하기도 했다. PK지역에서 정의당은 4명의 지방의원(광역 1명, 기초 3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민중당도 경남과 울산에서 각각 1명의 기초의원을 당선시켰다. 민중당은 울산 북구 국회의원 재선거와 울산시장 선거에서 진보진영 단일후보를 출마시켰지만 각각 14%, 4%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윤 연구원은 “민주노총 조합원인 조직 노동자를 지지기반으로 노동자 출신의 선출직 공직자를 만들자는 노동자 정치의 전형적인 틀이 더 이상 유효한 모델이 아니다”라며 “울산의 현장 노동조직이 많이 연계된 울산노동포럼에서는 이번에 송철호 민주당 울산시장 후보와 노옥희 울산교육감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과거 선거에서 정의당이나 민중당 쪽에서 선거운동을 했을 법한 이들도 민주당을 지지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에서는 영남에도 수도권과 같은 ‘양당제의 벽’이 생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4년 전 민주당의 전신 새정치민주연합은 영남권 기초의회 775석 중 후보를 133곳밖에 내지 못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341곳에서 후보를 냈다. 새누리당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이들이 대거 민주당으로 이동한 것이다. 신장식 정의당 사무총장은 “그동안 영남에서는 민주당 조직 자체가 거의 없었고 진보정치세력이 사실상 자유한국당 세력과 경쟁을 해 왔다. 수도권에서는 우리가 양당제 하에서 움직이는 게 익숙했던 반면, 영남에서는 처음으로 민주당 쪽에 후보도 생겨나고 조직도 새로 가세하면서 거대양당 사이에서 선거를 치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 사무총장은 진보정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신 사무총장은 “2008년 이후 진보정치세력이 분열과 통합을 반복해서 전통적 지지층이 흩어졌다고 볼 수 있으나,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정의당 지지층을 분석해보면 40~50대 사무직, 제조업 노동자들이 많다. 2004년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던 30대 노동자들이 아직도 정의당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마음이 떠났던 지지층들도 점점 복원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사무총장은 정부·여당이 지방권력을 접수한 것이 오히려 진보정치세력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이번 선거는 사회·경제적 이슈가 정당 선택 기준이 아니었다. 2020년 총선에서는 사회·경제적 이슈가 중요하게 떠오를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과 개혁을 왼쪽으로 견인할 정의당의 역할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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