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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젊은 도시 구미, 누명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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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는 전국적으로 가장 젊은 도시 중 하나다. 지난 4월 구미시가 발표한 ‘구미형 청년정책 기본계획’에 따르면 구미시민의 평균연령은 37.8세다. 예전에 비해서는 높아진 편이지만, 평균연령이 36세 선인 경기 화성시, 오산시 외에는 구미보다 젊은 기초단체가 없다. 하지만 그동안 구미의 선거 결과는 젊은 도시라는 위상이 무색하게 자유한국당 일색이었다. 2014년 6회 지방선거까지 자유한국당 계열이 내리 6번 시장에 당선됐다. 시의원도 민주당 후보 한 명만 3인 선거구에서 겨우 3등으로 1명 당선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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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유권자들 반한국당 정서 표출

6월 13일 지방선거 결과 민주당 장세용 후보(64)가 구미시장에 당선됐다. 경북에서는 유일한 여당 기초단체장이다. 녹색당 구미시의원을 지낸 김수민 시사평론가(36)는 “젊은 도시 구미가 누명을 벗었다”고 평가했다. 김 평론가가 보기에 구미는 경북에서 가장 반한국당 정서가 높은 곳 중 하나다. 6회 지방선거 경북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구미시와 포항시에서만큼은 후보를 냈다. 김 평론가는 “선거 데이터만으로는 정확히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그동안 한국당을 찍은 이들을 적극적인 보수 지지자로 볼 수 없다. 시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거의 없었던 것도 있고, 지역에서도 민주당은 아예 없는 것처럼 한국당과 무소속의 대결구도로 몰고 가려는 분위기도 있다. 또한 자유한국당 소속 남유진 시장보다 시정을 잘할 능력을 다른 후보들이 갖췄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요인도 있다”고 설명했다. 구미 내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반한국당 정서가 널리 퍼져 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시의원 선거에도 민주당 후보가 대거 출마하면서 반한국당 여론이 장세용 당선인으로 모였다는 설명이다.

반한국당 여론이 모인 또 하나의 요인은 구미의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청년 인구는 자꾸 외부로 빠져나간다. 구미시가 올해 4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구미시의 청년(만 15~39세) 인구는 15만9000여명으로 5년 전에 비해 1만4000여명 감소했다. 구미시의 올해 신생아 수도 3600명으로 예측됐는데, 이는 2년 전에 비해 1000명 이상 줄어든 것이다.

6월 19일 구미를 찾았다. 구미역에 내리자마자 이철우 경북도지사 당선자(자유한국당)와 장세용 구미시장 당선자(민주당)의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역 앞에 위치한 시장 이름은 구미 ‘새마을’ 중앙시장이다. 역 앞에 늘어선 택시에는 ‘새마을’이나 ‘금오산’이라는 말이 써 있기도 했다. 구미역 주변만 해도 텅 빈 상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 블록에 한두 곳은 어김없이 유리창에 ‘임대’란 말과 휴대폰 전화번호가 붙어 있었다. 그 중 한 군데에 전화를 걸어 봤다. 받은 이는 자신을 부동산 중개업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최근 2~3년 사이 1번도로(구미역 앞을 지나는 구미중앙로를 부르는 명칭)에 임대문의가 엄청 늘었다. 10년 전만 해도 구미시는 차가 하도 막히는 게 문제였는데 요새는 너무 쌩쌩 차가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인적이 줄어든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런 구미시의 현실을 바꾸고자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한 이들이 있다. 바로 그동안 선거 결과에 나오지 않았던 ‘샤이 진보’ 시민들이다. 장세용 선거대책본부에서 SNS팀장으로 활동한 김영대씨(46)는 작년 대통령 선거 전까지만 해도 ‘샤이 진보’의 규모가 얼마였는지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2012년 대선 때 구미시민 80%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박근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은 잘 챙겨주지 않을까 하는 정서에서 자신을 ‘진보’로 여긴 사람들조차 박근혜에게 표를 줬다”고 말했다. 2016년 말 탄핵국면만 해도 구미시는 여전히 ‘보수의 성지’로 보였다. 김 팀장은 “그때 구미역에서도 촛불집회가 열렸는데 참여연대, 노사모, 시민의눈 등 시민단체 사람들만 왔다. 정말 많이 왔을 때가 400~500명이고 평소엔 100명도 보기 어려웠다. 반면 탄핵 반대집회는 남유진 시장이 직접 참석을 하고 김진태 의원 등 친박 정치인들이 내려왔다. 구미역 앞 도로를 가득 메울 정도로 촛불집회와는 비교할 수 없게 활발했다. 여기선 촛불을 들고 싶어도 너무 눈치가 보여서 들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특히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전임 남유진 시장의 ‘박정희 마케팅’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구미에는 박정희 생가뿐만 아니라 새마을 테마공원, 새마을회관 등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한 시설물이 곳곳에 있다. 시장 이름이나 지역 도서관 이름에도 ‘새마을’이 들어간 곳이 많다. 김 팀장은 “구미에 산 지 20년째지만 1000억원 넘는 돈이 들어갔다는 새마을 테마공원에 가본 적도 없다. 사곡동에 있는 새마을회관도 2년 전 우연히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알게 됐는데 그것 짓는 데도 100억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구미시민들이 가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데에 엄청난 예산을 쓴 것을 알면 알수록 남 시장을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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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시장의 ‘박정희 마케팅’에 반감

24년간 계속된 한국당 구미시장에 대한 반감은 인터넷을 타고 구미지역 젊은이들에게 확산됐다. 김 팀장은 구미시가 수도권 못지 않게 SNS가 활성화된 지역이라며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보여줬다. 그의 계정에는 ‘구미 대나무숲’, ‘구미 대신 전해드립니다’ 등 다양한 페이스북 그룹이 연결돼 있었다. 장세용 당선인이 직접 글을 남겨 화제가 된 구미 텐인텐 카페 등 구미시민들이 참여하는 카페에서도 꾸준히 홍보활동을 해왔다는 게 김 팀장의 설명이다.

장세용 당선인의 고향이기도 한 구미시 인동동 지역에서 당선된 신문식 민주당 구미시의원 당선자(56)는 선거를 뛰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도 많은 것이 변화했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분노한 이후 그는 민주당 지지자로 살았다. 2016년 1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가 ‘친문 패권주의’ 논쟁에 시달릴 때 신 당선인은 민주당에 가입했다. 제2의 고향이자 30년째 살아온 구미를 바꿔보고자 그는 사업을 제쳐두고 현실정치에 나섰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가 사는 구미시 을에는 민주당 조직 자체가 아예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신 당선인은 “입당하자마자 구미시 을 사무국장을 하라고 해서 솔직히 당황했다. 하지만 지역 시민단체 분들과 활동을 계속하면서 개인적으로도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남북평화 후광 효과도

신 당선인은 자신처럼 1~2년 사이에 정치에 뛰어든 이들이 경북도의원, 구미시의원에 출마한 것이 밑바닥에서부터 보수 일색의 구미를 변화시킨 힘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문재인 대통령 효과가 컸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높은 게 저희들에게도 든든한 힘이 됐다. 남북회담으로 평화무드가 조성된 것 역시 구미지역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에 뛰어들기 전만 해도 저는 구미에서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외롭게 살았다. 구미 경제가 안좋아지면서 하던 사업도 안좋아지고 한동안 골방에만 갇혀 지냈다. 사무국장 활동을 하고 선거에 출마하면서 구미의 변화에도 도움이 됐지만 나 자신도 많이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다만 구미시의회는 자유한국당이 다수다. 23석 중 여당 의원이 9명 당선됐지만, 자유한국당이 12명, 바른미래당이 1명의 후보를 당선시켰다. 신 당선인은 “선거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시의원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시민단체 분들과 살펴봤다. 4년 동안 조례 발의가 한 건도 없는 의원, 시정 질의도 거의 하지 않는 의원들이 많았다. 과거 한국당 의원들과는 다른 의회 활동을 펼쳐야 구미의 변화가 4년 뒤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미|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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