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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미 연방대법원 “경찰, 휴대폰 위치정보 무단 수집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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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한 미국인이 22일 미국 뉴욕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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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이 디지털 시대 프라이버시 보호 진영에 결정적인 승리를 안겼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은 “경찰이 휴대폰 사용자의 위치 정보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영장을 발부 받아야 한다“고 5대4로 판결했다. 경찰이 용의자의 행적을 파악하기 위해 그가 소유한 휴대폰의 위치 정보를 휴대폰업계로부터 무단 제공받을 수 없게 한 것으로, 미국 언론은 “기념비적 판결”로 묘사했다.

대법관 5명을 대표해 판결문을 작성한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은 휴대폰 위치 정보가 “자세하고 백과사전 수준이며 아무런 제한 없이 수집되고 있다”라고 설명한 후 “개인은 그의 활동 기록을 제공할 때, 충분한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합당한 기대를 할 수 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휴대폰 위치 정보를 일방적으로 제공받아도 된다는) 정부의 입장은 디지털 기술로 인한 격변과 카펜터를 비롯해 모든 이들의 위치를 얼마든지 추적할 수 있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관 가운데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엘리나 케이건, 소니아 소토마요르, 스티븐 브레이어 등 4명의 대법관이 로버츠 대법원장의 판결에 동조했다. 반면 앤서니 케네디와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앨리토, 닐 고서치 등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반대했다. 중립 성향이 강한 케네디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서 내세운 원칙이 휴대폰 위치 정보뿐 아니라 다른 정보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될 여지가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번 재판은 2011년 미시간ㆍ오하이오주에서 강도 행각을 저지른 티모시 카펜터가 총 116년형 판결을 받는 가정에서 경찰 당국이 휴대폰 통신사로부터 127일간 총 1만2,898건의 위치추적 정보를 제공받아 범죄 증거로 제출한 탓에 발생했다. 카펜터의 변호를 밭은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이를 부적절한 도감청이라 문제 삼으며 소송을 제기해 ‘티모시 카펜터 대 미국 정부’ 재판이 진행됐다. 지방법원과 항소법원은 미국 정부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을 뒤집었다.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로버츠 대법원장이 진보 성향 판결에 동조한 것은 이례적으로 보이지만, 본래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은 디지털 개인정보 보호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했다. 2014년에는 만장일치로 현장 체포된 용의자의 휴대폰을 압수수색할 때 영장이 필요하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ACLU는 이번 판결을 “현대 상황에서 수년간 필요했던 분명한 개인정보 보호를 연방대법원이 결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판결에 앞서 애플ㆍ구글ㆍ페이스북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도 고객 프라이버시를 보장해 달라는 의견서를 연방대법원에 제출했다.

다만 AP통신에 따르면 이 재판 결과가 카펜터의 휴대폰 위치 정보 수집 자체를 위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카펜터의 변호사인 해럴드 규어위츠는 사법당국이 법이 필요로 할 경우 입수한 범죄 근거를 내버려서는 안 된다는 ‘선의’ 원칙이 여전히 카펜터의 위치 정보를 증거로 제출한 경찰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카펜터의 강도 행위를 증명하는 증거는 휴대폰 위치 정보 외에도 충분하기 때문에 정작 소송을 제기한 주체인 카펜터의 형량이 이번 판결로 변동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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