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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일본색’ 짙은, 개를 찾는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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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개들의 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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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톱모션 애니 특유의 맛 살리고
수많은 영화 거장 흔적 담아
‘바른 생활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
유머 감각·캐릭터 묘사 돋보여


앤더슨 감독 과도한 일본 사랑
일본어 대사엔 자막도 없어
그럼에도 놓치긴 아까운
오밀조밀한 세트와 미술


영화보다 영화 같은 정치 스펙터클이 몇 차례 훑고 지나간 뒤, 이제야 좀 닫히려는 문을 또다시 화들짝 열어젖히며 밀려온 월드컵은 영화계로선 그야말로 연타로 밀려드는 지진해일이나 다름없다 하겠는데, 이런 엄혹한 시즌에 열두 척 배 이끌고 나가 개봉하는 모든 영화들의 건투를 빌어 마지않는 가운데, 웨스 앤더슨 감독의 최근작이자 <판타스틱 Mr. 폭스>에 이은, 또 한 편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인 <개들의 섬>에 대한 얘기.

보통 웨스 앤더슨의 세계를 논할 때는 ①수평구도-좌우대칭-평면적인-일러스트풍-미니어처스러운 비주얼 ②어른아이의 정서-아이어른 캐릭터 ③무표정 유머-유머 속의 눈물(또는 칼날) ④탈출-탐험-동행-재회-회복의 이야기 패턴 ⑤챕터 구성 ⑥그 챕터 제목 등의 자막에 쓰이는 푸투라 서체 등등의 키워드가 등장하곤 한다만 <개들의 섬>에서는 이들 모두를 뛰어넘고 지배하는 절대 키워드 하나가 등장한다. ‘일본’ 말이다.

‘웨스 앤더슨 행성’ 위의 일본

여기에서 일본이라 함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동유럽이 그랬듯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를 총망라해낸 실제적이고도 총체적인 일본이 아니다. <개들의 섬>의 일본은 웨스 앤더슨만의 일본, 더 정확히는 웨스 앤더슨이 매혹된 일본 영화에서 얻은 이미지를 기초 자재로 해서 건설한 가상의 일본이다.(영화의 수석 그래픽 디자이너인 에리카 던의 말을 빌려 말하면 “웨스 앤더슨 행성 위의 일본”) 그러니까 말하자면, 롤랑 바르트가 일본에 대한 기호학적 관찰기 <기호의 제국>에서 ‘내가 어떤 허구의 나라를 상상하기 위해 만들어낸 체계를 일본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던, 뭐, 그런 카인드 오브 일본과도 맥락이 비슷하다 할 것인데, 아아, 얘기가 너무 멀리 나갔다.

어쨌거나 영화는 도입부부터 확실하게 일본이다. 영화는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세 소년이 벌이는 일본 전통 북(와다이코) 연주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 앤더슨의 전매특허라 할 푸투라 폰트의 영문 제목과 일본어 제목이 나란히 적히고, 일본 전통 목판화(우키요에)의 스타일을 그대로 적용한 프롤로그를 통해 영화의 배경 이야기를 브리핑해 올린다.

내용인즉 이렇다. 이야기의 배경인 20년쯤 뒤의 미래(하지만 모든 비주얼은 1970~80년대쯤의 일본이다)의 가상도시 ‘메가사키’에서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을 옮긴다는 죄목으로 도시의 모든 개들이 쓰레기 섬으로 추방된다. 예전 서울의 난지도를 연상시키는 이 쓰레기 섬에서 왕년에 한가락씩 하던 개들은 생존을 위해서 나름의 사투를 벌이게 되는데, 그 와중에 한 소년이 경비행기를 몰고 와 불시착한다.(탈출) ‘스파츠’라는 자신의 개를 찾으러 온 ‘아타리’(맞다. 왕년의 그 추억의 비디오게임 회사의 이름이다)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다름 아닌 개들의 추방을 결정한 ‘메가사키’ 시장의 양아들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우연히 아타리의 수색과정(탐험)에 동행하게 된 떠돌이개 ‘치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동행), 쓰레기섬, 전염병, 추방, 시장, 사투 같은 단어에서 대략 짐작하시겠지만 <개들의 섬>은 다분히 개인적이고 내향적이던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과는 달리 상당히 사회적이고도 외향적인 주제(동물복지, 환경 문제, 정치부패, 제약회사의 음모 등등)를 은연중에, 또는 대놓고 건드리고 있다.

영화는 이런 주제를 다루는 영화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 ‘바른 생활의 오류’ 즉, 메시지의 무게에 눌려 모든 것이 반듯하게 평면화·따분화돼 버리고 마는 오류를 솜씨 좋게 벗어나고 있다. 이는 물론 웨스 앤더슨 특유의 유머감각과 캐릭터 묘사 능력에 힘입은 바 크겠다만, 그보다도 역시나 영화를 끌고 가는 가장 큰 힘은 비주얼이다.

일단 <개들의 섬>은 <판타스틱 Mr. 폭스>처럼 초당 24프레임이 아닌 초당 12프레임으로 움직임을 만듦으로써 스톱모션 애니 특유의 거칠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리고 있다. 덕분에 영화는 라이카 스튜디오의 스톱모션 애니인 <쿠보와 전설의 악기>처럼 동작이 너무 매끄러운 나머지 오히려 컴퓨터그래픽(CG) 애니와 차별되지 못하고 마는(즉, 대체 왜 스톱모션으로 만들었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과도한 매끄러움의 오류를 피할 수 있었다. 나아가, 불꽃을 묘사하는 데 셀로판을 사용한다든지, 연기를 만드는 데 솜을 사용한다든지 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스톱모션 애니 특유의 구수함과 귀여움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짐작건대 이는 필시 웨스 앤더슨이 매료되었던 왕년의 일본 특촬물들, 그중에서도 <고지라> 등의 괴수물들이 괴수액션장면(도심에 나타나서 행패를 부린다든지 하는)에서 사용했던 거칠거칠한 스톱모션 기법에 대한 애정의 표현일 것이다. 맞다. 닉 파크의 스톱모션 애니인 <월레스 앤 그로밋>의 <양털도둑 소동>에서처럼 <개들의 섬>에서도 고지라의 기계버전인 ‘메카고지라’를 빼닮은 로봇 개가 등장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스탠리 큐브릭(특히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부터 오즈 야스지로까지, 영화 곳곳에 묻어 있는 수많은 거장들의 흔적인데, 웨스 앤더슨은 <개들의 섬>에서 일본 영화의 거장들, 그중에서도 특히 구로사와 아키라와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존경을 담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영화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만(영화 속 ‘고바야시 시장’의 얼굴에서 구로사와 감독의 <천국과 지옥>에서의 미후네 도시로를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흔적은 대번에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뭐,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간접적인 영향들을 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떠올려야 할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은 극장용 영화가 아닌 그가 연출했던 1978년의 티브이 시리즈 <미래소년 코난>(이하 <코난>)일 것이다. 폐허가 된 채 황량하게 버려진 대규모 플랜트, 사막 같은 폐광산, 버려진 원전 등, <개들의 섬>의 세계는 ‘최후의 전쟁’ 이후의 지구인 <코난>의 세계, 그중에서도 특히나 황량하기 그지없는 ‘과학도시’ 인더스트리아와 닮았다. 아타리와 개들이 타고 이동하는 트롤리는 <코난>의 광산차를, 아타리가 타고 온 끝이 뾰족한 은색 비행기는 <코난>의 지구 탈출용 우주선을, 거대한 소용돌이가 회전하는 바다는 <코난>의 멸망전쟁 시의 지구 대기를, 비행기 추락 장면에서의 구름의 묘사는 <코난>의 비행정 추락 장면을 그대로 닮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닮은 것은 ‘모험’의 이미지다. 사랑하는 누군가(<코난>에서는 코난의 여자친구 라나, <개들의 섬>에서는 소년의 충견 스파츠)를 찾아서 위험하고 황량한 곳으로 자진해서 들어가는 소년과,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 그리고 그들이 함께 겪게 되는 우여곡절은 <코난>이 보여준 모험의 이미지를 그대로 닮아 있다. 이것이 <문라이즈 킹덤>을 위시한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서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엉뚱함과 귀여움 속에 숨어 있는 뼈 있는 냉소,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골고루 배어들어 있는 소년적(또는 소녀적) 동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덕분에, <개들의 섬>은 일본 영화에 대한 웨스 앤더슨의 러브레터 이상의 영화가 되었다.

과도한 ‘일본색’ 아쉽지만 놓칠 순 없어

물론 웨스 앤더슨의 일본 문화에 대한 걸러지지 않은 애정 덕분에 성가스러운 면도 많다. 예컨대 “자막 달린 일본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는 싫었다”라는 웨스 앤더슨의 고집 덕분에 일본어 대사에는 아예 자막이 붙어 있지 않거나 극중 변사가 등장해 영어 해설을 해주는 등의 처리가 돼 있다거나 하는 대목에서는 ‘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것이 개와 인간 사이에는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장면을 위한 설정이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실 그보다는 아마도 많은 한국 관객들에게 걸릴 부분은 이 영화의 짙은 ‘일본색’일 것이다(역설적으로 북미 개봉 당시, 일각에서는 이 영화가 일본을 잘못 묘사하고 있다, 일본의 껍데기만 써먹고 있다, 등의 비판이 제기됐었다). 하지만 <개들의 섬>은 그런 이유로 놓치기엔 아까운 영화다. 특히 이 영화의 오밀조밀한 세트와 미술이 함유한 영양가를 최대한 흡수할 수 있는 극장에서의 관람 기회를 놓치기엔 더욱. 앞서 말했듯 이 영화의 ‘일본’이 실제의 일본도 아닌 마당에 말이다. 개인적으로 길고양이 출신 고양이 두 마리와 동거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영화의 고양이에 대한 모함에 가까운 태도는 못내 유감이긴 했다만(인간의 편견과는 달리 고양이와 개는 의외로 서로 잘 지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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