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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內戰의 폐허 속에서 유일한 희망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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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에 무너진 시리아 다라야 건물 잔해서 1만5000권 책 찾아 지하에 비밀 도서관 만든 청년들, 인터넷·전화로 나눈 이야기 펴내

조선일보

시리아 남서부 다라야의 한 청년이 건물 잔해에서 책을 찾아 들어 보이고 있다. 저자 델핀 미누이가 다라야 비밀 도서관에서 받은 사진이다. /더숲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델핀 미누이 지음임영신 옮김|더숲
244쪽|1만4000원


한 달 600여 차례 폭격이 쏟아진다. 정부군 봉쇄로 식량과 의약품을 받을 수도 없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남서쪽으로 7㎞ 떨어진 인구 25만명 도시 다라야는 원래 청포도로 유명한 평화로운 고장이었다. 2011년 3월 내전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35만명이 죽고 1000만명에 이르는 난민이 발생했다. 세습 독재자 알 아사드 대통령은 내전 발발 직후 다라야를 봉쇄했다. 반군 거점이란 이유였다. '집이 많은 곳'이란 뜻의 도시 다라야는 폐허가 됐다. 대다수 주민이 탈출해 1만2000명만이 남았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도서관 사진

사진 한 장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 중동 전문기자 델핀 미누이는 2015년 10월 '시리아 사람들(Humans of Syria)'이란 페이스북에서 비현실적인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책이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이 벽면에 가득한 곳에서 젊은 청년 둘이 책을 들여다보는 모습이었다. 다라야에 있는 지하 도서관이라 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땅에서 책을 읽는다니! 페이스북과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 등을 통해 현지 젊은이와 어렵사리 연락이 닿았다.

도서관을 만든 주역은 스물세 살 아흐마드. 다마스쿠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청년이다. 친구들과 함께 아사드 정권에 항거해 무기를 들었다. 폭격이 이어지던 2013년 어느 날 동료들이 그를 불렀다. 폐허 더미에서 다량의 책을 찾았다고 했다. 처음엔 코웃음을 쳤다. 사람도 살리기 어려운 형편에 책을 구한다고? 마지못해 현장에 갔다. 지역 학교 교장 집이었다. 건물 잔해 사이에 책 더미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폐허 속에서 1만5000권 도서관 만들다

그런데 놀라웠다. 아흐마드는 평소 책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었다. 건물 잔해 밑에서 무심히 책 한 권 집어 몇 쪽을 읽는데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내용에 감동한 때문이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해방의 전율이었다. 지옥 같은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 미지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기쁨이었다. 이후 한 달간 책 1만5000권을 '구조'했다. 널빤지를 모아 책장을 만들고 건물 지하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수집한 책에는 소유주로 추정되는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언젠가 평화가 오면 돌려주리라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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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평균 25명 독자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책에 의지했다. 몸의 상처는 치유하지 못해도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다. 책은 고립된 세계에서 밖으로 열린 유일한 창문이었다. 절망의 나락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을 주었다. 공학을 전공한 아부 엘에즈, 내전 후 처음 총을 잡은 역사학도 오마르 등 젊은 반군 병사들을 지키는 힘이었다.

인기 도서는 '연금술사' '어린 왕자'

파울루 코엘류 소설 '연금술사'는 비밀 도서관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 책이라고 기억한다. 미국 작가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잃어버린 '자아'를 찾게 했다. 아흐마드는 말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합니다. 나침반 같은 책이에요!"

도서관은 학습과 토론의 공간이기도 했다. 서른일곱 살 무함마드는 '우스타즈(선생님)'가 됐다. 지하 도서관에서 영어와 시리아 역사를 가르친다. 폭격이 잦아든 시간이 되면 도서관에 모여 조국의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우스타즈는 "스스로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면, 신도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코란'의 말을 좋아했다. 그는 말했다. "우리의 문제는 비겁함과 교육의 부재,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용기의 부족이다."

저자 미누이는 1년여간 인터넷과 위성 전화 등을 통해 다라야 비밀 도서관 식구들과 나눈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라야에 남은 주민은 2016년 8월 아사드 정권의 최후통첩에 따라 북부 지역으로 강제 이주됐다. 다라야 비밀 도서관은 사라졌다. 저자가 한 장의 사진을 그냥 지나쳤다면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도 폭격 잔해와 함께 사라졌을 것이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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