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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르포] "벌써 서식단계인가…" 붉은불개미 덮친 평택항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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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불개미 잇단 출몰에 검역당국 비상
‘공주개미’ 등장에 국내 토착화 가능성 제기
강한 꼬리 독침, 한번에 1500개 알 낳아
"외래종 관리, 매뉴얼 마련돼야" 지적도

지난 21일 오후 1시, 경기 평택·당진항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농림축산검역본부 조사관들이 분주히 바닥을 살폈다. 이들은 3~4명이 한 조(組)로 움직였다. 돋보기로 바닥을 ‘해부’하듯이 살피던 조사관이 개미 구멍을 찾아내면, 다른 조사관이 야삽으로 땅을 파 올리는 식이었다.

“나왔다!”
평택항 풀 숲에서 득의 양양한 고함이 터졌다. 컨테이너항 청소 일을 하는 오모(42)씨가 붉은 빛이 감도는 개미 무리를 발견한 것. 오씨가 검지를 뻗어 가리킨 곳으로 조사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여기 있는 흙 다 갈아엎어야 하는 거 아니야?” 구경꾼들이 수군거렸다.
그러나 5마리를 포획해 정밀조사를 진행한 결과 붉은 불개미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20여명 조사관들이 집중적으로 들여다본 것은 2.6m 높이의 컨테이너 박스 부근 항구. 전날 중국에서 들여온 이 컨테이너 박스 부근에서 ‘살인개미’로 불리는 붉은 불개미가 700여 마리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박스 주변은 10m 간격으로 개미유인용 트랩(덫)이 설치됐다. 덫은 육포 냄새를 맡고 온 개미가 접근하면 부동액으로 빠지는 구조다.

‘평택항 붉은 불개미 현장조사’에 참여한 류동표 상지대 산림과학과 교수는 “불개미가 이 정도로 대량 발견됐다는 점에서, 여왕개미가 알을 낳는 ‘서식단계’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부산서 ‘알 낳는’ 공주개미도 발견
평택항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일 부산항 야적장에서는 개미알 150여개, 공주개미 11마리, 일개미 3000여마리가 발견됐다. 공주개미는 여왕개미 이전 단계로, 교미하지 않은 암개미를 말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수개미가 없었다는 점에서, 공주개미가 결혼 비행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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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불개미는 적갈색을 띠고 꼬리 부분에 독침을 가지고 있다. 세계 100대 악성 침입 외래종으로, 농작물부터 전선, 전자제품, 문화유산까지 망가뜨리며 사람과 가축도 위협한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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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해 9월 부산 감만항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부산·인천·평택 항만을 중심으로 5000여마리에 이르는 붉은 불개미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국내 토착화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붉은불개미 애벌레가 발견된 평택항에는 긴장된 분위기가 역력했다. 애벌레 그대로 중국에서 넘어왔을 수 있지만, 여왕개미가 이 곳에서 알을 낳았다는 추측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왕개미 나오면 (검역)비상이에요. 이런 데 알 같은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사관이 포크 모양 삽으로 콘크리트 사이를 긁었다.

붉은 불개미 여왕개미는 한번에 1500개 정도의 알을 낳고,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생존이 가능하다. 세계곤충학회(ICE) 상임이사인 김병진 원광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공주개미 11마리가 전부라고 볼 수 없다”며 “신혼비행을 하고 퍼져나가서 국내 다른 지역에 알을 낳고 번식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미 중부 지역이 원산지인 붉은 불개미는 악성(惡性) 외래종으로 구분된다. 3~6mm 크기로 꼬리 독침에는 개미산(酸)이 많아 한번 쏘이면 피부가 불타는 듯 고통스럽고 가렵다. 붉은 불개미 독성은 꿀벌보다는 높지만, 말벌보다는 낮다는 연구결과도 있다.하지만 독성에 과민한 사람의 경우 현기증·호흡 곤란이 동반되는데 심하면 숨지기도 한다.

“만에 하나라도 물릴까 봐서요.”실제 평택항에서 만난 현장 조사관들은 3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안전복장으로 중(重)무장하고 있었다. 개미가 발에 올라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꺼운 작업화를 신었고, 장갑·팔토시도 여러 겹 겹쳐 썼다.

붉은불개미는 1982년 이후 2000년대까지 주로 미주 대륙으로, 2001년부터는 호주,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대만, 중국 등 아시아권으로도 확산했다. 정착한 국가만 해도 14개 이상이다. 미국에선 해마다 이 개미 때문에 의료비가 6조원 이상 들어가고, 북미에선 한 해 평균 8만명 이상이 쏘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 이미 퍼졌나? 비상 걸린 검역당국

조선일보

21일 경기도 평택항에서 붉은불개미 방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소독차가 붉은불개미가 발견된 부지 주변을 돌았고, 근처에는 개미집을 찾기 위해 아스팔트를 걷어 땅을 판 흔적도 남아있었다. 컨테이너 앞에는 붉은불개미 유인을 위한 덫이 하나씩 꽂혀있었다. /현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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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붉은불개미가 섞여 들어올 가능성이 큰 코코넛 껍질, 나왕각재(인도네시아·필리핀 등지에 분포하는 목재의 한 종류) 등 32개 품목은 수입 컨테이너를 열어 검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검역 당국이 손댈 수 있는 식물 관련 화물은 전체의 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화주(貨主·화물 주인)가 붉은 불개미를 발견하면 신고하도록 했다. 연간 국내에 수입되는 1300만 컨테이너를 하나하나 열어볼 수는 없다는 것이 검역본부 설명이다. 정부는 또 중국 복건성 등 불개미 분포지역에서 수입되는 컨테이너에 대해서는 수입자에게 자진 소독을 권유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자진 신고, 자진 소독에만 의존하는 것은 소극적인 대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붉은불개미의 이동경로, 정착시기, 특성, 위험성 등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외래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오석 경북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는 “붉은 불개미 뿐만 아니라 황소개구리, 블루길, 뉴트리아 등 우리나라에 유입된 외래종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 이번 기회에 체계적인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김병진 원광대 명예교수도 “검역 사각지대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지속적인 연구, 방역 등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평택=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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