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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대법, 원심 뒤집고 “휴일·연장근로수당 중복 지급 안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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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합의체, 6년6개월 심리 끌다 국회 법 개정 이유 들어

‘성남 미화원 사건’ 파기환송…“기업 친화적 판결” 비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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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최근 국회가 개정한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따른다며 휴일·연장근로수당을 중복해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무려 6년6개월간 심리를 끌며 판단을 미뤄오다 국회의 법 개정이 이뤄지자 이를 사유로 원심 결론을 뒤집었다.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신 대법관)는 경기 성남시 환경미화원들이 성남시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였던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평일에 매일 8시간씩 총 40시간을 근무한 환경미화원들이 토·일요일에도 4시간씩 근무한 데 대해 성남시가 휴일근로수당만 주자 “연장근로수당도 지급하라”며 2008년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1주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정하고 노사 합의에 따라 12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연장근무 시간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해야 하며, 휴일 근무에 대해서는 별도로 휴일근로수당도 줘야 한다.

문제는 당시 근로기준법에 ‘1주’에 휴일(주말)이 포함되는지 여부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고 측은 1주는 7일이고, 이에 따라 평일에 하루 8시간씩 총 40시간을 근무한 뒤 휴일에 추가 근무를 했다면 연장근로이자 휴일근로에 해당하므로 100%를 가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고 측은 1주에 휴일이 포함되지 않는다며 평일에 52시간, 토·일요일 각 8시간씩 근무하면 최대 노동시간이 68시간이므로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해당하지 않아 휴일수당(50% 가산)만 주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사실상 노동계와 재계의 대리전이었다. 원고 측은 중복할증이 인정되면 노동시간이 단축되면서 일자리가 13만~16만개 창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재계는 기업의 부담이 커져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맞섰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 사건을 심리하던 도중 상황이 뒤바뀌었다. 지난 2월 국회가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면서 ‘1주는 7일’이라는 문구를 명시하면서 주 52시간 근무를 못 박는 대신 중복할증은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피고의 손을 들어주면서 국회의 법 개정을 근거로 삼았다. 다수의견인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한 8명의 대법관들은 “‘개정 근로기준법은 ‘1주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고 명시하고 부칙에서 사업장 규모별로 시행 시기를 달리 정해두고 있다”며 “만일 옛 근로기준법상으로도 ‘1주간 최대 근무시간이 52시간’이라고 해석하게 되면 개정 근로기준법을 순차적으로 적용하기로 한 부칙과 모순이 생기고 30인 미만 사업장에 한시적으로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한 조항과도 배치돼 법적 안정성이 깨진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신·김소영·조희대·박정화·민유숙 대법관 등 5명은 “‘1주’는 통상 달력상의 7일을 의미하고, 옛 근로기준법도 1주간 근로시간 등에 휴일을 제외하는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반대 소수의견을 냈다. 이어 “휴일근로는 1주 단위의 최소한의 휴식시간 제공 등을 통해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근로자의 권리 및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는 독자적 취지가 있다”고 밝혔다. 김신 대법관은 “법원은 국민의 권리 보호 요구에 대하여 경제적 상황이나 정치적 타협을 고려하여 정당한 법 해석을 포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이 이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린 것은 처음 소송이 제기된 날로부터 10년, 대법원에 사건이 올라온 날로부터 6년6개월 만이다. 이 때문에 대법원이 시간을 끌다가 국회가 법을 개정하자 파기환송한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국노총은 성명에서 “선고를 차일피일 미루다 입법부가 법을 개정하고 나서야 개정된 법 기준에 맞춘 판결을 내렸다”며 “대법원이 노동계의 손을 들어줄 경우 노동계가 미지급된 임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이 이어질 것이 예상되자 결국 또 재계의 손을 들어준 편향적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1주는 5일이라는 ‘창조적 법해석’에 할 말을 잃는다”며 “국회와 사법부의 사상 유례없는 짬짜미 판결”이라고 밝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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