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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폭격 속에서, 오직 책으로만 자유로웠던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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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부군에 포위된 시리아 다라야

청년들이 만든 공동체 도서관

도시 함락으로 도서관도 사라져

사람들은 어떤 책을 빌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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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
델핀 미누이 지음, 임영신 옮김/더숲·1만4000원


반정부군. 포위된 곳. 기아에 시달리는 곳. 다라야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에 있는 반군 지역이다. 다라야는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평화적 시위의 발원지 중 하나였는데, 2012년부터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의 정부군이 포위해 폭격을 시작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의 시리아 특파원인 델핀 미누이는 분쟁 지역 전문기자로, 지난 20년간 이슬람 지역을 다니며 중동 각국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취재해왔다. 2015년, 그녀는 우연히 ‘시리아 사람들’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되는데, 잿더미와 화염뿐일 시리아에서 혈흔도 탄흔도 없이 무사히 빠져나온, 수수께끼 같은 사진이었다. 책이 빼곡하게 들어찬 벽에 둘러싸인 두 젊은 남성을 찍은. 델핀은 사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알기 위해 사진 촬영자를 찾았다. 아흐마드 무자헤드. 사진 속 비밀스러운 아고라의 공동 설립자 중 한 사람이었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 책으로 된 피난처가 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들리는가? 낭만적인가? 절박한가? 사람이 죽는데 책이 무슨 소용인가 싶은가? 델핀은 그곳의 사람과 접촉을 시도했다. 외부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숨구멍이었던 인터넷을 통해 아흐마드가 들려준 말은 이렇다. 잿더미가 된 저항자들의 도시에서 문화유산을 구해내고자 탄생한 프로젝트가 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서 수천 권의 책을 구해내 모든 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피난처를 만들었다. 포탄에 맞서는 은밀한 요새. 대중 교육을 위한 무기가 될 책들. 대통령이 억압하고자 포탄을 퍼붓는 대상인 평화의 노래. 아흐마드는 무장투쟁 노선을 따르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제거하고자 하는 지하세력의 일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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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군에 둘러싸여 폭격 당한 시리아의 반군 도시 다라야의 폐허 속에서 도서관 운영을 맡은 한 청년이 책을 수거하고 있다. 더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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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은 다라야의 살아 있는 회고록이다. 2015년 10월15일부터 10여개월을 인터넷으로 오고 간 대화와 글, 영상으로 재구성했다. 당시 스물세 살이던 아흐마드는 정권에 포위된 다라야에서 지내며 3년간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 채 폭격과 기근에 시달렸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고작 7㎞ 떨어진 다라야는 뚜껑이 닫힌 관과 같은 상태로 1만2000명만이 살아남은 상태였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 아흐마드는 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고, 축구와 영화를 좋아했다. 시리아에 혁명이 일어나던 2011년, 열아홉 살이던 아흐마드는 아버지(친구에게 무심코 건넨 한마디로 12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의 만류에도 시위에 참여했다. 구호는 “국민과 시리아는 하나다”였고, 몇 달이 지나 정부군이 군중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가족이 피난을 가는 동안 마을에 남기로 한 아흐마드는 해외 언론이 접근할 수 없는 다라야의 진실을 인터넷을 통해 알리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친구들이 그를 어딘가로 불렀다. 어느 허물어진 집터에서 찾고 싶어했던 책들을 발견했다고. “책이라고?” 사람도 구해내지 못하는 판에 책이라고? 심지어 아흐마드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책이 거짓과 선전으로 물들기 쉬운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아흐마드가 책장을 넘기며 바깥 세계로의 문이 열리는 기쁨을 맛보는 순간에 대한 묘사는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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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지기이자 그래피티 미술가인 아부 말렉이 폭격으로 무너진 다라야의 한 건물 벽에 평화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 더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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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정부는 이 작은 마을에 대체 왜 이렇게까지 공격을 퍼붓는가? 다라야에서는 1990년대부터 진보적인 이맘(이슬람 공동체의 지도자)을 중심으로 금서를 읽었고 시위를 했다. 2002년 다라야에서 벌어진 첫 시위의 구호들은 <코란>의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었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신도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2011년 3월, ‘아랍의 봄’ 초기가 되었을 때 다라야는 다시 깨어났다. 학교 벽에 저항적 메시지를 낙서한 일로 청소년들이 체포되어 고문 받자, 1990년대 운동권이 시위에 나서고 청년 세대가 그 뒤를 이었다. 시위 구호를 만든 스물여섯살 청년은 체포 사흘 뒤 거세되고 목이 난자 당한 유해로 가족의 품에 돌아갔다.

이렇게 시작된 일의 끝은 어떨까. 역사에는 스포일러가 없다. 당신이 지금 뉴스를 검색하면 알 수 있다. 다라야는 함락되었다. 책 속의 비밀 도서관도 사라졌다. 이 책이 없었다면 아흐마드의 친구이자 도서관의 정신적 지주였던 오마르가 언제 어떻게 사망했는지,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나누던 책이 무엇이며 그 책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아마도 영영 알 수 없게 되었으리라. 인터넷을 통한 델핀의 취재에 어렵사리 응하면서 아흐마드가 희망했던, 그들의 도서관에 이 책을 장서로 추가하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세상에 남은 모든 도서관에서 이 책을 통해 다라야를 기억할 순 있으리라. 내전이 몇 년이고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다라야의 사람들은 의지할 것이 자기 자신뿐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바깥 세계로 난 유일한 문은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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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에 모여 책을 읽고 있는 시리아 젊은이들. 더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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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슬픈 부분 중 하나는 그곳의 사람들이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도서관까지 와서 빌려가는 책들에 대한 이야기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가장 사랑받는 책 중 하나였다. 젊은 혁명가들은 이 이야기를 자신들의 위태로운 모험담이 되울린 메아리처럼 읽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고, 두꺼운 의학서는 부상자 치료에 도움이 되었다. 가장 놀라운 책 중 하나는 미국 작가 스티븐 코비의 책으로,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자기계발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었다. 감옥생활을 하던 다라야 저항 세력의 노장인 우스타즈를 시작으로, 다라야의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환경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열쇠”를 찾아냈다. 책을 완성하는 이는 독자라는 말이, 다라야에서 마르셀 프루스트나 쿳시, 제인 오스틴을 읽는 이들의 절박함을 통해 보여진다. 때로 책은, 유일하게 남은 해방구이자 저항의 근거로 기능한다. 시리아 내전은 끝나지 않았다.

이다혜 작가,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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