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5 (일)

[ESC] 울릉읍내 비탈 따라 느릿느릿…도동항 뒷골목 한바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ESC] 커버스토리

앞길·뒷길·중간길 얽히고설킨 울릉읍 도동항

2천살 향나무, 180살 풍게나무 청청

청국샘은 메워지고 도동약수 맛은 여전

곳곳에 보존된 일제 가옥도 볼거리



한겨레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울릉군은 1읍(울릉읍), 2면(서면·북면), 도동1리 등 10개 리로 이뤄졌다. 인구는 약 1만명이다. 울릉읍 도동리에 울릉군청이 있다. 산 너머 저동항이 주로 어선이 드나드는 어항이라면, 도동항은 여객선이 닿는 울릉도의 주항이다. 요즘은 좁고 비탈진 도동보다, 비교적 넓고 완만한 저동이 뜨고 있다. 하지만 도동항은 여전히 행정·문화 중심지이자, 울릉도 관광의 거점 항구다. 일제 강점기 흔적 등 볼거리도 짭짤하다. 도동항의 복잡하게 얽힌 비탈 골목길을 걸으며 주민 삶의 자취를 둘러봤다.

한겨레

도동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이 무수한 갈매기 무리다. 팻말 무리도 있다. 여행사·렌터카·모텔·민박 팻말을 들고 둘러서서 관광객을 맞이하는 이들이다. 미리 예약한 이들을 찾는 팻말이 대부분이지만, 즉석 호객에 나선 이들도 많다.

주차장과 길의 구분이 모호한 도동항 광장은 차량 반, 관광객 반이다.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한쪽에 늘어선 노점에서 더덕즙 한 잔을 사 마신다. 더덕은 명이(산마늘)·부지깽이나물(섬쑥부쟁이)·삼나물 등과 함께 울릉도 특산 작물의 하나다. 도동항 주차장 한쪽에 더덕 노점, 커피·음료 노점, 낚시 노점 부스 12곳이 늘어서 있다.

“이게 1300만원짜리야. 1년에 40만원씩 갚으면 돼. 고마운 일이지.” 모두 길바닥 좌판 노점들이었는데, 2년 전 군청에서 소형 철제 부스를 마련해 줬다고 한다.

주차장 주변 상가는 울릉도에서 땅값이 제일 비싸다는 곳이다. 평당 2000만~3000만원을 호가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요지에 자리 잡은 건어물가게, 낚시점, 다방, 식당, 슈퍼, 노래방, 모텔 간판 둘러보며 도동항 주변 골목 탐방을 시작한다. 하늘을 보면, 높이 솟은 건물들 뒤로 어김없이 험난한 바위봉우리들이 배경 화면처럼 깔려 있다. 곧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게 치솟은 바위절벽 꼭대기에, 그 유명한 고령의 향나무들도 눈에 잡힌다. 능선 바다 쪽의 향나무는 2000살, 내륙 쪽 능선의 부러진 향나무는 2500살이나 됐다고 한다.

한겨레

도동항에서 팻말을 들고 고객을 기다리는 여행사·렌트카 업체 직원들. 이병학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험한 산악지형 틈바구니에 집들이 다닥다닥 이어지며 형성된 도동항 주변 골목길은 매우 복잡하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거리의 중심 축을 이루는 세 갈래 길을 이해하고 나면 다소 나아진다. 앞 골목, 뒷골목, 그리고 중간 골목이다. 주차장에서 봤을 때 왼쪽 골목이 앞 골목, 가운데 가장 넓은 길(넓어 봤자 중앙선도 없는 1차선이다)이 중간 골목, 오른쪽이 뒷골목이다. 세 골목에 모두 차량이 드나들지만, 중간 골목을 빼곤 매우 비좁다. 골치 아픈 건, 이 세 골목이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도중에 서로 만나 얽히고 풀리기를 반복해서 헷갈리게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마을버스가 다니는 가장 큰 길에 답이 있다. 이 길은 본디 하천이었다. 하천을 따라 앞 골목·뒷골목이 얽혀 있었고, 하천이 복개돼 도로가 되면서 지금처럼 복잡한 세 갈래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무튼, 먼저 오른쪽의 뒷골목을 따라 올라간다.

노래방·다방·식당·모텔이 즐비한데, 울릉도에서 유일하다는(‘100% 부킹 보장’이라는, 손님은 100% 관광객이라는) ‘나이트’도 보이고, 호박엿 공장도 보인다. 약초해장국·산채비빔밥·따개비밥 등 다양한 울릉도 음식을 내는 ‘99식당’과 홍합밥 한 가지만 차려내는 ‘보배식당’ 앞을 지나 일본식 가옥 한 채를 만난다. 전 울릉군수의 집이라는 이 나무판자 집은 도동에 남은 서너 채의 일제 강점기 때 가옥 중 하나다.

한겨레

독도성당의 독도를 지키는 성모상. 이병학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울릉군청 앞에 들여다볼 만한 빗돌이 하나 있다. ‘대한제국 칙령 41호 기념비’다. 1900년 고종황제가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군수를 두며, 군청을 태하동에 마련해 울릉도와 독도를 관할하게 한다’는 내용의 칙령을 제정한 것을 기려, 최근 세운 빗돌이다. 당시 일제의 야욕에 맞서 울릉도·독도를 적극적으로 관할하겠다는 뜻을 담은 칙령이다.

군청 옆길로 오른다. 도동성당 옆, 좌우로 장미 등 꽃들이 만발한 가파른 계단이 이채롭다. ‘성모동산’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꼭대기에 성모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이름이 ‘독도 지키는 성모님상’이다. 성모상은 진짜 먼 바다 독도를 보듬어주기라도 할 듯이, 인자한 표정으로 도동항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잠시 뒷골목을 뒤로 하고, 샛길로 빠져 중간 골목과 앞 골목(여기서는 앞 골목이 큰길이 된다) 사이의 오래된 샘터를 찾아간다. 두 골목을 계단으로 잇는 비좁은 통로의 건물 지하층 바닥에 ‘청국샘’이라 부르는 샘터 자리가 있다. 오래 전 청나라 사람이 팠다고 해서 청국샘이란다. 울릉도에서 4대째 산다는 건물 주인 이종진(74)씨가 말했다. “옛날엔 도동 사람들 다 이 샘물 먹고 살았지. 여기 와서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고.” 1997년 건물을 새로 지으며 샘을 메우고, 비상시 이용하는 민방위급수시설로 만들었다.

한겨레

도동항 옛 일본인 가옥. 이병학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시 돌아 나와 뒷골목을 따라 오른다. 공영주차장 옆에 볼거리가 있다. 1940년대에 지은 일본식 가옥이다. 옛 울릉군수 관사였으나, 지금은 ‘박정희 기념관’으로 부른다.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울릉도를 찾았던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을 전시하고 있다. 뜰에 심어진 향나무들은 울릉도산이 아닌 일본 향나무라고 한다. 집 뒤쪽엔 일제 때 판 방공호도 남아 있다.

한겨레

도동항 앞골목과 중간골목 사이 연결 계단. 이곳에 청국샘이 있다


울릉읍사무소 앞 길모퉁이의 버스정류소 안에는, 앞서 올려다 봤던 도동항 절벽 위의 향나무 대형 사진이 붙어 있다. 읍사무소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계단 옆에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기다린다. 보호수로 지정된 180년 된 풍게나무다. 느릅나무과 팽나무속의 나무다.

한겨레

180년된 풍게나무


울릉초등학교와 독도교회를 지나 일주도로를 잠시 걸으면 다시 도동항으로 향하는 차도로 내려서게 된다. 울릉중학교 골목을 지나 옛 울릉군의료원이었던 군의회 앞을 거쳐 도동약수공원·독도전망케이블카·독도박물관 쪽으로 오른다. 길가에 향나무로 만든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다. 공식 입찰을 통해 구매한 향나무로 기념품과 생활용품을 만든다고 한다. 가게 안팎으로 향나무 향기가 은은하다.

한겨레

도동약수


도동약수공원 앞쪽에서 빗돌 몇 개를 만난다. ‘김해김공하우송덕비’와 ‘안용복장군충혼비’ 등이다. 김하우 선생은 1920년 울릉도에 들어온 뒤 한방의술을 배워, 침술 등으로 평생 울릉도 주민들을 대가 없이 치료하고 보살폈던 분이다. 연세 지긋한 울릉도 주민 치고 이 분 모르는 이가 없다. 안용복은 조선 숙종 때 일본을 두 차례 오가며 울릉도·독도가 조선 땅임을 명확히 했던 인물이다.

한겨레

독도박물관. 이병학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도동약수는 철분 함유량이 많은 톡 쏘는 탄산수다. 약수 한잔 받아 마시고 독도전망케이블카 승차장 쪽으로 간다. 케이블카를 타고 망향봉으로 오르면 전망대에서 도동항과 주변 경관을 살펴볼 수 있다. 쾌청한 날엔 독도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독도박물관은 꼭 들러보는 게 좋다. 독도가 왜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인지, 일본의 주장이 왜 허구인지를 확실하게 정리해 머리에 담아갈 수 있는 박물관이다. 해설사가 대기한다.

한겨레

도동항의 호떡집. 이병학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시 비탈길을 따라 큰길(앞 골목)로 내려와, “도동에서 나름 인기 있는 호떡집”이라는 ‘다와 호떡’에서 ‘호박조청씨앗호떡’(1500원) 하나 사서 입에 물고 항구 쪽으로 걷는다. 앞 골목은 중간 골목과 겹쳐지고 엇갈린다. 복개도로가 아닌, 옛 앞 골목 중간에 들를 만한 곳이 있다. 일본식 가옥에 들어선 울릉역사문화체험센터다. 1910년대 벌목업자이자 고리대금업자였던 일본인이 지은 집이다. 이 집 벽을 수리할 때, 옛날 고리대금업 장부도 발견됐다고 한다. ‘이영관 가옥’으로 불리던 이 집을 문화재청이 매입해, 지금은 문화유산국민신탁이 관리하고 있다. 해설사가 상주하며 이 일본식 가옥과 울릉도 문화재들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2층 다다미방에서 커피도 마실 수 있다. 관람료 겸 음료 값은 4000원.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여기서 잠시 걸어 내려가면 출발했던 도동항 주차장이다.

울릉도/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독도·울릉도

동해 한가운데 자리한, 보물단지 같은 대한민국 영토. 삼국시대부터 지켜 온, 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신비로운 섬 무리임. 행정구역상 독도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때 만찬 차림에 ‘독도새우’가 선보이면서 포털 검색어에 오르는 등 독도에 대한 관심이 커짐.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