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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돌봄교사 하루 평균 1시간 초과근무 해도…“수당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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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30돌 특별기획 - 노동orz]

3부 ‘법의 사각지대’ 초단시간 노동자

②이 일은 내가 선택한 걸까

여성·노인 등 노동시장 약자들

돌봄노동 등 초단시간 노동 내몰려

학생들 맞춰 일찍 출근 늦게 퇴근

출근부엔 ‘계약시간’ 만큼만 기록

40~50대 이상 여성 많은 요양보호사

‘쪼개기 계약’·‘임금 꺾기’ 마찬가지

“빈번한 초과노동 인정해야”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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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가요양보호사가 아파트에서 집안일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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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2.8시간/14:12~17:00’

경기도 수원의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돌봄교사로 일하고 있는 김영란(48·이하 모두 가명)씨가 학교와 체결한 근로계약서에 나오는 문구다. 김씨가 학교와 맺은 계약상 주당 근무시간은 14시간. 주당 노동시간을 15시간 미만으로 맞추기 위해, 월~금 하루 출근 시간을 ‘12분’씩 늦춘 전형적인 ‘분 단위 계약’이다.

김씨가 말했다. “돌봄교사가 하는 일은 전일제 선생님들이랑 다를 게 없어요. 그런데 하루 근무시간이 12분 부족해서 못 받는 게 너무 많아요. 4대 보험도, 주휴수당도 받아본 적이 없어요. 하다못해 명절에 수고했다고 기름값이라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일자리 중에서도 방과후 돌봄교사, 요양보호사 등은 대표적인 ‘초단시간 돌봄노동’ 직군으로 꼽힌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초단시간 노동자는 2002년 기준 여성(12만279명)이 남성(6만6264명)보다 약 1.8배 많았는데, 13년이 지난 2015년에는 여성 41만1307명, 남성 17만4146명으로 2.4배까지 격차가 벌어졌다. 학교 비정규직이나 요양보호사 등 돌봄노동에 여성 노동력이 쏠리면서 저임금·초단기 노동자로 여성 노동력이 몰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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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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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노동? 미뤄지거나, 삭제되거나 ‘1분1초’를 칼같이 나눌 수 없는 돌봄노동의 특성상 초과노동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초단시간 노동자의 스케줄에서 초과노동은 삭제되거나 미뤄진다. 광주광역시에서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원혜윤(52)씨는 민간 재가방문요양센터와 하루 2시간씩, 주 10시간 치매 노인을 돌보기로 계약했다. 그러나 계약한 시간보다 조금이라도 늦게 끝날 경우 센터에서 바로 연락이 온다. “어르신들 모시고 병원 다녀오고, 씻기고, 집안일 도와드리다 보면 2시간 금방 가요. 어르신 집에 출퇴근 기록하는 카드 인식기가 있는데, 2시간 넘게 찍으면 센터에서 전화가 오는거죠. ‘왜 더 하셨냐. 오늘 30분 초과했으니, 내일은 꼭 1시간30분만 일해라’ 이런 식으로요. 주 10시간 넘으면 수당을 줘야 하니까 절대 10시간을 못 넘게 하더라고요.”

사범대를 졸업한 뒤 가사노동을 하다 2014년부터 돌봄교사로 일했다는 김영란씨도 일하면서 초과근로 수당을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다. 학생들의 일정에 맞춰 일찍 출근하거나 늦게 퇴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학교 출근부에는 정확히 ‘근로계약서에 나와 있는 만큼’ 근무했다고 써야 하기 때문이다.

“정규수업 끝난 아이들이랑 방과후 프로그램 진행하고, 간식 챙겨주고, 제각각인 귀가 시간에 맞춰 지도도 해야 해요. 일이 끝나면 교실 청소하고, 근무일지도 작성해야 하고요. 제 근무시간인 2시간48분 안에 이걸 다 끝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요. 하루에 평균 1시간 이상은 초과노동을 하는 것 같아요.” 인권위 보고서(2016년)를 보면, 간병인·돌봄교실 등 여성 초단시간 노동 업종군은 지정 시간을 초과한 과외 노동시간이 평균 30분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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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좋은데 그 일이 너무 열악하다 아픈 어머니를 돌보다가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하기 시작한 원혜윤씨는 많을 땐 하루 4곳까지 방문하며 일했다. 한 요양보호사와 주 15시간 이상 계약하지 않으려는 민간센터들 탓에, 원씨는 노인 4명을 돌보며 지역 내 센터 4곳과 각각 계약을 했다.

김씨는 요양보호 일자리를 한 곳으로 줄이고, 올해 1월부터 청소노동을 시작했다. 아침 7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시내 공원에서 청소를 하고, 20분 뒤인 4시50분부터 2시간 동안 어르신을 돌보는 요양보호 일을 하는 식이다. ‘어르신과 너무 정이 들어서’ 차마 요양보호사 일을 모두 그만둘 순 없었다는 김씨가 청소 일자리를 구한 가장 큰 이유는 ‘4대 보험’ 탓이었다. “시에서 내는 공공근로 공고에는 4대 보험을 들어준다고 돼 있더라고요. 9년 동안이나 요양보호사로 일했는데, 4대 보험에 가입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거든요.” 지난해 무거운 어르신 휠체어를 옮기다가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았다는 김씨는 “치료비를 모두 자비로 부담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쪼개 놓은 시간에 노동을 끼워 넣는’ 초단시간 일자리는 법률이 정하고 있는 예외조항을 만나 더 열악해진다. 원씨는 9년 동안이나 같은 노인을 돌보면서도 민간센터와 1년마다 재계약을 맺으면서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1년마다 학교와 재계약을 맺었던 김영란씨는 올해 3월부터 경기도교육청의 방침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지만, 정작 돌봄교사들의 삶의 질은 달라진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1년에 한번씩 재계약을 안 해도 된다는 것, 딱 그것 하나 바뀐 거예요. 나머지는 똑같아요. 초과노동을 해도 임금을 못 받고, 4대 보험도 못 들고, 연차휴가 없고, 주휴수당도 없어요.” 김씨가 지난 5월 돌봄교사로 일하면서 받은 급여는 48만2170원, 정확히 시급에 일한 시간을 곱한 금액이다. 김씨가 말했다. “2014년에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시급이 1만715원이었는데, 지금 1만720원이에요. 4년 동안 5원 올랐네요.”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조선희 정책국장은 “돌봄노동의 경우 ‘복지 수혜자(아이·노인 등)가 필요로 하는 시간에만 인력이 필요하다’, ‘여성의 노동은 희생과 봉사의 성격이 강하다’는 인식이 크다”며 “돌봄노동 역시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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