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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양 前대법원장 PC와 카드내역 다 넘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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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 다룬 모든 판사 PC도" 검찰 예상 넘는 요구에 大法당혹

검찰이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임 중 쓰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넘겨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한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권한을 남용하고 정권에 유리한 판결들로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하려 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서다.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컴퓨터, 그 이하 행정처 간부와 심의관(평판사) 컴퓨터도 함께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직전 대법원장을 포함해 '양승태 시절'에 법원의 인사·예산 등 사법행정을 다룬 모든 판사들의 컴퓨터를 통째로 요구한 것이다.

검찰은 또 같은 기간 양 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사용 내역이 포함된 행정처의 법인카드 및 관용차 사용 내역도 전부 제출해 달라고 했다. 대법원은 당혹해하고 있다.

검찰의 이 같은 자료 제출 요구는 대법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대법원 내부에선 양 전 대법원장 때의 '재판 거래' 의혹 등과 관련해 검찰이 제한적으로 자료 요구를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법원 자체 조사단이 발견한 410개 컴퓨터 파일이나 이것이 저장돼 있던 행정처 일부 컴퓨터 정도를 요구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방대한 자료를 요구한 것은 이 사건을 원점부터 다시 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가 사용한 법인카드 및 관용차 사용 내역을 제출하라고 한 것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았지만 법원 내에선 "양 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을 겨냥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카드·관용차 사용 내역은 행정처가 관리한다. 이번 검찰 수사의 핵심은 '양승태 행정처'가 박근혜 정권과 재판 거래를 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카드·관용차 사용 내역을 요구한 것은 행정처 판사들은 물론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어디에서 누구를 만났는지를 조사하는 용도로 이 자료를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의혹 수사를 위해선 일단 행정처 판사들과 전 정권 인사들이 만난 것부터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도 "재판 거래 의혹을 규명하려면 (법원) 관련자들의 동선(動線)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20일 "검찰 요구 자료를 충분히 검토해 조치할 것"이라는 입장만 냈다. 내부는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 평판사는 "속된 말로 대법원을 발가벗기겠다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검찰 요구를 거부하기도 힘들다.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이 스스로 "(검찰에) 자료 제공 등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대법원이 자료를 안 줄 경우 김 대법원장의 발언을 내세워 압수 수색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판사들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일부 판사는 "검찰 수사로 의혹을 확실히 밝히기 위해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다른 쪽 판사들은 "검찰이 대법원을 상대로 먼지떨이식 수사를 하려 한다" "김 대법원장이 법원 발등을 찍었다"고 한다.

대법원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제 시작이다. 대법원 청사와 관련 판사들 자택에 대한 압수 수색이 진행되고, 전·현직 대법관들이 줄줄이 검찰 청사 앞 포토라인에 서는 '사법부의 악몽'이 현실화될 공산이 작지 않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 대법관에게 올린 재판 관련 보고서가 저장된 서버도 들여다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 합의 과정까지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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