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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붉은 광장 울려퍼진 '카추샤'… 가게에 맥주가 동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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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월드컵] 러시아, 이집트 꺾고 16강 눈앞… 2002년 한국처럼 전국이 열풍

러시아와 이집트의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이 열린 20일(한국 시각)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 앞에선 장외 응원전이 펼쳐졌다. 러시아 팬들이 국기를 흔들며 "러시아! 러시아!"를 외치자, 파라오 모자를 쓴 이집트 응원단이 팀 최고 스타인 "살라흐~ 살라흐~"를 부르며 맞불을 놓았다.

응원전에선 홈 팀 러시아가 살짝 밀리는 모습이었다. 러시아 팬들은 자기 나라 이름을 외치는 것 외엔 약속된 구호나 응원가가 없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자 자연스레 러시아 세상이 됐다.

FIFA(국제축구연맹) 70위로, 경기전 개최국 조기 탈락의 우려를 샀던 러시아는 '이집트 축구왕' 무함마드 살라흐가 출격한 이집트를 3대1로 완파했다. 이집트 아흐마드 파트히의 자책골과 데니스 체리셰프의 대회 3호골, 아르 주바의 쐐기골로 승리했다. 두 경기 8골의 막강 화력을 과시하며 2연승을 달린 러시아는 사실상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스타니슬라프 체르체소프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더 기쁜 날이 올 것"이라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종료 후 거리 풍경은 2002년 한국을 떠올리게 했다. 승리를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점점 불이 붙었던 한국처럼 러시아도 서서히 월드컵 열풍에 휩싸이는 중이다. 거리 곳곳에서 러시아 국기와 응원 머플러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무뚝뚝해 보이는 러시아 사내들이 먼저 기자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며칠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수도 모스크바도 대표팀이 골을 넣을 때마다 함성으로 들썩였다. 일부 시민은 모스크바 중심 붉은 광장 인근으로 차를 몰고 나와 경적을 울려대며 국기를 흔들었다. 자이체프(36)씨는 "한 달 전만 해도 월드컵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었는데,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서 러시아 국민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거리 응원을 하던 시민들은 경기가 끝난 후 술집에 들어가 러시아 민요 '카추샤(Katyusha)'를 부르며 축배의 잔을 들었다. 자정이 넘어서도 축제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마트엔 술을 사러 온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맥주가 동난 가게도 있었다.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 인근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고르지(48)씨는 "오늘 러시아 전역이 월드컵 열기에 흠뻑 취했다"고 했다.

월드컵 데뷔전을 치른 살라흐는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처지에 놓였다.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32골)에 오른 그는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 때 당한 어깨 부상으로 우루과이와의 1차전에 나오지 못했다. 벤치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0대1 패배를 바라봤다. 살라흐는 2차전에서 선발 출전했지만, 경기 초반부터 러시아 수비수의 집중 견제에 위축된 모습이었다. 그는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넣었을 뿐이다. 영국 BBC는 "오늘 살라흐는 우리가 아는 선수의 그림자 같았다"고 평가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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