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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일사일언] 나는 '배달 월드'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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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봉현 힙합저널리스트


혼자 산 지 몇 해가 지났다. 물론 늘 추억과 함께 살지만 추억은 사람이 아니기에 언제나 홀로 지낸다. 1인 가구의 최대 고민은 역시 먹을거리다. 요리는 여러모로 비효율적이라 주로 배달 앱을 이용한다. 오늘도 배달 앱을 켜고 어떤 가게가 새로 생겼는지, 이 가게의 평점은 좋은지 확인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람들과 악수하는 기분이 든다. 진부한 말이지만 배달 앱 안에는 사람 사는 세상이 있다.

신메뉴를 앞으로는 팔지 않겠다는 돈가스집 사장님의 답글을 읽었다. 재주문 의사가 없다는 누군가의 리뷰에 마음이 상했다고 그는 말했다. 프로답지 않다고 잠깐 생각했지만 솔직하게 털어놓은 그의 인간미가 더 기억에 남았다. 이번에는 신장개업한 떡볶이집의 리뷰를 클릭했다. 잘 찍은 사진과 칭찬 가득한 글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디를 눌러본다. 공교롭게도 그가 리뷰를 남긴 몇몇 가게는 모두 똑같은 사람이 운영하고 있었다. 부당하다고 잠깐 생각했지만 이내 절박함이 더 크게 와 닿았다. 최소한 남의 가게를 훼방한 건 아니지 않나. 그렇게라도 해서 한 번이라도 더 노출되기를. 이 치열한 전장에서 결국엔 살아남기를.

나 역시 이 '배달 월드'에 사는 시민이다. 이 세계에서 나는 나만의 법칙에 따라 행동한다. 예를 들어 혼밥족을 위해 1인분도 배달해주는 가게에 주문할 때면 나는 꼭 사이드 메뉴를 한두 개 더 시킨다. 사장님, 제가 2인분은 못 시켜도 1.3인분 정도는 꼭 시킬게요. 또 나는 만원 이상 주문할 때만 할인 쿠폰을 사용한다. 배달 대행비가 몇천원이 넘는데 만원에서 또 천원을 깎는 건 정말 못할 짓이다. 배달 예정 시각을 넘겨 음식이 도착할 때도 나는 좀처럼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오토바이로 온종일 종횡무진했을 그가 안전하기를 바랄 뿐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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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리는 순간 현관 앞에 대기한다. 노크 소리가 들리면 최대한 빠르게 대답한 후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음식을 받고, 마음을 보냈다.





[김봉현 힙합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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