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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콘크리트 걷어내는 데만 3년… '동아시아 최대 석탑'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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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층 규모 높이 27m 추정되지만 탑 구조 알 수 없어 6층까지 복원 1층 해체 당시 유물 1만점 나와

조선일보

'동아시아 최대 규모 석탑'으로 알려진 전북 익산 미륵사지석탑(국보 11호)이 20년 수리 작업을 끝내고 20일 모습을 드러냈다〈왼쪽 사진〉. 서기 639년(백제 무왕 40년) 건립된 미륵사지석탑은 서쪽이 일부 붕괴해 콘크리트로 보수된 채 남아 있다가 1998년부터 수리 작업에 들어갔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해체 직전인 2001년 촬영한 모습으로, 이후 부재를 모두 해체하고 세척했다. / 김영근 기자·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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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선화공주와 결혼하고 왕이 된 백제의 서동(무왕)이 고향인 익산을 행차하다 연못에서 나타난 미륵 삼존을 위해 지었다는 절. 그곳엔 '동아시아 최대 규모 석탑'이라는 미륵사지석탑이 있다. 거대한 규모의 위용을 자랑하는 이 탑의 지붕돌 처마 끝이 살포시 올라간 자태를 시인 신동엽은 '탑날개'라 노래했다. 한국 석탑의 원형(原型)과도 같은 미륵사지석탑(국보 11호)이, 몸의 절반을 짓눌렀던 콘크리트의 더께를 벗고 20년 만에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진정성' 살려 6층까지만 복원

20일 전북 익산 미륵사지. 6층 빌딩 규모의 가설덧집 안으로 들어선 순간, 7세기 백제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시가 생겼다. 이제 막 기지개를 켜고 일어선 듯한 거대한 탑. 자세히 보니 세월의 때가 묻은 옛 탑의 부재들이 곳곳에 보인다. 배병선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단장은 "옛 부재와 새 부재의 비율이 65대 35 정도 된다. 남아 있는 옛 부재 중 81%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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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석탑 해체 수리 중이던 2009년 1월 사리장엄구 유물이 나온 1층 심주석(가운데 기둥을 이루는 돌 구조물) 앞에서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취재진에게 유물 출토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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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장기 단일 문화재 수리'라는 기록을 세운 미륵사지석탑이 보수를 마친 뒤 첫 모습을 공개한 현장. 1998년 구조안전진단에서 '불안정' 판단을 받은 이 탑은 부재를 모두 들어내는 해체 조사와 구조 보강, 보존 처리를 거쳐 최종 정비된 모습을 선보였다. 사업비는 230억원으로 숭례문(250억원)에 이어 둘째다.

9층 규모에 높이 27m에 이르는 원래의 탑이 될 것이란 추측과 달리, 복원된 석탑은 해체 직전까지 남아 있던 6층 규모 그대로였다. 1층과 2층, 기단부와 계단만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고 일부가 무너져 내린 3~6층은 훼손 부분에 돌을 쌓아 경사면으로 처리했다.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7층 이상의 탑 구조를 알 수 없는 데다, 만약 새로 탑을 쌓는다면 옛 부재가 하중을 견디지 못할 것을 고려한 결과"라고 했다. 당초 '6층 완전 복원안' '9층 복원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으나 유물의 진정성을 위해 '6층 부분 복원'을 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일제 콘크리트 걷어내는 데만 3년

미륵사지석탑은 서기 639년(백제 무왕 40년)에 건립됐다. 대형 목탑 양쪽에 동탑과 서탑이 있는 구조였으나, 20세기 초에 이르면 목탑과 동탑은 사라지고 서탑은 6층까지만 남은 채 일부분이 무너져 내린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1915년 일제는 붕괴된 곳에 콘크리트를 바르는 응급 보수를 했고, 이 모습이 2001년까지 유지됐다.

1998년 구조안전진단을 거쳐 2002년 본격 해체에 들어간 뒤, 185t의 콘크리트를 정으로 하나하나 깨 걷어내는 데만 3년이 걸렸다. 1층을 해체하던 2009년 1월엔 탑을 만들 때 안치한 사리장엄구 등 1만 점에 가까운 유물이 나왔는데, 그중 금제사리봉영기에는 무왕의 왕비가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귀족 사택적덕의 딸이라고 적혀 있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수리 과정은 새로운 발견의 연속이었다. 목탑 양식을 충실히 모방한 석탑이었고, 적심(탑 내부 빈 공간에 흙이나 돌 등을 채워넣은 것)과 치장석이 이원화된 백제 특유의 기술이 확인됐다. 석조 부재를 접합할 때 절단면의 0.33%를 티타늄 봉으로 잇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터득했다. 배병선 단장은 "미륵사지석탑 수리 덕에 태국이나 캄보디아에서 배워 갈 정도로 석조문화재 수리 기술이 향상됐다"고 했다. 새 부재는 익산에서 채취한 화강암의 일종인 황등석을 썼는데, 훼손이 심한 옥개석(지붕돌) 받침돌에 많이 사용됐다.

세척, 구조 보강, 색 맞춤 등의 작업을 거쳐 마침내 복원된 미륵사지석탑의 높이는 14.5m, 폭 12.5m, 무게는 1830t. 부재는 모두 1627개로, 경주 석가탑의 부재가 48개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규모다. 문화재청은 덧집을 철거한 뒤 12월부터 미륵사지석탑을 일반 공개할 예정이며, 건립 1380주년에 맞춰 내년 3월 12일 준공식을 연다.



[익산=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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