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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분수대] 배신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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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보수 몰락의 시대에 들여다볼 만한 사례이긴 하다. 17세기 토리(Tories)로부터 이어져 온 영국 보수당의 역사 말이다.

출발은 시원찮았다. 사실상 총리제가 시작되고 나서 41년 후인 1762년에야 첫 토리 총리가 배출됐는데 재임 기간이 318일에 불과했다. 그 한 때문이었을까. 이후 지금껏 256년 가운데 150여 년을 보수당이 집권했다. 그 사이 영국은 대영제국이 됐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의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 같은 이력을 두고 “변화된 시대에 당을 유연하게 맞춰 나가는 데 성공한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있었다”(강원택 서울대 교수)고들 분석한다. 동의한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러나 더 보이는 게 있다. 이걸 가능케 한 작동기제다.

“국왕 살해로 관리돼 온 전제군주제(an absolute monarchy moderated by regicide).”

당수(黨首) 출신 내부자의 진단이다.

국왕 살해라 함은 집권 가능성이 낮아지면 기존 당수를 가차 없이 몰아낸다는 의미다. 실제 11년을 집권한 마거릿 대처도 그래서 또 그렇게 쫓겨났다. 하지만 대처 역시 자신을 정치적으로 성장시킨 에드워드 히스로부터 등을 돌렸다.

때론 ‘이단적 선택’도 했다. 19세기 보수당은 귀족이나 지주들의 아성이었다. 그럼에도 이류 소설가이자 정치적 모험주의자이며 개종했다곤 하나 당시론 ‘정치 천민’이랄 수 있는 유대인 출신을 당수로 옹립했다. 대영제국을 이끈 벤저민 디즈레일리다. 서민 출신의 여성 정치인인 대처도 마이너리티 중의 마이너리티였다.

일단 당수가 정해지면 그에게 ‘충성’했다. 당을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그 덕분에 ○○○의 당이 될 수 있었다. ‘전제군주제’란 표현이 나온 배경이다.

과거 누군가 “정치와 정의, 음식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역겹다”고 했다. 음식이야 더 이상 그렇지 않을 게다. 그러나 정치엔 여전히 그런 면이 있다. 무언가 결과물을 내려면 더더욱 말이다. 영국 보수당은, 그리고 그 진영은 집권이란 목표를 위해서라면 ‘역겨운 과정’을 무자비할 정도로 효율적으로 해낸 셈이다.

6·13 지방선거를 통해 우리네 보수 진영이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지상명령을 받아들었다. 방향도 대충 보인다. 기성체제의 해체다. 그렇다면 그 시작은 기성체제(인물도 포함해)에 대한 도전, 냉정하겐 ‘배신’부터다. 정당만이 아니라 정당이 바로 서길 바라는 이들 사이에서도다. 보수당처럼 말이다.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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