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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한겨레 사설] ‘주 52시간’ 처벌 유예, ‘시행 유예’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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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새달 1일 300인 이상 사업장에 도입되는 주 52시간 근무와 관련해, 당정청이 6개월간 계도기간을 두고 처벌을 유예하기로 20일 결정했다. 고용노동부는 ‘시정기간을 최대한 6개월 부여한다는 의미’라고 했지만 사실상의 처벌 유예다. 노동계는 “기업들에 잘못된 신호를 준다”고 반발하고 이날 방침이 실정법 위반이란 지적도 나온다. 불과 시행 열흘을 앞두고 정부가 준비 부족을 자인한 셈이 된 것은 분명하다. 다만 원래 목표가 기업의 ‘처벌’ 자체가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의 성공적 안착임을 생각하면, 충격 최소화와 연착륙을 위한 고육책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이것이 마치 ‘시행 유예’처럼 인식되어선 곤란하다. 그러면 6개월 뒤 같은 혼란이 반복될 뿐이다. ‘주 52시간’에 대해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여유있는 삶과 자기계발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있지만, 노동강도가 급증하거나 실질소득이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감도 크다. 선제적으로 유연근무제 등을 도입해 시행에 들어간 대기업이 있는 반면, 아직 동종 업종 눈치만 보는 곳도 많다. 서둘러 노사 협의로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고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조정해가야 한다.

사실 더 큰 걱정은 노동집약 업종 쪽이다. 기업의 비용 증가와 생산성 저하, 안전사고 우려 등을 과장이라 볼 수 없다. 건설업은 총비용이 4%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대형 버스업체가 운전기사 스카우트에 나서면서, 지역과 마을버스 기사들이 급감해 ‘교통대란’이 일 것이란 우려도 크다. 정부는 고용안정기금 213억원을 활용해 임금감소분 보전과 신규인력채용 지원 등을 한다는 계획이지만, 기업들이 부족 인원을 모두 신규채용으로 채우리라 보는 건 장밋빛 기대다. 특히 지역이나 열악한 환경의 업체는 채용하려 해도 사람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최대 17만개 일자리 증대’나 돈 지원만 강조할 게 아니라, 업종별 특성에 맞춘 구체적인 단축 방안과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 또 하반기 중 실태조사를 통해 탄력근무제 등 개선을 준비한다고 밝혔는데, 서둘러야 한다. 기업 쪽에선 현재 3개월까지 가능한 탄력근무제 적용을 1년까지 늘려달라지만, 주 52시간 노동을 먼저 안착시킨 뒤 노동변동성을 고려해 검토하는 게 순리다. 2004년 주 5일 근무제 도입 때도 우려는 컸지만, 우리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노동자들도 돈보다 노동시간 단축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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