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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선발전 1위 선수에 '실기 0점'이 "재량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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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법 정의 해치는 '적'은 누구인가

2017년 12월 14일,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4단독 민규남 판사는 "수영국가대표의 선발은 대한수영연맹의 재량권이 폭넓게 행사되(어야 하)는 영역"이라는 전제한 후, 국가대표선발전 여자 자유형 100m결승에서 1위를 차지한 선수를 탈락시키고 같은 종목에서 최하위에 머문 선수를 국가대표로 선발한 대한수영연맹의 조치가 재량범위 내에서 이루어져 정당하다고 판결하였다.

그리고 딱 6개월 후인 지난 6월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0단독 권희 판사는 볼링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선발전에서 1위를 기록한 선수에게 실기점수 0점을 부여해 탈락시키고 대신 7위를 기록한 선수에게 높은 실기점수를 부여하여 국가대표로 선발한 대한볼링협회 (전)임원의 업무방해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권희 판사는 "선발전에서 1위를 한 선수에게 실기점수로 0점을 부여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는 않다"고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재량범위"에는 포함된다고 하였다.

민규남 판사와 권희 판사는 "재량"이라는 두 글자로 국민을 희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직분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이 "재량"이라는 개념의 본래의 의미일 리 없다. 그렇다면 "상식적이지는 않지만 재량범위 내에 포함된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궤변인가. 아무리 비상식적이고 위법한 처분이라 해도 "재량행위"라는 법리(?)로 포장하기만 하면 합법으로 둔갑한다는 말인가.

1693년 울산의 어부였던 안용복은 울릉도에 고기잡으러 나갔다가 일본 어부들에게 납치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는데, 피랍자의 신분으로 일본 에도 막부(당시 일본의 최고권력기구)와 담판하여 울릉도와 자산도(독도)가 조선령이라는 서계(書契)를 받아내었다. 그런데 귀국 도중 대마도주에 의해 이 서계를 빼앗기고 울릉.자산 양도가 조선령임을 부정당하자, 3년 후인 1696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서 대마도주의 불법행위를 에도 막부에 소송하기에 이른다. 이 때 일본이 울릉.자산 양도가 조선령임을 다시금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오늘날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료이다.

우리가 '왜놈'이라고 부르는, 사무라이들이 지배하던 17세기의 일본조차 권력자의 "재량"이란 것이 "상식"을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적국이나 다름없는 조선의 백성(안용복)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대담하게 소송을 걸어 왔음에도 그 목을 베기는커녕 두 차례나 안용복의 손을 들어 주는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울릉도와 자산도를 욕심 내어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을 하며 이를 "재량"으로 포장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민규남 판사와 권희 판사는 17세기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가졌던 최소한의 상식적 판단능력조차 없는가. 사법정의를 해치는 적(敵)은 외부에 있지 않다. 알량한 법률지식으로 불필요한 법률용어를 남발해가며 국민을 겁박하면서 한편으로는 사법부의 독립이 법치주의의 완성인 양 외치는 그들의 위선과 오만이 가장 큰 적이다.

기자 : 박지훈 변호사, 스포츠문화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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