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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시간 거래회사도 만든 ‘일본 저커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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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카쓰아키 미탭스 대표 10년새 100억엔 회사 키운 ‘개천 용’ “ 가치 저장수단 꼭 돈일 필요 없어 블록체인·암호화폐 등에도 주목”

중앙일보

사토 카쓰아키 미탭스 대표. [사진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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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혼자 3형제를 책임지는 그의 집은 가난했다. 다른 집에는 당연하게 있는 물건이 그의 집에는 없다는 사실을 눈치챈 초등학생 시절부터 돈과 경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와세다대 법학부에 입학했을 때도 전 재산은 150만 엔(약 1500만원), 학비와 생활비를 생각하면 2학년까지 버티기도 빠듯했다. 설상가상 법조인이 되려면 법학대학원 학비 1500만 엔이 더 필요했다.

“돈이 없으면 얻을 수 없는 직업”을 포기하고 컴퓨터를 배워 스타트업을 차렸다. 대학은 중퇴했다. 10년 뒤 연 매출액 100억 엔이 넘는 기업의 사장이 됐다. 일본 스타트업의 선구자 사토 가쓰아키(佐藤 航陽·32) 미탭스 대표의 이야기다.

미탭스는 사용자 데이터 분석 등으로 모바일 앱 광고나 수익화 전략을 만들어주는 회사다. 2007년 설립 후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벤처 투자(약 600억원)를 받은 스타트업으로 유명해졌고 2015년 도쿄증권거래소 마더즈에 상장됐다. 지난해 연 매출 135억7200만 엔(약 1357억원)을 기록했다.

사토는 일본의 젊은 층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다. SNS·블로그·유튜브 온라인에서 활발히 활동한 덕이다. 대학생 때 IT 회사를 창업해 성공한 데다, 젊은 기업가로서 끊임없이 실험적인 사업에 벌여 그를 ‘일본의 저커버그(페이스북 CEO)’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출간한 저서 ‘머니 2.0’ 한국어 번역 출간에 맞춰 그와 e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업가로 성공한 뒤 무엇이 달라졌는지부터 물었다.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생 때나 지금이나 생활비가 별 차이가 없다”며 “오히려 그때보다 생활비가 줄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토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옹호론자다. “비트코인은 이 경제 시스템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면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보상이 명확하게 설계돼있다”며 “채굴자나 투자가를 ‘이익’으로 끌어들이고, 블록체인 등의 ‘테크놀로지’로 기술자의 흥미를 끌고, ‘자유의지론자적인 사상’에 의해 사회를 끌어들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본주의는 유용성과 효율성만 쫓아왔다”며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경제 민주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패권국이 정비한 규칙에 찬동하고 싶지 않은 나라가 많다. 대기업의 행태에 의문을 품는 스타트업, 회사의 행태에 의문을 지닌 개인 등 현재의 경제 체제를 긍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들이 암호화폐나 블록체인 등의 ‘무기’를 활용해 더 나은 생활을 위해 활동한다면 결과적으로 경제의 민주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몇몇 기업이 도입한 ‘사내 통화’가 한 예다. 바쁠 때 도와준 동료, 다른 부서인데도 협력해준 사람에게 ‘별풍선’처럼 SNS로 가볍게 통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식이다. 받은 통화는 나중에 정산해서 급여로 바꿀 수도, 모아서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있다.

그가 말하는 ‘경제 민주화’는 ‘가치주의’다. 이제까지 돈 같은 자본으로 환원되기 어려웠던 감정적인 가치들이 더 중요해진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대형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인기 탤런트가 라이브 방송 5분 만에 가재 45만 마리를 판 사례를 들며 “단순히 식욕이 아니라 ‘즐기고 싶다’, 탤런트를 ‘응원하고 싶다’는 감정에 돈을 지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토는 지난해 ‘개인의 시간이 통화가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시간을 초 단위로 거래하는 ‘타임뱅크’를 설립했다. 타임뱅크에서는 특정 능력이 있는 전문가의 시간을 사서 이용하고, 남은 시간은 되팔거나 장기적으로 전문가를 서포트하기 위해 시간을 대량 구매해 보유할 수도 있다. 그는 “198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비교적 유복해진 후에 태어나 돈이나 출세에 동기 부여를 잘 못 느끼고, 공감·열광·신뢰·호의·감사 같은 모호한 것들에 ‘가치 있다’고 느낀다”며 “그게 실제로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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