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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대법 '양심적 병역거부' 14년 만에 판단…헌재와 '경쟁 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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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원합의체, 8월 30일 공개변론 전향적 판단 나올 것이란 관측 많아 헌법재판소 헌법소원 결정도 '임박' 최고법원 지위 놓고 '경쟁' 해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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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 기자회견.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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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처벌받아야 하는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4년 만에 이 같은 물음에 대한 판단을 다시 내놓는다.

법원 안팎에선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이 이 사건에 대해 ‘전향적’ 판단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헌법재판소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결론을 곧 내릴 가능성이 커 최고 법원 지위를 놓고 경쟁하는 두 기관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대법원은 오는 8월 30일 오후 2시부터 대법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연다고 18일 밝혔다. 대상 사건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입영을 거부한 오모씨의 병역법 위반 사건과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남모씨의 예비군법 위반 사건이다. 오씨는 1ㆍ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고, 남씨는 1심에서 집행유예를, 2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8월 30일 열리는 공개변론의 쟁점은 종교 신념 등을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가 현행 병역법이 규정하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느냐다. 병역법 88조는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소집에 응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14년 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이 같은 정당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지난 2004년 7월 대법원은 당시 서울남부지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첫 무죄 선고가 나오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양심의 자유보다 국방의 의무가 우선된다”는 취지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후 관련 사건들은 전원합의체가 아닌 소부(小部ㆍ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재판부)에서 심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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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8일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열린 첫 공개변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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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분위기가 14년 전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본다. 김 대법원장의 취임 이후 세 번째로 열리는 변론 사건이지만 이전보다 진보적 성향인 ‘김명수 코트’의 특색을 보여주는 첫 판결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오는 8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임명된 대법관 3명(고영한, 김창석, 김신 대법관)의 임기가 만료돼 김 대법원장이 제청하는 대법관 3명이 새로 임명되는 것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한 전직 부장판사는 “소부에 있던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다시 회부한 것은 기존 판례를 뒤집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대체복무제 도입이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데다 최근 남북 긴장이 완화되는 분위기까지 고려하면 2004년과는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하급심에서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깨는 무죄 판결이 늘어나는 추세다. 2004년 이후 1ㆍ2심에서 모두 89건의 무죄 판결이 나왔는데 올해에만 28건이 나왔다. 특히 이 같은 판단의 중심에는 김 대법원장이 초대 회장을 지낸 법원 내 최대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있다.

인권법연구회는 2014년 12월 20일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점과 대체복무제도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이후 하급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잇달아 무죄 선고를 내렸다. 한 지방법원 판사는 “연구회 소속이 아닌 일선 판사들도 최근 무죄를 선고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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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왼쪽)과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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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결정 역시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헌재 관계자는 “8월 안으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헌재는 2015년 공개변론을 열어 헌법소원을 낸 당사자와 전문가들의 의견 청취를 마쳤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등으로 결정이 미뤄지면서 이 사건은 장기 미제로 남아있다.

헌재가 판단을 서두르는 것은 일부 헌법재판관들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오는 9월 이진성(62) 헌재소장을 포함, 이 사건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과 김이수·안창호·김창종 재판관이 임기 만료로 퇴임한다.

헌재는 2004년과 2011년 종교적 신념과 상관없이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3년 전 헌재의 공개변론이 열린 뒤 “헌재의 시각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강일원 재판관은 당시 공개변론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기본권이라면 누구든, 언제든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전투상황 등에서 병역거부를 하는 것도 보호돼야 하는가”라고 질의했다. 특히 김이수 재판관은 “합리적인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하면 국방에 다른 형태로 기여할 수 있다”며 “국제적으로 한국 인권이 부끄러운 현실로 지적되는데, 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사실상 위헌 의견에 가까운 견해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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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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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대법원의 18일 전합 회부 결정이 양심적 병역거부 이슈와 관련해 헌재에 밀리지 않으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 아니냔 분석이 나온다. 최고 법원 지위를 놓고 경쟁해 온 대법원과 헌재는 동일 사안에 대해 앞다퉈 판단해 온 전력이 있다. 다만 대법원은 공개변론 이후 통상 2~4개월 후에 판결 선고를 내리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보다는 더 늦게 선고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국방부·병무청·대한변협·국가인권위원회 등 12개 단체에 양심적 병역거부의 쟁점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안의 중대성과 사회적 파급력 등을 고려해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들으려 한다”고 전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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