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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매경춘추] 나무 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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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아침 산책길에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50분 정도 걸리는 원수산 습지공원을 운동 삼아 한 바퀴 휙 돌아서 오곤 했는데, 올해부터 길가의 나무들에 한눈을 팔기 시작했다. 등산을 한 지 30년 가까이 되지만 목표한 코스를 완주하는 데만 바빴지 주변 나무나 꽃들엔 관심이 없었다. 풀이나 나무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보니 아예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높고 낮은 산들을 숱하게 다니면서도 바람처럼 무심히 걷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는데, 언제부터인지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고 이름을 알면 더 좋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작년 가을 산에 함께 간 친구가 헛개나무를 알려줬다. 도깨비 뿔 모양을 닮은 열매와 세로로 쩍쩍 갈라진 줄기 표면이 독특해서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친구는 산에 갈 때마다 주로 봄에 순을 따먹는 두릅, 엄나무, 옻나무들을 가르쳐 줬고 어쩌다 내가 먼저 나무 이름을 알아맞히면 기분이 좋았다. 그 후 산행을 하면서 종종 주변 나무들을 살펴보고 궁금하면 사진에 담곤 한다. 아직 모르는 나무가 대부분이지만 하나씩 도감을 찾거나 전문가에게 물어서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덕분에 산행에 걸리는 시간은 훨씬 늘어났지만 살아 있는 나무 하나하나와 마주하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읊었고, 나태주 시인은 '풀꽃'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노래했다. 우리와 함께 사는 존재에 대해 이름을 붙여 부를 때 비로소 그와 관계가 시작되고, 대상을 오래 가만히 볼수록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나무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우선 산행 속도를 늦춰야 한다. 나무 가까이에 멈춰 서서 찬찬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름을 아는 것이 대상과 관계를 맺는 첫걸음이라고 볼 때 관계의 시작은 멈춰서 보는 것이다. 나무에 눈을 돌려 나무 알아가기에 나선 것처럼 무심히 지나쳐 온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차분히 들여다보는 여유를 지니게 되길 기도한다.

[이철우 새만금개발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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