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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1 (금)

[주52시간 근무 초읽기] 주80시간 드는 보수작업 어쩌라고… 속타는 정유·화학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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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현장 곳곳서 한숨
건설현장 공사비 4.3% 늘고 관리직 임금은 13% 감소
빙과 등 한철장사하는 업종 "인력 더 뽑기는 부담 커"
직종별 특수성 배려 부족
대책마련 시급한 기업들,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 주장
"현행 3개월서 1년으로 늘려 산업현장 부작용 줄여야"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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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먼저 시작되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유연근무제 확대 등 몇몇 대책을 수립했지만 실제 적용될 경우 어떤 위반 사례가 불거질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 정유·화학 등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당수 기업들은 여전히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장시간 노동을 줄여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게 주 52시간 근로제의 목적이지만, 직종별 특수성에 따라 적용이 어려운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게 기업들의 주장이다. 이에 현행 최대 3개월인 탄력적 근로제도를 최대 1년으로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인력부족 26만6000명, 비용부담 12조3000억원

17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7년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의 근로시간은 2069시간이다. OECD 회원 35개국 중 멕시코(2255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OECD 연평균 근로시간 1763시간에 비하면 306시간 많다. 주당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이 허용되고 정부의 노동 근로해석에 있어 휴일시간 16시간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즉,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나 실제론 68시간인 셈이다.

지난 2월 국회가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도 그래서다. 이에 따라 내달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의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된다. 문제는 비용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26만6000명의 인력부족 현상과 연간 12조3000억원의 비용부담이 발생한다. 중소기업은 평균 6.1명 인력이 부족하고 생산량도 20.3%가량 줄어든다.

특히 산업계에선 '업의 특수성' 탓에 발생하는 부작용이 만만찮다. 정유·화학업계가 대표적이다.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정유·화학업계의 대규모 정기보수 소요시간은 주 80시간인데,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할 경우 보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유업체 A사는 "정기보수 작업은 숙련된 인력이 제한돼 있다"며 "정비가 지연될 경우 하루에 수백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추가 근로자를 채용해도 미숙련 근로자의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도 고심 중이다. 건설 현장의 공사비는 늘고, 근로자의 임금은 감소하기 때문이다. 건설산업연구원 분석을 보면 52시간 근로제로 건설현장 총공사비는 평균 4.3% 증가하고, 최대 14.5% 늘어난다. 현재 현장 관리직 직원은 주당 평균 59.8시간, 기능직은 56.8시간 일한다. 52시간에 맞추면 직접 노무비는 최대 25.7%, 간접 노무비는 최대 35%까지 증가한다. 총공사비가 늘어나는 이유다. 반면 관리직 임금은 13%, 기능직은 8.8% 감소하게 된다.

■건설공사비 4.3%↑…조선업 '시운전'은?

조선업계의 걸림돌은 '시운전'이다. 시운전은 건조한 선박을 선주에게 인도하기에 앞서 계약서에 따른 성능과 기능을 검증하는 업무다. 일반 상선은 바다에서 3주가량 해상 시운전을 하는데 근로자 교대 자체가 쉽지 않다. 승선 근로자를 늘리면 생활공간 부족으로 안전사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추가 인력을 확보한다고 해도 쉽지 않다. 4년 이상 경력이 있는 전문인력만 투입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상악화로 시운전이 중단되면 방법이 없다.

여기에 빙과류 업체처럼 '한철장사'를 하는 업체들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통상 아이스바, 음료 등 여름철에 집중적으로 판매되는 품목 특성상 업계는 4월부턴 공장 풀가동과 근로자 초과근무가 다반사다. 빙과업계 관계자는 "빙과는 성·비수기 차이가 심한 품목이고, 수익률이 1%대 이를 정도로 악화된 상황"이라며 "추가채용으로 비용부담이 늘어나고 인력운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한철장사' 업종은 비단 빙과류 업체만이 아니다.

이 탓에 업계에선 현행 최대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라도 최대 1년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특정기간 내 평균 근로시간만 지키면 주간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허용하는 제도다. 이번주에 80시간을 일하더라도 다음주에 24시간 이하로 일하면 2주간 평균 근무시간은 52시간이기 때문에 첫째주 추가 근무를 문제 삼지 않는 것이다. 현행법에는 탄력근로제를 2주로 설정하고, 노사가 서면 합의하면 최대 3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

다만 시행이 코앞인데도 노사합의를 통해 탄력근무제를 3개월까지 연장한 기업은 몇 안된다. 정유·화학업계의 GS칼텍스 정도다. 그럼에도 정부는 대책이 없다. 정부는 지난 15일 정유·석유화학·철강업종 간담회를 시작으로 오는 22일(반도체·디스플레이), 25일(섬유·조선·자동차) 등 산업군별 간담회를 진행할 계획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탄력근무제 3개월을 최대한 잘 운용하면 된다. 아직 해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도 탄력근로제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봤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미국, 일본, 프랑스(1년)나 독일(6개월) 등 선진국도 탄력근로제 기간이 한국보다 길다. 아울러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봤다. 실제 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은 34.3달러로 노동생산 통계가 집계된 OECD 회원국 22개국 중 17위에 그쳤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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