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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원의 봉주르 에콜]〈4〉바보 같은 질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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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임정원 하비에르국제학교 한국어·프랑스어 교사

프랑스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인 바칼로레아를 한 달쯤 앞둔 날, 내 아들 수학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바보 같은 질문이겠지만…”이라며 머뭇거리는 발레리에게 선생님이 “이 세상에 바보 같은 질문이란 없다”고 하자, 발레리는 말을 이었다. “이건 도대체 왜 배워야 해요?” 선생님은 좋은 질문이라며, 모두에게 그 질문을 다시 던졌다. 여기저기서 학생들은 앞다퉈 손을 들었고, 선생님이 사회자가 되어 남은 시간은 토론 시간이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서였다면 수능이 코앞인데 그따위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말고 문제나 풀라고 면박줬을 텐데…”라고 했더니, 아이는 다른 시간에도 그런 일이 종종 있다고 했다. 파리에서 평범한 공립 중고교를 다닌 아이는 엉뚱한 질문도 그냥 묵살하거나 나무라는 선생님은 본 적이 없단다. 때론 ‘저런 것까지 묻나’ 싶을 때도 선생님들은 얼굴이 벌게지면서까지 대답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내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보면, 프랑스 교사들이 친절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교사들이 훨씬 더 상냥하고 자상한 편이다. 그 이유는 ‘교사는 학생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 프랑스 교사들에게는 중요한 ‘의무’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수업은 학생들의 질문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프랑스의 교육철학이 깔려 있다. 질문을 통해 교사는 학생들이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질문이 없는 교실은 ‘반쪽 교실’이라고 한다. 바칼로레아에서 전 계열 공통 필수 과목인 철학은 고등학교 2, 3학년 때만 수업을 받지만 실제로 이런 식으로 다른 수업들을 통해서 이미 철학적 사고를 기를 수 있게 된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학생들이 질문을 자유롭게 많이 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실리적인 이유도 있다. 질문하는 행동 그 자체가 성적에까지 반영되기 때문이다. 각 과목 교사들이 성적표에 평가글(appr´eciation)을 써주는데, ‘좋은 질문’을 잘하는 학생은 ‘대답’을 잘하는 학생 이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질문도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학생은 성적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조용하다고 칭찬받던 내 아들은 프랑스에 와서는 같은 이유로 오히려 부정적 평가를 받았고, 심지어 점수를 깎인 적도 있다.

그러나 수업시간에 질문이나 대답을 할 때는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 질문이나 대답을 할 때는 반드시 손을 들고 교사가 호명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사와 친구들을 무시하는 무례한 행동이라는 지적을 받고, 성적표에 경고를 받거나 학부모까지 불려와 주의를 받기도 한다. 교사가 한창 설명하고 있는데 학생이 손을 들면, 우선 “기다려”라고 한 뒤 “이 설명을 끝내고 나서 네 질문에 대답해줄게”라고 말해야 한다.

‘질문’에 대한 이러한 교육 방식은 ‘문제 제기(remise en cause)’를 중시하는 프랑스 사회 풍토와 상통한다. “왜?”라고 질문하고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재검토해 보는 태도, 데카르트로부터 이어져 오는 이 정신을 프랑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워 사회로 나가는 것이다.
임정원 하비에르국제학교 한국어·프랑스어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