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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진 칼럼] 김정은의 1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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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金 신뢰ㆍ호평 잇따라 언급

金의 합의 이행 압박하는 의도 다분

북미회담은 트럼프와 金의 윈윈게임
한국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접견실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차 방한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18-06-14(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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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성과 품평이 한창이다. 우선 공동성명에 대한 실망이 눈에 띈다. 이른바 ‘CVID’가 누락된 이유가 무엇보다 크다. 비핵화 로드맵이나 검증 방법이 없는 점도 비판 대상이다. 미국 정가와 주류 언론들은 “얻은 게 없는 빈손 회담” “미국이 북한에 속았다”는 격한 반응까지 쏟아냈다. 실제 공동성명 문구는 구멍투성이다. 트럼프 대통령 말대로 포괄적이고 원론적인 내용만 있을 뿐 어떤 디테일도 없다. 한미 군사훈련 중단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다. 비핵화의 구체 내용도 없는데 한미동맹 이완과 한반도 안보 불안을 초래하고 대북 지렛대 하나를 잃는 조치라는 비난이 나온다. 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습관적 레토릭만으로 북미관계 개선, 체제안전 보장 등 굵직한 반대급부를 챙겼다는 평가다. 김 위원장 완승, 트럼프 대통령 완패라는 이야기다. 과연 그럴까.

정말 희한한 것은 완패 판정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다. 회담 후 성과에 매우 만족한 모습이다. 중간선거에 대비, 회담 성과를 최대한 포장해야 하는 입장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칭 ‘거래의 달인’이다. 조금만 수 틀리면 판을 깨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구멍 숭숭 난 공동성명 내용에 싱글벙글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국수주의자이자 털끝 만큼의 국익 훼손을 용납 않는 인사가, 대차대조표 상 손해가 분명한 공동성명을 쥐고 연신 ‘판타스틱’을 외친다. ‘무언가’가 없고서는 불가능하다. 기자회견에서 불쑥 한미 군사훈련 중단,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기를 언급한 게 힌트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관련된 디테일, 이를테면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의 반출ㆍ폐기ㆍ검증에 관한 구체적 대화나 제안 등이 오고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비공개 합의 이야기는 그래서 나온다. 단지 김 위원장의 “북한주민 사랑하는 마음”에 혹할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13일 방한 직후 “최종문서(공동성명)에서 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작업이 이뤄졌다. 그것이 (후속) 대화 재개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무언가’가 있음을 확인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는 점이다. 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친형ㆍ친족 살해 등 독재자적 잔인성에 대한 기자 질문에 “그렇게 터프하게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 나이에 1,000명에 1명 있을 법한 사람이다”고 오히려 치켜세웠다. 비핵화 약속 미이행시 군사적 옵션에 대해선 “위협적으로 보이기 싫다.(···) 2,000만, 3,000만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답했다. ‘꼬마 로켓맨’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등의 표현으로 북한 타격을 위협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김 위원장에 대한 칭찬과 평화를 우선하는 그의 말은 진심일까. 한 번 회담으로 정말 생각이 바뀐 것일까.

참과 거짓, 변심과 의심이 섞여 있다고 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런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부동산 개발로 거부가 된 사업가 출신이다. 선택과 결정의 기준은 늘 이익이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제대로, 잘 관리하는 것이 미국과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국면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일단 상대를 믿어 주면서 자신이 세계 무대에 등장시킨 김 위원장이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이행토록 이끄는 것이 척지는 것보다 효과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북 제재나 군사적 옵션은 여전히 유효한 카드로 남겨놓았다. 대신 변화와 번영, 고립과 후퇴의 택일 결정권을 고스란히 김 위원장에게 넘겼다. 김 위원장에 대한 과할 정도의 칭찬은 북한의 합의 이행을 추동하는, 즉 ‘고래도 춤추게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화려한 레토릭이 계속될수록 국제사회 ‘정상 국가 지도자’로서 김 위원장의 부담과 책임은 더 커진다. 그러니 1차 북미 정상회담은 상호 윈윈 게임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논설실장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