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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스포츠에서 도핑을 금지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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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준혁의 의학과 서사] (8) 다큐멘터리 ‘이카로스’

약물의 날개로 날아오르려던 자들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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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조, 드론 오륜기, 아이언맨, 안경 선배와 “영미!”, 남북 단일팀과 이어진 남북관계의 마중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돌아보면 함께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한데, 이런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다가 중간에 멈칫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노르웨이, 독일, 캐나다 등 전통의 강호들이 그 이름을 수놓은 최종 참가국 성적에서 빠져 있는 나라, 러시아. 분명 막대한 예산을 들여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성황리에 마쳤고 종합 1위의 성적을 빛냈던 러시아는 왜 평창에 참가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201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도핑(doping, 운동선수가 좋은 성적 등을 목적으로 근육강화제 등 약물을 투여하는 것)에 러시아 정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추문을 검증하여, 러시아의 국가 출전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2014년 동계올림픽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선수들에게 금지 약물을 투약하고 도핑 테스트를 우회하기 위해 표본을 바꿔치기했다. 결국, 러시아 선수들은 국가 대표팀의 자격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대신 올림픽 선수(OAR) 자격으로 출전하는 것은 허용되었다.

러시아 도핑 의혹을 정면으로 겨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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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이카로스>. 여러 영화 시상식이 넷플릭스 방영 작품을 거부하고 있지만, <이카로스>는 아카데미에서 당당히 장편 다큐멘터리 부분에서 수상했다. 그것은 다큐멘터리 촬영 과정에서 감독 브라이언 포겔과 핵심 인물인 그리고리 로드첸코프가 가져온 엄청난 후폭풍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덧붙이자면, 여전히 우리는 진실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가 계속 인용하는 조지 오웰의 묵시록 <1984>에 등장하는 표현을 떠올린다.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선 진실을 알리는 것이 혁명이다.” 출처: IMDb


이 일에 우연히 말려든 두 사람의 이야기가 지난 3월 제90회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넷플릭스의 <이카로스(Icarus)>에 담겨 있다. 감독이자 작가로 활동하던 브라이언 포겔은 오랫동안 아마추어 사이클 선수로 각종 대회에 참가해왔다. 도핑 논란으로 얼룩진 사이클 영웅 랜스 암스트롱을 떠올리며 “도핑을 해도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던 이 다큐멘터리는 갑자기 시대의 격랑에 휘말리며 위험을 무릅쓰고 국가적 음모를 고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3주 동안 프랑스 전역에 걸쳐 약 3500km의 거리를 자전거로 주파하는 프랑스의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는 100년 넘은 역사를 지녀, 사이클 선수들에게는 출전 자체가 도전이자 꿈인 무대다. 다큐멘터리 <이카로스>에게 날개의 꿈을 전달해 준 것은 이 대회에서 7연패를 달성한 역사적 인물, 랜스 암스트롱이다. 미국 도로 사이클 선수로 활약 중이던 그는 1996년 고환암이 이미 뇌와 폐까지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서 선수 생활을 중단했으나 수술과 화학 요법 덕분에 다행히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가 큰 명성을 얻은 것은 그 이후였다. 재활훈련 뒤 복귀한 그는 1999~2005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사상 최초로 7연승을 하고서 잠정적으로 은퇴한다. 노란색의 ‘리브 스트롱(Live String)’ 밴드는 암 예방과 치료 연구를 후원하기 위해 그가 설립한 리브스트롱 재단의 상징으로, 암과 싸워 이겨낸 것, 그리고 그의 초인적인 사이클 능력을 중의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두 번째 은퇴 이후 불거진 도핑 의혹이 사실이었으며 그가 선수생활 초기부터 약물을 사용해 왔고, 그가 동료들에게 도핑을 강요했으며, 소송과 언론을 이용하여 관련 사실을 철저히 은폐해왔다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카로스>의 감독 브라이언 포겔은 암스트롱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도핑 테스트 체계를 의심한다. 암스트롱이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500번에 가까운 도핑 테스트에서 음성 판정(금지 약물이 소변에서 검출되지 않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테스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그는 자신의 몸을 통해 이를 검증해보기로 한다. 곧 열릴 국제 아마추어 사이클 대회 ‘오트 루트(Haute Route)’에 참가하되, 전문가를 섭외해 도핑 테스트에 걸리지 않는 방식으로 약물을 투여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이전에 같은 대회에 참가해 14위 성적을 기록한 바 있었다.

그는 러시아의 반도핑(anti-doping, 도핑 테스트 등을 시행하여 스포츠에서 도핑 행위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 것) 연구소인 반도핑센터(Anti-Doping Center) 소장인 그리고리 로드첸코프를 소개받는다. 그에게 도핑 테스트를 피할 방법을 요청한 포겔은 그의 지시를 따라 스테로이드, 테스토스테론 등 경기력 향상 약물(PEDs)을 투여하면서 몸을 만들기 시작해 다음 대회를 준비한다. 결국, 도핑 테스트를 통과하고 대회에 출전한 그는 약물 없이 출전했던 지난 대회보다 훨씬 낮은 순위를 기록하며 대회를 끝낸다.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을까, 약물을 사용했다는 것이 무의식 속에서 그를 괴롭힌 걸까, 아니면 그저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하지만 이것은 서막이었을 뿐이다. 독일 지역 공공방송인 아에르데(ARD)가 내부 고발자의 폭로를 전하며 러시아 선수들이 약물을 투여했으며 반도핑 연구소가 이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방송을 내보내면서, 둘의 운명은 말 그대로 요동친다. 세계반도핑기구의 독립위원회는 표본 폐기 등을 이유로 로드첸코프를 도핑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한다. 연구소장직을 내놓은 로드첸코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당시 체육부 장관 비탈리 뭇코가 꼬리를 자르려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고는 포겔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온다.

그는 포겔의 도움을 받아 내부 고발자의 자리에 선다. 러시아가 국가적으로 국제대회 운동선수들의 도핑에 관여했으며, 특히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선 러시아연방보안국(FSB, 과거에 KGB로 명성을 떨치던 러시아 정부의 정보기구)이 직접 관여하여 선수들의 소변 표본을 바꿔치기했다는 것이다. 그는 책임자로서 금지 약물을 혼합한 칵테일(cocktail drugs, 약물 여럿을 혼합하여 한 번에 투약하는 것)을 선수들에게 공급하고, 검사실에서 표본을 바꿔치기한 사실이 들통나지 않도록 협조했다. 자신이 연루된 러시아의 비밀을 공개한 로드첸코프는 미국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으로 보호를 받게 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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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도핑 위반의 역사는 짧지 않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사진)은 “화학자의 경기(Chemists’ Games)”라고 불릴 만큼 금메달 획득 선수 중 약물을 사용하지 않은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올림픽으로 입에 오르내린다. 이것은 다른 여러 국가와 마찬가지로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이 국론 통합과 정권 지지율 회복의 기회로 사용됐던 정치적 이유가 그 배후에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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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부정에 참여했다는 것, 아니 실무를 진두지휘 했다는 점에서 로드첸코프가 사익을 위해 고발한 것이라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그는 2011년 운동선수들에게 금지 약물을 몰래 전달했다는 사유로 조사를 받다가 자살을 기도했고, 한동안 정신병원에 수용된 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에선 그가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는 것을 근거로 로드첸코프 발언의 진실성을 부정하는 방송이 방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 도핑 추문을 조사한 세계반도핑기구의 독립조사위원회를 이끈 리처드 맥라렌은 여러 증거에 기반해 로드첸코프 발언이 신뢰성을 지닌다는 점을 인정했다. 결국, 2016년 7월과 12월에 발간된 <맥라렌 보고서>는 러시아 정부가 도핑에 개입했으며, 2011년부터 2015년까지 1000명 넘는 러시아 선수가 이를 통해 혜택을 입었다고 보고했다.[2] 결국 러시아올림픽위원회는 자격을 무기한 정지당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한 미궁을 설계한 건축가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미궁을 탈출하자, 크레타 왕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를 높은 탑에 가두어 버렸다. 이카로스가 날아가는 새를 보고 탈출 가능성에 착안하자, 다이달로스는 나무, 깃털, 초로 커다란 날개를 만들었다.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는 날개를 팔에 끼우고 함께 탈출하지만, 해를 보고 가까이 가려던 이카로스는 날개 촛농이 녹아 추락해 죽고 말았다.

다큐멘터리의 제목 <이카로스>는 금지 약물의 사용을 촛농 날개에 빗댄다. 경기력 향상 약물은 혜택을 가져올 테지만, 그것은 죽음의 길이기도 하다. 암스트롱이 그랬고 러시아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단지,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왜 경기력 향상 약물을 금지해야 하는가? 금지하지 않고 모두가 사용하면 안 되는가?

경기력 향상 약물과 윤리

<미국 생명윤리학회지(American Journal of Bioethics)>는 2018년 18권 6호의 표제 기사 중 하나로 “경기력 향상 약물, 스포츠, 그리고 자연적 경기 역량이라는 이념”을 실었다.[3] 해당 논문에서 노르웨이 스포츠과학대학 지그문트 롤런드 교수는 흔히 약물을 금지해야 하는 이유로 제시되어 온 두 가지 주장, 즉 ‘속임수는 그 자체로 나쁘다는 것’과 ‘선수의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 모두 그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말한다.

먼저, 옳지 못하기 때문에 금지한다는 것은 순환논법이다.[4] 또한 선수 수준의 운동 경기는 많은 경우 건강의 위해를 전제한다. 철마다 듣는 야구 선수의 재활 훈련 소식처럼 훈련과 경기 자체가 선수의 건강에 해로우며, 익스트림 스포츠 등 일부 종목은 심지어 죽음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약물이 몸에 해로우므로 금지한다는 것은 그 토대를 상실한다. 왜 어떤 위해는 허용하고 어떤 위해는 허용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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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니콜 감독의 에스에프(SF) 영화 <가타카>는 유전공학이 발달하여 모든 신생아가 유전자 조작을 받고, 유전자 표지가 가리키는 향후 역량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자연임신으로 태어난 부적격자 주인공이 의지 또는 꿈의 힘으로 사회적, 유전적 제한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후 유전자 조작이나 인간 증강에 관한 논의에는 <가타카>가 자주 예시로 인용되곤 한다. 이선 호크, 우마 서먼이 주연한 이 영화의 포스터 문구, “인간 영혼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없다”는 개봉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출처: IMDb


따라서 세계반도핑기구는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이 “운동 정신”을 위배한다고 말한다. 운동 정신은 “자연적”인 경기 역량을 추구하며, 경기력 향상 약물을 통한 “인위적”인 경기 역량은 이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이것이다. 인위적으로 인간의 능력을 증진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바로, 영화 <가타카(Gattaca)>(1997)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던진 질문과 같다. 우리는 스포츠에서 (입시에서, 입사에서, 진급에서, 아니 경쟁을 포함하고 있는 모든 인간 활동의 영역에서) 인위적 능력 조작을 허용할 것인가?

어떤 조작도 안 된다는 주장은 성립하기 어려운데, 그것은 인위적 조작 자체가 이미 행해지고 있으며 상당 부분 수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기력을 향상하기 위해 선수들은 이미 최고의 공학기술이 집약된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국내에서 명성을 얻은 하버드 대학교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저서 <완벽에 대한 반론>에 든 예시는 흥미롭다. 운동복으로 유명한 기업 나이키에서 만든 “고지 훈련소(altitude house)”는 선수가 마치 해발 4,000m 고지의 저산소 환경에서 훈련을 받는 것처럼 분자 필터로 훈련소에 공급되는 산소량을 조절한다. 여기의 생활은 골수의 적혈구 생산을 자극하여 선수의 지구력 향상을 돕는다. 이런 훈련이 경제적 불평등을 이유로 금지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훈련 자체를 비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허용 가능한 인위성에 선을 긋는 것이다. 이를 위해 롤런드 교수는 ‘자연적’이라는 말의 생물학적, 규범적 의미에 의존한다.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경기 역량이란, 개인에게 유전적으로 부여된 특질이 허용한 형질(形質, phenotypic)적 가소성의 범위 안에서 발휘하는 역량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개인의 타고난 재능을 훈련을 통해 충분히 발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규범적으로 자연스러운 경기 역량이란, 사회가 스포츠에 기대하는 것이 능력주의(meritocracy)에 의거한 개인 개별성의 발현이라고 본다.

다시 정리해보자. 스포츠에서 경기 결과는 선수 각자의 재능부터 경기 각 순간의 모든 물리적, 생리적, 심리적 조건에 이르기까지 여러 우연의 중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의 노력이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최선을 예비할 수 있도록, 즉 “더 많은 훈련이 더 큰 행운을 가져온다”라는 경구가 널리 인정될 수 있도록 규칙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에서 그러했고 올림픽을 20세기에 부활시킨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버르탱이 믿었듯이, 스포츠는 “도덕의 시험장(moral testing ground)”이 된다. 단지 더 좋은 결과 만을 내는 것이 스포츠의 목적이 아니다. 스포츠는 그 결과에 어떻게 도달하였는가도 같은 중요성으로 따진다.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 개인의 책임이 아니거나 통제할 수 없는 불평등은 교정해야 한다.[5]

경기력 향상 약물의 사용을 금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에 있다. 약물은 “인간의 노력을 바로 우회할 수 있는 개입 방법”이다.[6] 약물이 허용되면, 선수 모두는 손쉽게 신체가 허용하는 생리적 한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 후엔 찰나의 행운을 차지하는 것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지리멸렬한 다툼 만이 스포츠에 남을 것이다. 스포츠가 진정 ‘인간 한계의 시험대’라면, 한계에 도달할 수 있는지, 한계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는지 자체부터 경쟁과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약물은 신체적 역량과 주체의 의도성을 분리하여, 인간을 인간 아닌 기계로 여기게 만든다. 결국, 스포츠를 스포츠로 만드는 근간, 즉 한계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의지를 허무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7] 그렇기에, 한계를 넘도록 이끄는 유전자 조작 또한 문제가 된다. 인간의 의지를 그 결과와 분리하는 일을 스포츠는 허용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의지가 도출한 결과에 갈채를 보내는 것이 스포츠의 근간이자, 더 나아가 인간 활동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1] 다큐멘터리 <이카로스>에 관해 이미 한겨레 기사가 자세히 다룬 바 있다. 박세회. 러시아 도핑 스캔들을 밝혀낸 두 남자의 기막힌 이야기. 한겨레. 2017년 12월 7일. Retrieved at: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822486.html

[2] 두 보고서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McLaren independent investigation report - part I. WADA. 18 Jul 2016. https://www.wada-ama.org/en/resources/doping-control-process/mclaren-independent-investigation-report-part-i ; McLaren independent investigation report - part II. WADA. 9 Dec 2016. https://www.wada-ama.org/en/resources/doping-control-process/mclaren-independent-investigation-report-part-ii

[3] Loland S. Performance-enhancing drugs, sports, and the ideal of natural athletic performance. Am J Bioethics. 2018;18(6):8-15.

[4] 순환논법이란 흔히 결론이 전제를 다른 말로 반복하고 있는 경우를 말하는 논리의 형식적 오류 중 한 가지이다. 위의 경우, (1) 금지 약물은 속임수이다 (2) 속임수는 그 자체로 나쁘다 (3) 따라서 금지 약물은 나쁘다라는 삼단논법을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제인 “금지 약물은 속임수이다”와 결론인 “금지 약물은 나쁘다”는 동일한 말의 반복일 뿐이다.

[5] 이런 입장을 정치철학에서는 운 평등주의(luck egalitarianism)라고 부른다. 미국 철학자 존 롤즈의 약자우선주의(prioritarianism, 평등이란 가장 불리한 입장에 혜택이 갈 수 있는 선택을 내리는 것이라는 입장)와 선을 긋는 이 입장은 불운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평등이라고 여긴다.

[6] President’s Council on Bioethics. Beyond therapy. Biotechnolog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New York, NY: HarperCollins; 2003.

[7] 물론, 스포츠의 목적이 볼거리의 제공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한 선수가 최선을 다해 자신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해도, 그의 한계가 다른 선수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그 예이다. 프로야구에서 열정을 불살라 투구를 연습하는 투수가 경기마다 장타를 얻어맞는다고 해도, 그가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 만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이 경우, ‘프로’ 스포츠와 올림픽 스포츠는 그 목적에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김준혁/치과의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대학원생(의료윤리학)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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