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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재판거래가 정말 사실이라면···그건 `법원의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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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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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62]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대단한 의미가 숨겨진 문장들이 있다. 이런 문장들을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헌법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에 두 번째로 나오는 이 문구는 지금이야 대수로워 보이지 않는 평범한 문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말은 적어도 150년 전 조선시대에는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반역의 문구였다.

가령 양반도 아닌 평범한 백성이 150년 전 광화문에서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다"라고 외쳤다고 해보자. 그리고 나서 "임금이나 지방 수령이 가지고 있는 조세를 부과하고 강제로 수확물을 가져갈 권한, 군역에 강제로 동원할 권한, 범죄가 있을 때 이를 조사하고 재판해서 벌을 내리는 권한은 본래 백성들이 가지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했다고 하자.

더구나 "전정, 군정, 환곡의 폐해가 심하니 현재의 위정자들을 참신한 세력들로 교체해야 하고, 그 교체는 임금이 아니라 신분의 귀천에 상관없이 평범한 백성들이 선택해야 한다"라는 말까지 한다.

역적을 모의한 죄, 반역죄에 해당하는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대번 "임금을 능멸한 죄"를 물어 자신은 물론이고 그 가족과 이웃들에 대한 가혹한 문초 과정을 거쳐 망난이가 휘두르는 칼에 그 발언에 따른 책임이 주어지리라.

지방선거가 진행 중이다. 우리 가족은 선거일 전 주말에 사전선거를 했다. 헌법에 적힌 몇 가지 문구들, 권력의 주인이 국민이고 모든 국민에게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를 행할 권리가 부여된다는 문구 덕에 목숨 걱정하지 않고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다. 헌법에 그 말을 적어 넣은 사람들, 그 말이 실현될 수 있도록 목숨과 자신의 세속적 성공을 포기했던 사람들 덕임을 잘 알고 있다. 헌법에 그 말 몇 마디 적었다고 "주권재민, 국권유민"이 현실이 되었을까? 민주주의의 성취 과정에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뒤에 이 말은 현실이 되고 또 평범한 말이 되었던 것이다.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다시 이 헌법 문구를 붙들어보자.

사법권이 법원에 속하고 법원이 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같이 당연한 말이 있을까?

헌법은 국민에게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국민에게 보장된 재판받을 권리를 담당하는 곳이 바로 법원이라는 의미이리라. 권리침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제기하는 구체적 케이스별로 사실을 확정하고 관련 법률을 해석해 적용함으로써 분쟁의 결론을 내리는 국가작용, 사법권을 법원이 담당한다는 말이다. 형사재판에서야 유무죄 여부를 가려 적정한 양형을 결정하는 것이 그 목적이겠지만 법원에 헌법이 사법권을 맡긴 근본적인 목적이 국민의 권리 구제에 있다는 점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문장을 다음 두 개의 문장과 함께 읽으면 헌법이 법원에 재판이라는 방법으로 국민의 권리를 구제하라는 명령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명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헌법은 국민으로부터 받은 국가권력을 행정권, 입법권, 사법권으로 쪼개어 각각 그 구성과 작동의 원리를 달리하는 세 개의 기관에 분담시키고 있다. 헌법학자들은 흔히 여기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원리의 근거를 찾아낸다. 헌법이 세 개의 국가 기관이 상호 견제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서로 균형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국민의 권리보장 기관으로서 사명 외에도 타 국가 기관을 견제하고 어느 한 기관이 비대해지지 않도록 균형자로서 사명이 있다.

국회와 행정부가 그 권한을 남용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지 여부와 자신의 고유한 재판 권한에 도전받지 않도록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최근 "재판 거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으로부터 받은 재판권을 가지고 기관 고유의 이익을 위해 견제와 감시의 대상인 기관과 흥정을 했다는 말 아닌가? 이게 사실이라면 "법원의 자살"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이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두 번째 문장을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다.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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