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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김지석의 화·들·짝] ‘인도-태평양’ 구상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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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책임 있는 관리자’로서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대중국 대응을 강화하는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말이 맞는다면 인도-태평양 구상은 트럼프 정부의 중요한 대외전략이 된다.

인도-태평양 구상의 앞날을 결정할 나라는 미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인도다. 만약 미국이 21세기 중심국가로서 인도의 위상을 충분히 받아들인다면, 지금의 구상과는 다른 틀을 제시해야 전면적인 협력을 얻을 수 있다. 함께 주목되는 것은 중국과 인도의 관계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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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 본부를 둔 미국 태평양사령부가 최근 이름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바꿨다. 관할 범위와 전략무기 배치 등을 그대로 유지하는 상징적 조처이지만, 정부의 ‘인도-태평양’ 구상을 군사전략 면에서 뒷받침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 사령부의 관할 범위는 지구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동북아·동남아·남아시아·오세아니아 나라에다 태평양과 인도양의 대부분을 포함한다. 과연 인도-태평양 구상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으며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까?

■ 인도-태평양(Indo-Pacific) 또는 인도-서태평양(Indo-Western Pacific)은 생물학에서 유용한 개념이다. 동아프리카 해안의 서인도양부터 일본 동쪽 서태평양에 이르는 해역까지 공통으로 나타나는 해양생물이 많기 때문이다. 종다양성 또한 최고 수준이어서 3천종의 어류가 산다. 어종이 풍부하다는 서부 대서양(500종)에 비해서도 압도적이다.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가 인도양과 태평양을 나누고 있으나 해양생태계로 볼 때는 사실상 하나의 바다다.

지정학적 의미에서 인도-태평양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7년이다. 구르프리트 쿠라나 인도 국립해양재단 총재가 쓴 ‘해상통로의 안보: 인도-일본 협력의 전망’이라는 글에서다. 그 직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인도 의회 연설에서 ‘인도양과 태평양의 합류’를 언급했다. 인도-태평양은 2010~11년 인도 정계와 분석가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언급되다가 2013년 오스트레일리아의 방위백서에 처음 등장했다. 전략적 의미를 갖는 개념으로 격상된 셈이다. 더 중요한 계기는 지난해에 만들어졌다. 6월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책임 있는 관리자’로서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 이어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위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이전 버락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대체해 대중국 대응을 강화하는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말이 맞는다면 인도-태평양 구상은 미국중심주의 외엔 일관된 전략이 없는 트럼프 정부의 중요한 대외전략이 된다.

■ 하지만 이후 상황을 보면 그렇지가 못하다. 미국의 정책 전환이 상당한 시일을 두고 이뤄지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인도-태평양 구상의 내용은 지금도 모호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제대로 틀이 짜일지도 의문이다. 각각 미국 국무부 남아시아 담당 부차관보와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 고위보좌관을 지낸 알리사 에어스와 린지 포드는 이 구상이 전략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우선 일대일로 등 중국의 팽창적 대외 경제 정책에 대응할 경제 부문의 큰 틀이 없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그 후보가 될 수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이 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인도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여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미국은 여기에 별로 관심이 없다. 게다가 인도와 중국은 미국을 빼고 인도와 아시아태평양 나라들을 하나로 묶는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CEP)을 추진하고 있다.

종합적인 인프라 투자 계획도 없다. 중국은 인도양 주변 나라들에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스리랑카·미얀마·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이란 등이 이미 중국의 경제 지원을 받거나 중국과 경제·군사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반면 이 지역에서 미국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있다. 일본도 인도와 ‘아시아아프리카성장회랑(AAGC) 동반자관계’를 통해 협력하고 있으나 중국의 공세적 태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이 주도해 1997년 창설한 환인도양연합(IORA)과의 관계 역시 정리가 안 돼 있다. 미국과 일본은 해양 안보, 재난 관리, 경제 협력 등을 다루는 이 기구에 대화 상대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구상의 기본 틀로 미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의 4자 협력을 강조하는 것도 불신 요인이 된다. 지정학적 위상과 국가 목표가 다른 네 나라 사이의 깊은 협력이 쉽지 않거니와, 이뤄지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여러 현안에 충분히 대응할 수 없다. 미국이 4자 협력에 매달린다면 오히려 다른 나라의 반발을 불러 지역의 분열을 촉진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는 우리 정부가 인도-태평양 구상에 거리를 두는 배경이기도 하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원칙에 기반을 둔 질서’를 말하고 있으나 인도-태평양 구상을 통해 어떤 규범을 추구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예를 들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수시로 실시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은 중국을 비롯한 관련국의 영유권 주장과 충돌할 수 있다. 민간 선박이 아닌 군함의 항행 자유가 전면적으로 인정돼야 하는지도 논란거리다. 미국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도 문제다. 미국은 한국·일본 등 역내 동맹국과 무역 갈등을 빚는 등 자유롭지도 개방적이지도 않은 모습을 보인다.

결론적으로 인도-태평양 구상은 아직 주춧돌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상태이며, 미국이 적극적인 의지와 역량을 가졌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지금으로선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동력이 떨어진 아시아 재균형 전략보다 더 취약해 보인다.

■ 인도-태평양 구상의 핵심에는 인도가 있다. 인도는 지구촌의 새로운 성장 축이자 떠오르는 21세기 중심국가다. 인구로도 곧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가 된다. 지금 인도의 국내총생산 규모는 지구촌의 3%가 안 되고 중국의 5분의 1 이하에 그치지만, 구매력(PPP) 기준으로는 미국·중국에 이은 세계 3위, 중국의 40% 선에 이른다. 인도의 국제적 위상은 2050년쯤이면 미국·중국에 맞먹게 될 것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을 ‘태평양+인도’로, 인도는 ‘인도양+태평양’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인도는 환인도양연합을 주도한 데서 보듯이 인도양 주변 나라들의 중심으로서 자국의 지위를 전제한 뒤 태평양 나라들과의 교류·협력 강화를 꾀한다. 이런 태도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인도는 과거 동아시아 등 태평양 쪽 나라들보다 유럽과 중동·아프리카 등 서쪽 나라들과의 관계가 더 밀접했다. 300년에 걸친 영국 지배에 앞서 이슬람국가인 무굴제국이 천년 동안 인도 북부를 차지했다. 인도는 불교를 비롯한 여러 인류 문명유산의 발신지이자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교차로 구실을 톡톡히 했다. 인도로선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구상의 서쪽 기둥에 머물 이유가 없다.

인도가 미국이나 일본처럼 중국 봉쇄를 자신의 핵심 전략으로 삼을 가능성도 작다. 인도가 중국의 부상을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도-태평양 전략에 묶인다면 자신의 발전 가능성이 위축될 수 있다. 2014년 집권한 나렌드라 모디 정부는 이를 잘 안다. 힌두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모디 총리는 동아시아 나라들을 중시하는 액트 이스트(Act East) 정책에 더해 북방정책(Look North)을 강조한다. 옛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나라들과도 관계를 강화해, 바다에서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서 균형자 구실을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인도의 지리적 위치를 보면 미국·중국·러시아·중동·동남아·아프리카 등 여러 문명권을 대표하는 세력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유럽 나라들과도 다양한 소통 통로를 갖고 있다.

■ 인도-태평양 구상의 앞날을 결정할 나라는 미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인도다. 만약 미국이 21세기 중심국가로서 인도의 위상을 충분히 받아들인다면, 지금의 구상과는 다른 틀을 제시해야 전면적인 협력을 얻을 수 있다. 함께 주목되는 것은 중국과 인도의 관계다. 두 나라의 협력 수준은 앞으로 인도-태평양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앞날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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