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진의 어쩌다 집사]
(14) 너의 쓸모, 너의 의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나무야, 물 좀 떠다 줘.”
이제 한국말을 알아들을 때도 됐는데, 나무는 내 부탁을 한 번도 들어주지 않는다. “누나한테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그저 누워있는 나를 제 머리로 툭툭 건드리며 더 놀자고 보채기만 한다. 깃털 낚싯대 앞에 선 나무. "자, 어서 이걸 집어들고 휘둘러줘." 라고 눈으로 말하고 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 고생을 하고 키워서 뭐에 쓰니? 주인도 못 알아본다며.”
가끔 냉소적인 질문을 던지는 주위 사람들에게 발끈해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의 시각에서 나무는 정말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은 효용이 있어서 키우는 게 아니거든요!’ ‘고양이는 귀여움으로 할 일을 다 한 거거든요!’ ‘주인 알아보거든요!(부를 때 안 와서 그렇지)’ 내세울 ‘쓸모’가 없으니 맘 속으로만 반박할 뿐이었다. 귀여움 하나로 호의호식하는 나무를 보면서 다음 생엔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뒤척이는 내 옆에 가만히 누워있던 나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는 벽 위쪽을 올려다보며 자세를 낮추고 사냥감을 관찰하는 포즈를 취했다. 아니, 이건 설마…? 나는 기척을 최소한으로 하고 이불 속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불을 켰다. 밝아진 방 안, 나무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나의 피(나무 피는 아니길 바란다)를 빨아먹고 배가 불룩해진 모기 한 마리가 앉아서 쉬고 있었다.
퍽! 머리맡에 놓인 책을 들고 모기가 앉은 벽을 힘차게 가격했다. 모기는 새빨간 피를 뿜어내며 명을 달리했다. 흠칫 놀란 나무가 ‘내 장난감을 왜 죽여…?’라는 듯한 표정을 하고 나를 봤다. 나는 전우애를 느꼈다. 이 바보야, 너와 내가 우리의 밤을 좀먹는 유령을 함께 잡았다고! 나는 나무를 끌어안고 마구 뽀뽀를 하며 칭찬을 폭풍처럼 늘어놓았다. “오구, 우리 나무가 모기를 잡았어요(사실 안 잡음)! 나무가 이제 밥값을 해요! 오구오구, 이뻐 죽겠어!” 그날 밤, 나무는 모기보다 내가 더 잠을 방해한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누나가 기껏 낚싯대를 흔들어 줘도 누워서 팔만 뻗을 때가 많다. 움직이는 모기나 파리가 나무의 운동에 훨씬 더 큰 도움이 된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게 뭐야”라고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하루 24시간 귀여움을 뿜어내느라 바쁜 나무가 벌레까지 찾아주니 집사는 황송하다. 어느 날 벌레 잡는 일을 멈춘다고 해도 아쉬울 것 하나 없다. 숨만 쉬어도 예쁘고 받는 것 없이 고마운 존재가 인생에 하나쯤 있는 게 나쁠 건 없지 않나.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